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복지사 일기
수입이 적어 생계가 어려운 사람을 영세민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 부르지만, 어르신들은 수급자보다 영세민이란 표현이 익숙한지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1999년 9월 7일에 제정되어 2000년 10월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은 빈곤선 이하의 저소득 국민에게 국가가 기본적인 경비를 제공함으로써 최소한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14년째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영구임대아파트에 위치한 사회복지관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홀로 사는 노인이거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가정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분이 처한 상황을 살피고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무엇보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이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삶의 애환을 듣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한없이 숙연해지곤 한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어려움이 컸던 한 해였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리적 불안감이 컸다. 심리적 불안감은 무언가를 시도해 볼 의지를 꺾게 만든다. 그래서 심리적 안정을 찾게 지원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올해는 이런 사람들을 돕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다.
점심을 먹고 잠시 동네를 산책하려고 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나섰다. 아파트 입구를 지날 때쯤 한 어르신이 계단에 앉아 있었다.
어르신은 내게 고지서를 내밀며 이번 달 가스 요금이 얼마나 나왔는지 봐 달라고 부탁했다. 고지서를 펼치니 부가세 포함 금액이 820원이었다.
8만 2천 원도 아니고, 8천 2백 원도 아닌 820원.
일반적으로 4인 가구 기준 도시가스 요금은 봄이 시작되는 4월부터 11월은 2~5만 원, 겨울철이 시작되는 12월부터 3월까지는 못해도 10만 원~20만 원이 나온다. 물론 집 크기와 연식, 구조나 단열 등에 따라 금액이 다를 수는 있다. 수급자는 일반 가정과 달리 할인 혜택이 있어 요금이 적게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820원이란 금액은 일반가정에서는 말도 안 되는 요금이다. 씻을 때도 따뜻한 물을 거의 쓰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어르신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옆자리에 앉았다.
나: 어르신, 이번 달 도시가스 요금이 820원 나왔네요.
어르신: 820원? 으응. 요금 내러 은행 한 번 가야겠네.
어르신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 근데 어르신, 영세민이신 거죠? 제가 여러 집을 다녀봤지만, 요금이 820원 나온 건 처음이에요. 아무리 아껴도 몇천 원은 나오거든요.
어르신: 따순물 안 틀고, 찬물로 씻고 하니께 그렇지. 돈을 아껴야 먹고살 수가 있으니께. 그래도 나라에 감사혀. 나 같은 사람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봐주니께. 교회는 안 다니지만 감사 기도는 늘 해
나: 에고, 어르신 그래도 좀 쓰시지. 혹시 휴대전화는 있으세요?
어르신: 없지! 집 전화도 거의 안 써. 쓰면 요금이 비싸니께.
나: 그럼 자녀는 있으세요?
어르신: 응 있어. 아들 하나 딸 하나. 멀리 살어. 걔들도 형편이 어려워서 나까지 살필 여유가 못돼. 우리 아저씨는 10년 전에 병으로 돌아가셔서 지금은 나 혼자 살어
나: 그러시군요. 그럼 평소에 집을 오가는 분은 있으세요?
어르신: 있긴 한데, 어디 사는지는 잘 몰라. 그냥 한 동네에 사니께 오다가다 만나는 거지.
나: 요즘 같을 땐 더 외로우시겠어요.
어르신: 외롭지. 아주 외로워. 자식들도 거의 못 오고, 오가는 사람도 없으니께. 이렇게 혼자 나와서 앉았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거지.
나: 어르신, 조만간 제가 댁으로 한 번 찾아뵐게요.
어르신: 그려, 내가 집에는 잘 없고 (밖이 따뜻해서) 나와 있긴 허는데 한 번 놀러 와.
나: 네, 어르신!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인사드릴게요.
오늘 점심시간은 그렇게 어르신과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 따로 찾아뵐 생각이다.
한 달 도시가스 요금 820원.
수급자들 삶은 대체로 어르신의 처지와 비슷하다. 최저생계비로 한 달을 산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사회복지사는 이러한 현실을 잘 이해해야 도울 수 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처럼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온전히 만나는 일인 듯하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당신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