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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Oct 01. 2021

카드 영업

 난 영업을 못한다. 그런데 첫 직업이 영업 사원이었다. 제약회사 영업 사원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7개월 만에 도망치듯이 그만뒀다. 실제로 도망친 건 아니고 마음이 그랬다는 것이다. 영업이 힘들어 도망치듯이 그만뒀는데 두 번째 직업 역시 교육상품을 파는 영업사원이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더니…. 딱 그 짝이다. 이 이야기는 보다 자세히 다른 글에서 다뤄 봐야겠다.     

 


 두 번째 직업을 그만두고 힘들어 잠시 쉬기로 했다. 바보 같은 건지 무던한 건지 두 번째 일은 4년 넘게 했다. 영업을 못 하는데 4년 넘게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상황이 꿈만 같다. 실재하지 않았던 일 같다. 너무 힘들었기에 꿈이었다고 착각하고 싶은 것 같다. 첫 직장에서 7개월, 두 번째 직장에서 정확히는 4년 4개월 해서 4년 11개월이니 5년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하지도 못하는 영업을 정말 고통스럽게 한 것이다. 그래서 너무 쉬고 싶었다.      

 


 그런데 웃긴 건 영업 때문에 힘들어서 쉬고 싶었던 그 시절, 백수임을 자처하고 쉬고 싶었던 그 시절에  백화점 카드 영업을 한 것이다. 이쯤 되면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 아닌 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 속에서 성적인 쾌감을 얻지는 않는다. 다만 고통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카드 영업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기억이 나는 건 카드 영업 사무실 사장님(?)이 좋았다는 정도뿐이다. 일주일 만에 못 하겠다고 도망치듯이 그만둔 나에게 따뜻하게 이야기해 주셨던 것 같다. 이마저도 그랬던 느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하는 일은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가서 조만간 백화점이 오픈하니 미리 백화점 카드 만들라고 하는 것이다. 연회비도 없어 부담도 없으니 어렵지 않을 거라는 사장님의 응원이 기억난다. 그런데 그마저도 못 했다. 결론적으로 영업은 드럽게(더럽게 가 맞는 표현이다.) 못 하는 게 맞다.     

 


 영업한답시고 정장 차려 입고, 가방 하나 들고 하루 종일 여기저길 돌아다녔다. 어디든 들어가서 인사하고 영업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문을 열고 들어 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백화점 카드니 주요 타깃 층이 젊은 여자들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여자 선생님들이 많은 종합학원에 들어간 적이 있다. 예상대로 여자 선생님들이 많았고, 나름 호응도 얻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한 선생님이 카드를 만들어 주려고 서류까지 쓰다가 말았다. 지금이야 카드 만든다고 서류 쓰는 시대가 아니지만 10여 년 전에는 그랬다.      

 


 이렇게 보통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여길 가지도 저길 가지도 못한 채, 방황하면서 하루를 마치곤 했다. 돌아다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벤치에 앉아 한숨을 푹푹 쉬며 자괴감에 몸서리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사무실 사장님이 착했던 것 같다. 그만두기까지 일주일 동안 단 한 건의 실적도 못 올렸는데 싫은 소리 한 번 안 들은 것 같다. 그만두는 순간에도 고생했다고 아쉽다고 이야기하셨던 것 같다. 죄송합니다. 일주일이지만 인건비만 축내서 죄송합니다.     

 


 시작한 첫날 이미 벌써 ‘아, 내가 미쳤지. 왜 또 영업을 하고 있을까?’하면서 그만 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괴감을 곱씹으면서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다 그만두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일이 있었다. 도저히 모르는 사람들에게 영업할 용기가 나지 않아 대학교 후배들에게 부탁을 했다. 대학시절에 꽤 친하게 지내던 여자 후배들이었다.     

 


 오래간만에 보자고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카드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엔 선배 오빠가 하는 말이니 어느 정도 들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후에 그들이 내게 보낸 그 시선이 주는 참담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민망하고, 쪽팔리고, 후회스럽고,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결심한 것 같다. 아마 그 다음날 그만뒀을 것이다. 후배들과도 그 이후로 거의 보질 못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순간, 후배들의 눈빛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럼 나도 모르게 뒷골이 뜨거워지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리고 속으로 되내인다. ‘참, ×신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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