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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n 02. 2021

금 닷 돈

 난 액세서리가 싫다. 그보다는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맞겠다. 아니 정확히는 액세서리 하는 걸 귀찮아한다. 반지, 목걸이, 귀걸이, 시계 …. 끼고 빼고 닦고. 생각만 해도 그냥 귀찮다. 거기에 더해 액세서리가 주는 인위적인 반짝거림보다는 상대적으로 무던한 사람이 자체적으로 내는 그런 빛이 좋다.     

 


 기억엔 없지만 내 첫 번째 액세서리는 아마도 백일반지일 것이다. 그 반지들은 어디 갔을까? 기회가 되면 40여 년 전 일이지만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다. 문득 궁금증이 인다. 왜 백일에 반지를 주는 것일까. 백일이 됐다 함은 태어나서 무탈하게 기본적인 면역체계가 잡혔다는 것을 뜻할 것이고 그런 시기를 맞이한다는 의미의 축하일 텐데 왜 반지를 선물할까?      

 


 손에 맞지도 않는 금반지를 의미도 모르는 아이가 끼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아이의 백일을 축하하는 의미의 반지인 건지, 부모를 축하하는 의미인 건지 헷갈린다. 백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아이가 어릴 때의 행사라는 게 표면적으론 아이를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 대부분이 어른들을 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애매한 백일반지가 내 삶 속에서 첫 번째 액세서리다.      

 


 두 번째는 중학교 시절 즈음에 끼던 은반지다. 정확하진 않지만 야영 아니면 수학여행을 가서 샀던 거 같다. 야영이란 표현이 어색한가? 지금이야 캠프, 캠핑이란 표현을 쓰고 있지만 라떼는 야영이라고 했다. 꼰대같이 내가 예전에 어땠다 하는 이야기를 간혹 하는 이유는 내 세대가 예전과 지금의 과도기적인 세대 같은 이런 느낌이 좋다. 이상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은근히 좋다. 그래서 뜬금없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샐 수도 있으니 이해 바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그 은반지를 꽤 오래 끼고 다녔던 거 같다. 손가락마다 반지를 끼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와 관계없이 네 번째 손가락에 끼고 다녔었다.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항상 끼고 다녔었고, 집에 들어 와선 신줏단지마냥 책상 첫 번째 서랍에 고이 모셔두기도 했던 거 같다. 그런데 웃긴 건 나름 소중했던 은반지의 행방을 지금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팔아먹을 만한 가치도 없는 은반지를 어떻게 했는지, 성격상 그냥 버리진 않았을 텐데 하는 기억의 끝자락을 부여잡아 봐도 도무지 그 끝이 기억나질 않는다.     

 


 세 번째는 20대 초반에 차고 다니던 싸구려 메탈 시계다. 내 외형적인 모습을 본다면 소도 잡게 생긴 산적 같은 이미지인데 은근히 선이 가는 여성스러운 선호가 있다. 남자들이 차는 메탈 시계 하면 보통 시계 알도 크고 굵고, 시곗줄도 못지않게 굵은 편이다. 하지만 내가 착용하던 시계는 분명히 메탈 시계지만 여자들이 착용하는 것보다 아주 조금 더 큰 편이었다. 여자들이 차는 얇고 얇은 팔찌 같은 시계를 탐냈다고 하면 내 선호가 어떠한지 충분히 설명이 될 것 같다. 건전지가 다 될 때까지 차고 다니다 건전지를 갈아 끼워야지 하다 결국 귀찮음에 못 이겨 역시 어디 갔는지도 모르게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 삶의 액세서리의 역사는 이 정도다. 물론 여기에 더해 현재로선 가장 소중하다 할 수 있는 결혼반지가 하나 더 있기는 하다. 이 역시 부부의 귀찮음이란 합의에 의해 아내의 화장대에 고이 모셔져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려 한다. 시간 순서상 20대 초반에 착용하던 메탈 시계 전에 이야기를 했어야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기에 이제 이야기를 한다. 고등 시절에 차고 다니던 지금의 결혼반지를 제외한 내 액세서리 역사상 가장 비싼 금목걸이 이야기다. 원래 엄마 금목걸이였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약간 여성스러운 선호가 있다. 물론 이 목걸이는 여자 목걸이라고 하기엔 다소 굵기는 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남자들의 그런 우락부락한 금목걸이는 아니었다.     

 


 엄마가 나에게 준 건지, 내가 좀 차고 다니겠다고 반 강제로 뺏은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꽤 오래 차고 다녔었다. 목걸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비싼 액세서리였기에 목에서 빼질 않았다. 그렇게 내 몸에 있는지도 모르게 익숙해졌을 즈음, 사정이 조금 급해 판다고 엄마가 가져가 버렸다. 어린 마음에 내 것도 아닌 목걸이를 가져가지 말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지만 경제적 사정이 급하다니 어쩔 수 없었다. 내 삶에서 가난은 일상이었기에 어린 마음에 억지를 부리다가도 경제적 현실 앞에선 포기가 쉽고 빨랐다. 기억에 더 이상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꽤 오래 분한 마음을 가졌던 거 같다.     

 


 시간이 많이 흘러 누군가 이야기를 먼저 꺼내거나, 기억을 억지로 소환하지 않는 다면 생각도 나지 않을 이 목걸이 이야기를 며칠 전 엄마가 뜬금없이 하는 게 아닌가? 근 20여 년 전 이야기를 말이다. 아는 사람 사이에 집인가 뭔가를 소개해줬다고 한다. 공인중개사도 아니면서 성사가 되면 고맙다고 수수료 개념으로 얼마간을 받는다고 하는데 뒤에 나올 이야기도 모른 채 엄마가 그걸 왜 받느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줬다. 자식들이 이렇다. 아들들이 이렇다. 아니 나란 놈이 이렇다.     

 


 뭐 그렇게 됐다고 하기에 더 자세히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이어 하는 말이 “너 예전에 목걸이 엄마가 가져갔잖아. 그게 마음에 걸려. 돈 들어오면 한 닷 돈정도 목걸이 해줄게” 하기에 처음엔 “무슨 목걸이를 말하는 거야” 하고 되물었다. 한참 뒤에 “아, 그 목걸이. 아유 됐어. 그게 언제 적 일이야” 하고 웃고 말았다. 본인의 목걸이를 필요야 어찌 됐든 본인이 가져간 건데도 자식의 서운함에 죄스러움을 안고 있는 게 우리 엄마들이다. 그러지 말라고, 이제 다 컸으니 그만 당신 삶 좀 살라고 해도 자식을 바라보는 게 우리 엄마들이다.      

 


 생각지도 않은 적잖은 돈이 들어오면 좋은 옷이나 하나 사 입으면 될 것을, 자기밖에 모르는 아들은 기억도 안 나는 목걸이를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해주겠다고, 들어오는 돈이면 금 닷 돈 정도로 괜찮은 목걸이 할 수 있을 거라고 하는 엄마를 보면서 미안함과 답답한 마음이 동시에 일었다.     

 


 그러면서도 요즘 아이를 키우느라 이거 저거 들어가는 돈이 많아 차라리 현금으로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엄마도 나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됐다고, 괜찮다고 엄마 쓰라고 넘겼다. 그리고 두어 번 더 이야기를 했다. 그냥 엄마 쓰라고…. 두어 번 더 이야기한 마음 한 구석엔 엄마를 생각하는 것과 더불어 내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이기도 했다.     

 


 20여 년간 엄마 속을 내내 짓누르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금 닷 돈만큼의 무게는 엄마 마음속에 짐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못난 아들의 마음의 짐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그 짐을 갚을 수나 있을까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못 갚을 거 같다. 불효 막심한 놈.     

 


 문득, 예전에 회사에서 감사에 대한 강의를 듣던 때의 일이 떠오른다. 강의 도중 강사가 지금 당장 부모님에게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 보자는 과제를 줬었다. 그렇게 강사가 시켜서 엄마에게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 봤다. 보낸 후에 엄마에게 잘 받아 봤냐고 확인도 못 했다. 엄마도 별 말은 없었다. 뒤에 동생이 “너 회사에서 교육받다가 감사문자 엄마한테 보낸 거지” 라며 엄마가 참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줬다. 이런 놈도 아들이라고 낳고 미역국을 먹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미안하고 미안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앞으로 더 잘해야지 이런 생각보다 결혼하게 되면 나 같은 아들놈은 낳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더 앞섰다. 역시 불효 막심한 놈이다. 후에 결혼을 했고, 다행이라고 해야 되는 건지 뭐라고 해야 되는 건지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 고맙다. 별아.     

 


“엄마, 못난 아들 저 잘났다고 싸가지 없게 잘 살고 있으니 이제 제발 엄마 삶을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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