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집이 생긴다는 것
가슴이 답답한데 딱히 누구에게 말하고 싶진 않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반신욕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뜨거운 탕 속에 몇십 분을 누워계실 테죠. 맥주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퇴근 후 샤워를 마치고 차가운 캔맥주 한 모금 마실 것이구요.
요즘 제게 그 비슷한 것이 생겼습니다. 돈부리(일본식 덮밥)를 먹는 건데요. 얼마 전 처음 맛을 알게 된 후로 1일 1돈부리를 3일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요일은 친구랑 가고, 월요일은 충동적으로 가고, 화요일은 맘 잡아 가는 식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주 가는 곳이 생겼는데요. 소박하고 아늑한 그 곳에서 돈부리 한 그릇 먹고 나면 가슴속의 응어리가 자연스레 풀어집니다.
다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 좋아서일까요. 먹고 나가는 사람들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에 정감이 뚝뚝 묻어납니다. 이 곳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친절한 것도 있겠지요.
혼자 돈부리를 열심히 먹다 보면 사장님이 돈부리를 받은 손님마다 ‘간장소스랑 밥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하세요'라 말하고, 나가는 손님에겐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라고 하는 게 계속 들립니다. 남자이신데도 말투에 다정함이 묻어나다 보니 10여 분간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쌓였던 불만이나 짜증이 사라집니다.
카운터 보는 분도 사근사근함의 끝판왕이던데 성격 좋은 사람만 뽑는 걸까요, 아님 먹는 사람도 운영하는 사람도 곰살갑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걸까요.
최근 울적한 일이 겹친 데다 오랜만에 비까지 내려 한없이 다운됐는데, 여기서 그런 게 풀린 경험을 한 이후로 이 곳에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습니다.
꼴랑 3번 다녀왔는데도 벌써 단골집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아마 꽤 오래 갈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단골집이라 부를 만한 곳을 만들지 않는 편인데, 마음 놓을 단골집이 생긴다는 게 이런 걸까요.
여전히 날이 흐립니다. 환한 실내에 있어도 기분이 처집니다. 또 그 가게를 가야 하는 걸까요.
우중중한 날 가고 싶은 여러분의 비빌 언덕, 나만의 단골집은 어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