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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블리 Jan 27. 2021

택배원을 위해 주민들이 마련한 한 평 카페

한 평 카페를 시작한 계기

흔히 아파트라고 하면 인사도 안 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조금 특별합니다. 같은 공간에 살지만 살아온 방식과 생각도 다른 사람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층간소음, 주차 시비, 경비원 갑질과 같은 문제가 끊임없이 반복되곤 합니다. 이웃 간에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지만, 좀처럼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화를 바꾸기 위해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하고 그 과정을 글로 전해보려 합니다.




한 평 카페의 시작

똑똑똑 캠페인에 이어 아파트에서 시작한 두 번째 활동이 바로 한 평 카페였다. 팔불출 같지만, 아내는 사람을 대하는 기본이 된 사람이다. 예를 들어 택배가 도착할 시간이면 늘 마실 것과 빵을 준비했다가 기사님을 챙긴다. 택배원 대부분은 배송 시간을 맞추느라 식사를 거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수고한다며 마실 것을 챙겨주거나 명절에는 선물을 가져다드리기도 한다. 가스 검침원이나 정수기 코디가 오는 날이면 정성스레 과일과 다과를 준비하고 대접한다. 그런 아내를 20년간 옆에서 지켜보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운다. 아마 우리 아이들도 엄마의 삶을 보며 자연스레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아파트에 이사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아내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여보, 우리 집 앞에 커피나 물을 놓아두고 택배원이나 경비 아저씨가 드실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음…. 좋은 생각이긴 한데, 하루 이틀하고 그만둘 거라면 시작조차 안 했으면 좋겠어!”


아내의 한 마디는 강렬했다. 책임감을 느끼게 해 준 것이다. 사실 한 평 카페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깊이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이렇게 한번 해보면 어떨까? 의미도 있고 보람될 것 같았다. 가볍게 시작하려던 내게 아내는 하루 이틀 반짝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운영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티테이블 크기와 디자인, 사람들 통행에 방해되지 않는 장소까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세심히 살피게 되었다.


한 평 카페는 택배원, 경비원, 환경미화원처럼 아파트를 위해 애써주는 분들이 잠시나마 차 한 잔의 여유를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티테이블 하단에 ‘나눔박스’를 만들어 집에 있는 커피와 간식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주민들 누구나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만큼 동참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한 평 카페를 놓아둔 다음 날, 입주민 카페에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이다.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정말 좋은 일이라며 각자의 방식으로 나눔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공간이길 바랐는데, 한 평 카페 의미가 잘 전달된 것 같아 고마웠다. 주민들은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랐다며 이렇게 참여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며 응원하는 댓글이 많았다.


한 평 카페를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갑자기 한

평 카페 소식이 언론에 소개되었다. 당시 모 아파트에서 택배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사건 때문이었다. 덕분에(?)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와 메인을 장식하는 경험을 했다. 한 평 카페가 언론에 보도되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아파트 주민은 물론이고 심지어 주민이 다니는 회사 사장님까지 커피와 다과를 보내주기도 했다. 직원이 사는 아파트에서 이렇게 좋은 일을 한다니 사장님까지 감동하게 만든 것이었다. 언론 보도 후 우리 집은 초인종은 한 달 넘게 쉴새 없이 울렸고 커피, 녹차, 종이컵, 빵, 고구마, 과일, 떡, 홍삼, 음료…. 사람들의 온정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들어온 차와 물품만 무려 6개월 넘게 내어놓을 수 있는 양이었다.


 

커피, 녹차, 물, 종이컵, 빵, 고구마, 과일, 떡, 홍삼, 음료 등 주민들이 내어 놓은 온정






에피소드

한 평 카페를 운영하면서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중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하나는 택배 기사님이 소속된 회사에 직원이 보낸 편지와 선물이었다. 그가 보낸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따뜻한 마음으로 시작된 작은 실천이 많은 이들에게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으며, 택배원의 수고를 알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더 좋은 서비스로 주민들에게 보답하겠다는 것』이었다.

OO택배에 근무하는 직원이 보내 준 선물과 편지, 선물은 경비 아저씨들에게 나눠 드렸다.


또 다른 사례는 한 평 카페에 놓아둔 쓰레기통을 누군가 깨끗이 씻어놓기 시작했던 일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비 아저씨가 매일 휴지통을 비우고 씻어놓았던 것이었다. 퇴근길에 우연히 그 모습을 보게 되었지만, 나는 아저씨에게 굳이 이유를 묻진 않았다. 아마도 주민들이 배려하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꼈고, 당신도 뭔가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 들었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지난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휴지통을 깨끗이 비우고 씻는 일을 담당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에피소드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이다. 나도 인간이다 보니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반응을 살펴보았는데 댓글의 99.9%가 긍정적이었다. 수천 개의 댓글 중 부정적인 댓글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댓글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한 평 카페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유형이 크게 3가지로 나뉜다는 사실이었다.


한 평 카페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 첫 번째 유형과 두 번째 유형


첫 번째 유형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글이었는데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반응이었다. 해당 댓글에 공감을 누른 사람만 수천 명이었다. 그만큼 동참하고 싶은 사람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유형 ‘누군가 대신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왜 우리 아파트는 하지 않는지, 우리 아파트도 해줬으면 좋겠다며 타인에게 행위를 전가하는 유형이었다.


세 번째 유형자신의 삶에서 직접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서울 강서구의 빌라, 청담동 카페, 광양의 아파트, 심지어 본인이 일하는 사무실 한편에 카페를 만든 사람도 있었다.

세 번째 유형, 실천으로 옮긴 사람들의 이야기



개인적으로 나는 세 번째 유형을 참 좋아한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 곧바로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처럼 삶에서 적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꿔 나간다고 믿는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한 평 카페 이후, 크고 작은 변화

어쩌다 보니 우리 아파트는 사람들에게 칭찬과 관심을 받는 아파트가 되었다. 주민들은 우리 아파트를 자랑스러워했고 더 좋은 아파트를 만들고 싶어 했다. 만약 우리 아파트에서 경비원이나 택배원에게 갑질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민들이 먼저 나서서 이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도 생겼다. 무엇보다 한 평 카페 이후로 아파트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첫째,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이웃 간에 인사를 잘한다.

둘째, 이웃 간에 서로 배려하고 나누려는 마음이 생겼다.

셋째, 옆집 어른들이 이웃 아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넷째, 주민과 주민, 주민과 경비원, 주민과 관리사무소, 사람을 배려하는 문화가 생겼다.


물론 모든 주민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아파트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고 사람이 바뀌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평 카페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주민들에게 다른 활동을 제안하고 있다. 아직도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지만, 다음 글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세상 그 어느 것도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없다. 세상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단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해나갈 때 변하는 것이다. 변화는 꿈꾸는 사람의 몫이고 세상은 꿈꾸는 사람이 바꾼다고 믿는다. 글을 통해 세상의 작은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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