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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규섭 Oct 05. 2021

물 없이 하는 수영

1.

감염증이 떠들썩해지기 이전엔 찜질방을 즐겨갔다. 다른 것보다 목욕탕 내에 있는 습식사우나를 좋아했다.

습식사우나 안에서는 땀과 분무가 섞여, 오래있지 않아도 땀에 흠뻑 젖은 것 같은 꼴이 된다.

그 성분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할지언정, 많은 땀을 흘렸을 때 느끼는 뿌듯함을 느끼는데는 큰 차이가 없다.

몸에 맺힌 물방울이 둘 중 어느 것인지 보다 나의 만족감이 더 중요했다.

사우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 효능에 대한 공감과 필요 보단, 흠뻑 땀을 흘렸다는 효용감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명하게도, 우리는 (특히 나는)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누가보더라도 나은 대안이 있더라도,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해되지 않는 선택을 할지라도 ‘나의 효용감’ 때문이라는 이유를 붙이면, 그건 시쳇말로 가불기와 같아서, 어떠한 반박도 통하지 않는다.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와 비슷한 골조의 이야기일 수 있다. 어떤 일을 겪든 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경우가 많으니,

내가 좋아하는 ‘경험은 해석학이다.’라는 말과도 유사하다.

 

 

 

 

2.

‘’덥다’는 말이 이렇게 싱거운 말이었나.’

그 말의 맛이 부족하게 느껴질만큼 습하고 푹푹찌는 여름 낮. 땀으로 매끈해진 팔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할때 워치가 신호를 보냈다.

똑똑한 워치는 내가 야외수영 중이라 짐작하고, 운동기록을 남길지 묻고있었다.

엉뚱하지만 친절 했기에 그럴 필요 없다며 알람을 끄고 다시걸음을 재촉했다.

푹 젖은 팔목을 보니 워치가 바보라기 보단 덜 똑똑하기에 생긴 오해라고 생각했다.

 

워치에겐 내가 실제로 수영을 하고 있는 것과, 90%가 넘는 습도를 기록하는 한낮에 걷고있는 것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진 못한다.

실제로 큰 차이가 있는 일인데도 말이다.

 

 

 

 

3.

오늘 심보선님의 시집을 읽었다. 음, 시집을 읽는다는 말은 꽤 어색하다.

다른 책들과 달리, 시집은 한 책으로 묶여있더라도, 각 시들의 독립성이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시집에 있는 ‘시’를 읽는게 맞지. ‘시집을 읽다.’ ‘시를 읽다’ 입으로 되뇐다.

다양한 문학장르 내에서 작품 간 독립성을 비교하자면 가장 독립적인 성격으로 시집, 그다음이 산문집, 그 다음이 단편소설집이겠다.

장편소설은 챕터로 구분되어있더라도 그 독립성은 비교적 약한 편이다.

 

물론, 아무리 각각의 작품이 개별적이라 한들, 한 작가의 목소리를 거친 이야기들은 비슷한 결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공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보면 그런 결을 알아채게 된다. 에세이, 소설, 시. 작가의 작품세계를 함께 거닐면,

그 작가가 그 시기에 살아가는 세계를 엿보게 된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 시집을 펼쳐 들면, 누가봐도 다른 이야기인 것이 분명한데, 읽는 이에겐 하나의 이야기로 보이기도한다.

 

심보선님의 시를 읽으며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 작품을 접하면서는 마치 물 속에 들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몇편이라도 집중해서 읽으면 화자의 슬픔이 드러나는 시에서는, 물 속에 가만히 앉아있을 때처럼 가슴에 먹먹한 압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마음은 눈물로 가득 참을 느낄 때도 있다. 참 표리부동의 전형이다.

언젠가 워치가 더 똑똑해진다면 이럴 때 내게 울고있냐고 질문할 것 같다.

사실은 우는 것과 다름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땀과 분무.

습도와 실제 물 속.

‘우는 것 같은 것’과 ‘정말로 우는 것’.

 

수칫값이 비슷한 두 상황에서 혼란해하는 워치에게 나는 차이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나의 일상에도 ‘분명히 다르다’고 말 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다.

그런 것들 앞에서 입버릇처럼 ‘어렵네.’라고 이야기한다.

 

 

 

 

4.

우리집 제습기는 제 통에 물이 가득차면 삐빅 소리를 내며 알려준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단호함엔 감탄을 불러오기도한다.

마음에 물이 차면, 슬픔이 차면 호스를 달아 흘려보내야 한다. 중고로 산 저 제습기도 할 줄 아는 자가진단을 나는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땐 별 수 없이 넘치고, 그제야 깨닫고, 어질러진 방바닥을 숨기듯 닦는다.

 

물 없이 시집을 들고 수영하다, 워치의 알람이 마음을 깨워줬다. 일어나야하나, 더 여기 있고싶은데.

아니 단호하게, 이제 일어나야지.








전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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