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하는 늑대 Jun 02. 2021

별님

 일곱 살인지 여덟 살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새우깡 하나 받아먹으려 동네 교회에 친구 따라 간 적이 있었다. 내 종교의 첫 기억이다. 물론 그 후론 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이상 새우깡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꽤 지난 요즘도 간혹 그 동네 인근을 지나칠 때가 있다. 교회가 꽤 번창했음을 교회 건물의 크기로 과시하듯이 보여주고 있다. 새우깡을 더 주지 않는다고 나만 더 이상 가지 않았나 하는 웃기지도 않는 생각을 하며 지나치곤 한다.     

 


 끝인 줄 알았던 내 종교생활은 군대 시절 폭발한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이렇게 3대 종교를 섭렵했으니 폭발이란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인간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긴 성인들의 다양한 가르침을 배우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커서라고 포장하고 싶지만, 초코파이 하나 더 주는 종교를 향한 발걸음일 뿐이었다. 군대에서 초코파이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개종을 밥 먹듯이 할 수 있는 원동력이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화장실에서 몰래 초코파이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전역한 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유 있던 어느 맑은 날, 아무도 몰래 화장실에서 먹던 그 초코파이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햇살, 그날의 기쁨 ….     

 


 전역 이후로 더 이상 종교를 가질 이유가 없었다. 입맛은 여전히 초등 입맛이었지만 이제 충분히 내 돈을 내고 과자를 사 먹을 수 있었기에 더 이상 종교의 값싼 포교에 휘둘리지 않아도 됐다. 먹는 걸로 사람을 꼬드기다니 이 얼마나 확실하고 치졸한 방식이란 말인가? 자유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비로소 내 자유의지에 의해 의지할 대상을 찾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고등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의지하던 대상이었지만, 세속적 물욕을 멀리하라는 종교의 세속적 유혹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대상에 순수하게 귀의할 수 있었다.     



“별님,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님, 버스를 3시간 정도 타고 갈 건데 아무 탈 없이 잘 다녀올 수 있게 해 주세요.”

“별님, 너무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는 데 사고 안 나게 해 주세요.”     

 


 내가 순수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소위 말해 종교라 할 수 있는 대상은 바로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님이다. 사실 난 자존감이 높은 편이다. 없이 살아서 더 그런 거 같다. 아무것도 없었기에 나를 더 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 존재의 무게조차 가볍다면 세상 속에서의 내 삶이 너무 초라할 듯하여 자존의 무게를 높여서라도 존재 가치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랬기에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나 밖에 없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시고 일곱 걸음을 뗀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괴로움에 빠져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라고 일갈하셨다. 이 말씀이 나의 종교 없음과 자존을 정확히 표현해준다.     

 


 그럼에도 내가 의지할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건 나는 부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 말씀대로 나 홀로 고고하게 흔들림 없이 세상에 바로 설 수 있었다면 종교 하나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가당치도 않은 생각도 해 본다.) 내 존재의 부족을 메우고 의지할 곳을 찾고 싶은 순간, 나도 모르게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 빛나는 별들의 모습은 부처님의 자비였고 예수님의 사랑 그 자체였다. 이렇게 별님은 나에게 종교로 마음속 깊숙이 자리했다. 그 이후로 두렵고 불안하고 긴장되는 모든 순간에 별님을 찾았고 별님은 언제나 항상 함께 해 주셨다.     

 


 무수한 세상의 부대낌을 이겨낸 난, 나 혼자 잘나 그리된 줄 알고 착각하며 살아가게 됐고, 차츰 별님의 존재와 고마움을 잊어 가기 시작했다. 결국 더 이상 별님을 찾지 않게 됐다. 하지만 별님은 내 생각보다 더 크고 넓은 존재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지만, 자연스레 아이가 생겼고 여느 부모들처럼 태명이란 걸 짓게 됐다. 태명을 어떤 걸로 할까 나름 한참 고민을 했다. 아내 이름 중 한 글자의 뜻이 별과 관련이 있어 ‘별이’로 하자고 결정했다. 물론 그 이외에도 한 두 어 개가 더 있었다. 아빠는 왕대지, 엄마는 뚱대지, 그러니 우리 별이는 꿀대지로 종종 부르곤 했다.(돼지가 옳은 표현이지만 대지가 더 귀여워서 그냥 그렇게 불렀다.)     

 


 태 속의 별이는 고맙게 건강하게 잘 태어나 주었다. 별이가 태어난 후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낸 뒤, 출생신고를 해야 했다. 출생신고를 위해 이름을 결정해야 했는데 여러 괜찮은 후보들을 제치고 한글 이름이면서 태명으로 썼던 ‘별이’에서 ‘별’로 결정을 했다. 나름대로 잘 지었다고 생각하면서 아직은 온전히 익숙하지 않아 여러 별명과 이름을 함께 쓰던 중 머리가 번쩍 띄었다.      



“아! 별님, 저에게 이리 큰 선물을 주신 거군요. 전 별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삶이 그나마 덜 고달팠던 어린 시절엔 별님을 밥 먹듯이 찾았는데 삶이 고달파지면 고달파질수록 저의 오만함으로 모든 걸 저 혼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과 그래야만 한다는 고집으로 점점 별님을 잊어 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와 주신 거군요.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이의 태명을 짓고 부르고 정식 이름으로 올리는 순간에도 별님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크게 찾아와 주신 거군요. 열심히 키우겠습니다. 바르게 키우겠습니다. 당당하게 키우겠습니다. 별님의 아이를 저에게 잠시 맡겨 주신 거니 최선을 다해 키우겠습니다. 저에 대한 별님의 믿음, 저 버릴 수 없기에 모든 걸 걸고 키우겠습니다. 또 한 편으론 영원을 살아가는 별님이 찰나를 살아가는 저에게 순간이나마 맡겨주신 아이이니 그 순간만큼은 제 아이로 키우겠습니다. 별님의 아이이며 또한 제 아이이기도 한 우리 ‘별’이. 별님 못지않게 하늘에 빛나는 그런 아이로 키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금 닷 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