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 합창단 공연을 위한 녹음을 하러 가는 날이었다.
어제까지의 피곤했던 일과로 늦잠을 자려고 했었지만, 안 그래도 작은 아이 조금이라도 더 먹여보겠다는 마음에 기꺼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작년에 하루종일 서서 연습하느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맛있게 먹고 힘내서 연습할 수 있도록 슬라이스햄과 밥을 넣어 달걀말이를 해줬다. 어디에선가 끓는 물에 햄을 데치면 아질산나트륨이 제거된다는 말을 듣고 햄도 데쳐서 넣어주었다.
아이는 알람을 맞춰둔다고 했지만 20분이 지나가는데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방에 들어가서 일어나라고 아이를 깨우니 아이는 깜짝 놀라 "몇 시예요?" 한다.
평소엔 5분만 더 자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에 시간이 걸리는데 오늘은 벌떡 일어난다.
후다닥 씻고 책상위에 가져다 둔 햄밥달걀말이를 입에 넣는다.
나는 "맛있어?"라고 물었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은, "달걀 안에 밥이 들어가니 좀..."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말줄임표가 나올 땐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난 은근히 맛있다는 칭찬을 기대했나보다.
아이가 전에도 이야기를 했었는데 난 왜 이런 달걀말이를 만들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아침 한 끼 맛있게 먹고 가게 밥은 넣지 말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엄마의 욕심 때문이다. 좀더 많이 먹고 힘내라는 마음. 좀더 잘 크라는 마음..
사실 내가 요리실력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이가 태어난 후 10년이 넘으니 그나마 요리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알고 조금 할 수 있게 된 것일 뿐, 미각이 발달했다거나 손맛이 좋다거나 미적 센스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아기자기하게 소풍도시락을 꾸미는 것처럼 예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느 부모가 그렇듯 아이에게 주는 음식을 만드는 마음만은 진심이다.
그러다보니 아이의 말을 들은 나는 화가 벌컥 났다.
그래서 아이 방에서 나오면서 한 마디 던졌다.
"너 같은 아이 낳아서 키워봐!!!!!!"
나는 계속 씩씩대었고 얼굴에는 열이 올랐다.
너무 속상했다.
'내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 정성껏 궁리해가며 만들어줬건만 맛있다는 한 마디를 안해?'
괘씸해서 눈물까지 났다.
왜 이렇게까지 마음이 상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동안 쌓여있던 응어리가 폭발한 것이다.
내가 해준 음식을 게 눈 감추듯 맛있게 먹은 게 몇 번 안되기 때문이다.
돌 정도까지는 아주 잘 먹는 편이었지만 그 이후엔 입맛이 아주 까다로워졌다.
성격은 둥글둥글해서 엄마들이 다들 부러워했지만 정작 엄마인 내 입장에서는 흔쾌히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키도 작은 편인데다 잘 먹지 않으니 당연히 속이 탔다. 잘 먹나 싶으면 잠깐 뿐이고 음식을 해서 두 번을 연달아 먹은 적이 없었다. 맛있다고 해서 간격을 조금 띄고 잊을 때쯤 다시 주어도 곧 다시 싫증을 냈다.
나는 건강한 재료를 써서 건강한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원래 싱겁게 먹는 편이기도 하고 가족력 때문에 소금은 많이 안쓰려고 한다.
하지만 아이는 점점 더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마라탕, 불닭볶음면 등..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아이에게 맞춰준다며 음식 간을 좀더 하고 취향에 맞는 맛을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내 노력이 부족했을까..
아니면 아이의 입맛이 너무 까다로운 걸까..
우린 접점을 찾기가 왜 이리 어려운걸까..
나의 정성과 나의 마음이 거절당한 것 같아 속이 쓰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이제 너를 위해 이렇게 요리에 공을 들이나 봐라.
키가 잘 크건 말건 상관하지 않을거야. 네 운명이니까..
이제 모든 건 너 스스로 해. 절대 해주지 않을거야.
밥도 네가 원하는대로 네가 해 먹고, 학원도 공부도 하든 말든 네 인생이잖아?
스무 살이 되면 쫓아내야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할지 그 방향에 대해 마음이 안 설 때가 많다.
이젠 부모의 말을 전적으로 따를 나이가 아니기도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것을 어디까지 허용해줘야 할 지, 내가 아이의 활동 반경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것은 아닌지 선택의 순간마다 고민하게 된다.
아이를 다 키운 선배님들께서는 아이를 믿어주고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잘 자란다고 하지만 매번 내가 선택을 잘 했는지 곱씹게 되고 나도 감정이 있는 인간이다보니 매순간이 갈등의 연속이다.
내가 해준 햄밥달걀말이를 다 먹은 아이는 나갈 준비를 마치고 쟁반을 들고 부엌으로 왔다.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말에 화가 풀리지 않은 나는
"엄마가 해주는 모든 것에 감사함을 좀 느낄 줄 알아."라고 말했다.
말을 하자마자 또다시 후회다.
그 말은 하지 말껄..
힘내서 즐겁게 잘 다녀오라는 말만 할껄.
난생 처음 해보는 부모 역할은 매번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반성을 했으니 또 몇 일간은 잘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