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원하지 않는 백수 생활이었다. 그리고 조급했다. 나이도 먹어 가고, 시작한 커피를 중도에 못 하게 되니 애가 닳았다. 특별히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방법은 없었다. 정확히는 그런 방법적인 부분을 잘 몰랐다. 할 수 있는 건 가능성이 낮지만 오롯이 지원하고 면접을 보는 것, 나이가 조금 있지만 성실함과 겸손함으로 어필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좋은 결과를 맞이할 뻔한 면접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어이없었던 면접이었다. 면접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다른 사업을 하는 분이었는데 카페는 처음 하는 사장님이었다. 그래서 면접 장소에 지인 한 분과 같이 나왔다. 카페 운영은 처음이고, 사람을 뽑아 써 본 적도 많지 않았기에 조언을 얻고자 관련 경험이 많은 분과 함께 나왔다면서 면접이 시작됐다. 크게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니었다. 부족한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능력 중에 하나가 사람 앞에서 말을 잘한다는 것이다. 누가 함께 한다고 긴장할 만큼 담이 작지도 않을뿐더러 말은 곧 잘했으니 그냥 그랬다.
면접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정말 좋았다. ‘화기애애和氣靄靄’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딱 그 표현 그대로의 분위기였다. 사장님은 성도 같다고 이런 것도 맞는다는 이야기까지 할 정도였다. 같이 온 지인은 아마도 사장님이 같이 일을 하자고 할 것 같다고 면접 장소에서 그냥 이야기를 했다. 여하튼 더할 나위 없이 분위기가 좋았던 면접이었다.
면접을 마치고 내일 연락을 준다기에 당연히 연락이 올 줄 알았다. 이 사장님도 사업체가 여러 개여서 카페를 믿고 맡길 만한 조금은 나이가 있는 사람을 원했다. 크진 않지만 나름 매니저로서 카페를 조금이나마 주도적으로 끌어 갈 수 있겠다 하는 기대를 하며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적당한 시간에 연락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일정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연락은 없었다. 여유 있게 연락을 하려나 보다 하고 저녁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해 봤다. 받지를 않았다. 사업체가 여러 개라고 하니 바쁘겠지 하고 얼마 뒤에 다시 전화를 했다. 역시 받지 않았다. 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언제나 늘 그렇듯 불안한 예감은 항상 맞아 들어간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혹시 몰라 문자를 남겼다. 그리고 하루를 더 기다렸다.
하지만 보기 좋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그날의 분위기는 뭐였을까? 내가 귀신하고 이야기를 한 건가. 그냥 소위 ‘호구’를 잡힌 걸까? 확인할 길이 없었다. 채용하는 쪽에서 채용을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의무는 없지만 듣고 싶었다. 하지만 들을 수 없었다. 전화도 한 두어 번 더 해보고, 문자도 더 보내봤지만 답은 오질 않았다. 더 이상 연락을 할 수는 없었다. 곧 죽어도 자존심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날의 분위기를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면, 최소한의 도리로 이러저러한 이유에 의해 채용을 못 하게 됐다는 연락이라도 줄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만의 착각인 건지 내가 바보 같은 건지 모르겠지만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카페가 어딘지 알았기에 얼마든지 찾아가 따져 물을 수도 있었으나 선을 그었다. 그만 하자고. 가슴을 진정시키고 머리로 생각했다. 이유가 있겠지. 나와의 면접에 이어 이미 잡혀 있던 또 다른 면접이 있었겠지. 그 사람이 나보다 못하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나란 사람이 반드시 채용을 해야 할 만큼의 완벽한 능력과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 그럴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 내 자존심이 다치지 않을 테니. 이렇게 잊어버렸다. 연예인 하하가 방송에서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제가 오늘 또 하나를 배웠네요.’ 나 역시 또 하나를 배웠다.
면접을 보러 다니는 일은 계속됐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결혼도 포기한 마당에 엄마 마음이 아픈 부분만 덮어 내면 그냥 백수로 살아도 뭐…. 마음이 바닥에 이른 시점에 거짓말 같이 기회가 왔다.
카페의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요즘이야 대형 카페들이 차고 넘치지만 그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식선의 카페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절이긴 했지만, 아직까진 카페가 본격적으로 대형화 대기 전이었다. 그래서 그런 규모에 맞게 보통은 사장님과 1대 1 면접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번 카페는 3명의 면접관과 면접을 보게 됐다. 분명히 작은 카페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면접관이 3명이나 나온 다고?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주도해도 그쪽이 갑이고 난 을이기에 얼마든지 ‘호구’를 잡힐 수 있다. 그러니 당황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이런 상황에선 경험을 준 나이가 또 한몫한다.
한 명은 이사님, 한 명은 사장님 그리고 매니저. 이렇게 3명의 면접관과 면접을 보게 됐다. 어허! 직위 봐라. 규모가 큰가? 알고 보니 사장님과 이사님이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는 분들이었다. 카페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1, 2층은 카페, 3층은 설계사무실이 자리했다. 규모가 내 생각과 달리 꽤 컸다. 하지만 나 역시 그리 만만한 놈은 아니다. 속으론 적잖이 당황했지만 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질문에 답을 했다.
3명의 면접관이 번갈아가며 다양한 질문들을 했고, 난 ‘청산유수靑山流水’라는 단어가 이런 뜻입니다를 보여 주듯이 막힘없이 대답을 했다. 결과적으로 사장님과 이사님은 만족해하는 듯했으나 매니저가 영 탐탁지 않은 눈빛을 계속 내비쳤다. 속으로 뭐 어쩌라고? 이런 심정이었다. 역시 티를 내진 않았다.
매니저의 그런 불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사장님과 이사님에 비해 카페 실무를 담당하는, 그러니까 나와 부딪히게 될 사람인데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몇 번에 걸쳐 이야기를 했지만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에서 일을 하겠다고 다짐한 그 순간부터 난 이 부분을 항상 경계해 왔다. 내 나이를 잊고, 나를 낮추지 않으면 카페에서 일을 할 수 없다. 이 마음은 카페 일을 구하는 과정 내내 누구와 면접을 보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지키려고 애를 썼다. 해서 이런 맥락의 질문을 주로 하는 매니저의 마음과 불만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하는 건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나 할 말은 충분히 있기에 해 본다면 매니저의 마인드도 다소 문제가 있었다. 자기 밑(?)의 알바 혹은 직원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 했다. 더 문제는 매니저가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면접 당시에는 그냥 느낌이었지만 뒤에 경험을 통해 리더십을 표현할 만한 능력이 없음을 확인했다. 능력은 없는데 그러고 싶다? 여럿 피곤해지는 일이다.
여하튼 그런 매니저의 눈빛이 느껴졌지만 주눅이 들거나 밀릴 내가 아니었다. 사장님과 이사님의 질문은 물론 매니저의 질문엔 더 성심성의껏 대답을 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진심 어린 마음으로 그랬다기보다는 아이를 달래는 ‘괜찮아, 겁내지 마. 안 물어. 너 매니저 해. 네가 내 상사인 거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나이 있다고 조직 속에서 보다 어린 상사 뭉갤 만큼 바보 아니니까.’ 이런 마음이었다.
나름 밀도 있고, 분위기도 묘했던 면접은 끝났다. 매니저와의 관계가 신경이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 생각보다는 규모가 있는 카페였고, 뒤 이어 몇 개의 매장을 더 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을 하고 싶었다. 때를 기다리며 매니저는 얼마든지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달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