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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n 04. 2021

무제

2021년 4월 26일

 태초의 숨결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자연이 있다. 세상에 이런 지형이 있나 싶다. 내 경험의 부족을 비웃듯 기괴한 지형이 눈앞에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억겁의 시간을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자리를 굳건히 지켜갈 거라는 다짐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웅장한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     

 


 붉은 토산이 보인다. 세계를 호령한 제국의 흥망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관광지로 전락해 버린 콜로세움을 닮기도 했다. 잭과 콩 나무에 나오는 거인의 어깨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면 아주 커다란 말발굽 모양이기도 할 것이다. 대지의 아래를 이무기처럼 흐르던 용암이 용솟음치려다 굳어 버린 듯 산을 이루고 있는 흙의 색이 붉어 그 기괴함이 배가 되어 보인다.      

 


 토산 자체도 신기한데 그 위에 놓인 기암괴석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누가 던져 놓았는지 외계인의 소행이라고 종종 오해받는 스톤헨지를 아이들 공깃돌처럼 보이게 하는 괴석들이 놓여 있다. 그것도 빈틈없이 서로 이웃해 놓여 있다. 가지런하게 나열되듯이 놓인 것들도 있고, 혹여 놓인 순간 외계인의 심사가 뒤틀렸는지 삐뚤빼뚤 놓인 것들도 있다. 고인돌이 찾아올 수 있다면 저는 신기한 조형물도 아닙니다하고 경배를 할 정도다.      

 


 기암괴석 중에 유난히 큰 것들이 있다. 결코 움직일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움직인다면 토산뿐만 아니라 밑을 받치고 있는 대지까지 흔들릴 정도의 힘이 느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늘도 노할 것 같다. 오래된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는 고목을 함부로 베면 하늘이 노하고 땅이 운다고 하지 않는가? 고목 따위는 비할 수 없는 웅장함과 두려움과 경외심이 드는 기암괴석이다. 외계인이란 믿기지 않는 존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저건 절대 인간에 의해 놓인 게 아니다. 신이 그랬을까? 혹은 외계인이 신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어떤 존재가 그러했건 웅장한 위용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아니다. 태초부터 어떤 존재에 의해 수동적으로 놓인 게 아니라, 그런 존재를 능가하는 독립적인 존재이며 최초자로서 능동적으로 놓인 듯도 하다.     

 


 조금 시선을 돌려 보니 웅장한 기암괴석들 중에 초라해 보이는 하나가 있다. 절대자의 모습에 버금가게 굳건할 줄만 알았던 괴석의 모습에서 초라함이라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한 때 초원을 호령한 맹수가 죽음을 앞두고 힘없는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듯이 놓여 있다. 더 들여다보니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니라 진정한 절대자라 할 수 있는 시간에 의해 부스러져 있다. 웅장하고 두렵고 경외심을 일으키던,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기암괴석이 시간과 비바람에 의해 바스러져 있다. 시간의 흐름과 비바람에 의한 생채기가 썩어 문드러진 고목의 나이테처럼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덧없음과 겸허, 겸손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윤형석 님.”

“네.”

“다음 주 월요일, 그러니까 4월 26일에 임플란트 시술 예약했습니다.”

“네….”     

 

망상에서 깨어나 힘없이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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