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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규섭 Mar 17. 2022

쇼생크탈출 : 탈출기? 생활기?

220317



[쇼생크 탈출]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개봉1995. 01. 28.


쇼생크 탈출 : 이 영화는 탈출기에 대한 영화가 맞을까?



어쩌다 걸린 코로롱으로 인해, 선물 같은 몸의 쉼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건만, 그걸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서(쉬는게 뭔가요,,) 그리고 재밌는 걸 뚝딱뚝딱 잘 기획하는 친구 덕에, 이런저런 온라인 모임을 하며 1주일을 보냈다. 마지막 격리일인 오늘은 이름만 친숙했던 영화 [쇼생크탈출]을 보고 ‘위드콜록’과 함께 영화 모임을 했다. 2시간정도 수다 떨고 나니 해질녘,, 영화를 보며 느낀 점들을 몇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둬야겠다.





([쇼생크탈출)에 대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으시니, 볼 예정이신 분들은 뒤로가기!)





길들임




모두가 두려운 마음에 울며 보낸다는 첫날 밤에 울지 않았던 것을 시작으로, 수개월이 지나도록 수감자의 모습이라기 보단 산책 나온 사람(교도소 내 운동장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다른 수감자들이 한 말)처럼 보였던 앤디는 여러모로 비범했다. 그 이유와 특징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가 교도소의 시스템에 ‘길들여지지’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낙심하거나, 포기하여 일부가 되지도 않았지만, 반항하며 저항하지도 않았다. 이 지점에 대해서 고민해봤다.


길들임은 무엇일까. 인간과 동물이 순응적 진화를 이뤄온 역사를 다룬 책인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엘리스 로버츠)에서는 ‘길들임의 역사’를 다른 말로 ‘받아들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길들일 수 있는 동물은 인간이 가까이서 지낼 수 있었고, 그렇지 않은 동물들은 제압하거나 거리를 둔 채 지내왔다. 받아들여지거나, 받아들이며 오랜 시간을 지내온 적응이 인간의 역사라고 바라보는 시각이다.


조금 더 짧게, 시계열의 축적인 ‘역사’의 관점이 아니라 우리 일생 정도로 짧은 단위인 100년남짓의 시간 흐름을 두고 본다면, 길들임은 ‘통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교도소라는 시스템으로 돌아와서, 그 시스템의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제도와 규율이 필요하고, 이것을 시스템이라 부른다. 그 제도의 합리성여부를 떠나 제도와 규율, 다시 말해 통제는 효율적인 조직관리의 불문율로 여겨져왔다. 특히 인권과 같은 ‘가치’나 ‘당위’와 같이 과정에도 관심을 갖기 전, ‘결과’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했었을 때는 더했을 것이다.


‘통제’라는 단어를 조금 더 뜯어보면, ‘통제’의 반대말은 ‘피통제’이다. 주체를 붙여보면, 통제를 하는 사람과 통제를 당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통제를 당하는 사람이 모두 똑같았다면, 더 구분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다른 수감자들과는 달라 보이는 ‘앤디’의 등장으로 ‘피통제’를 그 안에서 한번 더 분류해 볼 필요가 있다. 제안해보고 싶은 기준은 ‘주체성’이다. 교도서에서의 피통제는, 대부분에게 원하지 않는 상황과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그 상황 속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하여 행동할지, 통제의 상황을 ‘피동’하여 주체적이지 못한 생활을 할지 선택해야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주체적’인 모습은 ‘통제’의 반하는 선택을 하기 쉬운 상태로 보일 수 있으니 통제자들에게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6년의 시간 동안 예산을 위한 편지를 보내며 도서관을 만들고, 사람을 키워 고등검정고시에 합격을 시키는 일은 주체적인 생각없이 달성하지 못했을 좋은 가치이다. 만약 내가 앤디같은 상황에서 ‘길들임의 시도’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아마 벗어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만약 한다면 그 동기는 ‘당위’이겠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당위는 충족된다. 앤디도 그럴만 하다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당위가 있었기 때문에 20여년의 탈옥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한 이야기만 덧붙이자면, 도서관을 만들면서 기증받은 LP를 감독관 몰래 모든 수감자들을 위해 방송으로 틀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나온 음악이 모짜르트의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중 3막인 ‘편지의 이중창’이다. 바람기 많은 귀족을 풍자해 사과를 받아낸다는 내용의 노래인데, 자유를 갈망하고 겉보기와 달리 실제로는 통제할 수 없는 앤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이후 흠씬 두들겨 맞고 독방 생활도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한 식사에서 음악은 마음에 남는 것이며 자신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길들일 수 없는 자유에 대한 본인의 당위와 신념을 빗대여 표현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때도 탈옥을 준비하며 교도관들을 풍자하고 싶었던 앤디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행-조직화




극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지만, 나는 앤디의 탈옥이 15년이상 준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고등검정고시를 합격하게 해주고, 자신의 누명을 벗길 만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토미가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는 교도소장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앤디가 탈옥을 준비했을 거라 말하지만, 나는 앤디의 모든 교도소생활이 탈옥으로 이어진 것이었고, 그렇다면 15년 이상의 시간 동안 준비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15년 전부터 모든 마스터플랜을 짜고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정말 취미를 위해 돌 깎는 정을 구한 것일 것이고, 더 나은 교도소 내 생활을 위해 교도관들의 세무를 도와준 것일 수도 있다. 앤디는 자신의 생각을 빠르게 ‘실행’했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 기지를 발휘해 동료들에게 맥주를 선물했고, 교도관들에게 신뢰를 얻었으며, 교도소장의 약점이 될만한 불법자금세탁의 담당자가 되었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언제 털려도 깔끔할 수 있게 조치까지 취해 뒀다. 단순히 실행력 뿐 아니라, 앤디는 ‘조직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잘하게 이뤄낸 소정의 결과와 성공들을 이어, 더 큰 결과를 낼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교도소장의 마음을 사고, 단순히 자신의 교도소내 생활을 편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자금세탁에 이용한 것에서 더 나아가, 탈옥 후 본인이 직접 그 가상의 인물이 되어 그 모든 불법 자금을 자신의 퇴직금 삼았다. (수감생활에 대한 보상이자 그 안에서의 20년간의 노동 대가라는 차원에서 레드가 한 표현이다.


기획일을 하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큰 계획일수록 시작 전에 완벽히 수립할 수 없고, 진행하며 수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계획한 후 실행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더불어 크고 작은 성취들을 묶어 큰 그림이 될 수 있도록 조직화하는 능력이 있다면 더 훌륭하겠다.


탈옥스토리를 보고 자기계발에 쓰는 게 맞나,,싶지만, 어디선들 못 배울까!









지인-친구




‘같은 학급의 친구들은 Classmate이고, 친구들은 Friend이다.’라고 오은영박사님이 말했다. 모두를 친구라고 말하는 우리말과 달리, 영어단어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게 된다. 수많은 인간관계속,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관계가 많지는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친밀함에 따라서 지인과 친구를 구분해볼 수 있겠다. 물론 평소에 쟤는 지인, 얘는 친구.라고 그룹화하여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상황이나, 피상적 관계에서 받는 상처가 있는 상황에선 관계의 깊이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교도소 내에서도 수많은 관계들이 있겠다. 제한된 상황과 관계 속에서 그 치밀함과 세밀한 차이는 더 크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같은 공간이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모두 깊은 친구가 되지는 않는다. 오늘 모임에서도 ‘친구는 누구인가’함꼐 고민해 보았다. 생각해보지 못한 다양한 기준들을 들을 수 있었다. 최소한 나와 똑같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제각기 다른 기준들로 우리가 관계를 맺어갈까 생각하게 되었다. 수많은 모습의 관계들이 있겠지?


앤디와 레드의 케이스를 보며, 적어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좋은 재료인 ‘전우애’에 대해 생각했다. 힘든 상황을 함께 극복해낸 관계는 돈독할 수 밖에 없겠다.







영화를 보며,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이 영화는 탈출에 대한 영화가 맞는가? 문득 생각했다. 스릴 넘치는 탈출과 추적의 장면이나, 감옥에 들어가게된 구체적인 계기와 설명보다, 앤디라는 사람이 어떻게 교도소에서 생활했는지가 더 중요한 부분으로 다뤄진다. 쇼생크 생활기에 가깝지 않나 생각했다.


음,, 한가득 정리하며 이야기해보고 싶은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새로운 글들 속에, 적절한 비유나 글감으로 피어날거 라 생각하고 여기까지만 이야기해야겠다. 슬기로운 격리생활,,끝!









전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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