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그랬다. 더 정확히는 기분이 뭐 같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다만 지면이라 격한 표현을 자제할 뿐이다. 좋아하는 일 좀 하겠다는 데 이리 어려운 건가 싶었다. 세상을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꼈다. 내가 좋다고 내가 괜찮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었다. 단순한 능력의 부족이라면 할 말이 없겠는데 이건 뭐 그런 것도 아니고 답답했다.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사회니까 사람과의 관계라는 측면도 능력의 일부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여하튼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바뀌는 건 없지만 이렇게라도 화를 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30대 초반에 나름의 직장을 때려치우고 좋아하는 커피를 해 보겠다고 나섰는데 벌써 두 번째 실패다. 자괴감이란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내 기억이 맞으면 ‘자괴감’이란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몸소 체험하면서 알게 된 계기였다. 일자리 알아보는 것도 잠시 멈췄다. 마음이 꼬여 버리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상황을 놔 버렸다. 그런데 웃긴 건 그랬더니 일시적인 평온의 시기가 찾아왔다. 그래서 불교에서 그렇게 ‘무소유’를 주창하는 것 같다. 놔 버리면 편하다. 자칫 스스로도 놔 버릴까 그게 두려울 뿐.
돌아보면 또 잘했다고는 할 수 없어 자책과 자괴감으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시 좀 나와 줄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이 양반들이 나를 가지고 노는 건가 싶었다. 이유를 물었다. 내가 나가고 난 뒤 사람을 다시 뽑았는데 매니저와 또 부딪혔다는 것이다.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매니저는 본인의 성향과 성격에 의해 나 이전에도 많은 알바 혹은 직원들과 부침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함께 한 시간이 있었기에 이사님이 차마 처 내지 못했던 것이다.
상황이 반복되자 문제는 매니저라고 판단한 이사님이 결국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매니저를 정리하기로…. 그리고 당장 매니저급을 구할 수 없어 연락을 준 것이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다. 순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나름 나를 인정해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카페에서 일한 시간은 기껏해야 보름 남짓이다. 상황이 급해서 라곤 하지만 그럼에도 연락을 줬다는 건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해 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못 이기는 척 알겠다고 내일부터 나가면 되냐고 물으니 그래 주면 고맙다고 답을 줬다. 정말 급했던 것 같다.
이렇게 나는 이 카페의 매니저가 됐다.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얼마 전까지 같이 일을 했던 알바들도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한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나름 전 매니저의 그림자를 지울 필요가 있었다. 다른 건 필요 없고 강압적이었던 분위기만 풀어 주면 될 것 같았고, 그렇게 했다. 카페 업무에 대한 기본과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 정도만 지켜 주면 나머지는 보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로 바꿔 갔다.
이때 마침 커피를 하고 싶어 대학교도 가지 않은 알바 한 명을 채용했다. 이 친구는 처음부터 알바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 커피를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들어 왔다. 나 역시 늦게나마 커피를 제대로 해 보고 싶은 열망으로 카페 일을 시작했고 의도치 않은 상황에 본격적인 카페 매니저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전 카페도 매니저처럼 혼자 다 운영을 했지만 그 카페와 이 번의 카페는 규모부터 달랐다. 그래서 조금 더 매니저다운 그런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과 그 친구의 등장은 절묘하게 들어맞아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커피를 그저 팔기 위함이 아닌 공부하는 마음가짐으로 서로 토론도 하고 배운 걸 공유도 하면서 일을 했다. 손님까지 어느 정도 들어오는 규모가 있는 카페였기에 커피에 대한 토론과 공부는 더 빛을 발했다. 손님들에게 커피 맛 괜찮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내가 매니저로 있었기에 커피는 기본적으로 내가 만들었다. 그런데 커피 맛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불분명했던 목표가 명확해지는 듯했다. 이 카페에서 한 번 제대로 해 보자 하고 다짐을 했다. 몇 개의 매장을 더 내면 그 매장은 처음부터 내가 매니저로 이사님과 만들어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변수가 하나 생겼다. 이 카페는 브런치 brunch까지 같이 하는 카페였다. 브런치 카페가 붐을 이루던 시기이기도 했고, 규모도 있는 카페여서 그랬는지 브런치를 처음부터 같이 했다. 커피 본연의 맛이라든지 카페 자체의 분위기를 해치는 무엇인가 있다면 꺼려지긴 하는데, 브런치는 점신 전후로 잠시만 운영하는 거니 괜찮겠다 싶었다. 그리고 괜찮았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변수가 생기기 전까지는. 오히려 은근히 흥미로웠다. ‘저런 메뉴도 있구나. 이 소스가 이런 맛이구나. 아! 이 빵의 기원이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조금은 다른 분야지만 커피와 함께 할 수 있는 분야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사님이 판을 키웠다. 브런치를 넘어 이탈리아 음식까지 팔기로 한 것이다. 매니저인 나와 상의를 하긴 했으나 답은 정해져 있었고, 대답만 하면 되는 그런 상의였다. 물론 대답은 당연히 ‘예스’가 되어야 했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카페가 아닌 레스토랑이 돼 버리는 것이다. 물론 전에 잠시 일했던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시작은 카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간단한 브런치가 아닌 이탈리아 음식을 판다는 건 자칫 커피 메뉴 혹은 카페 분위기가 일정 부분 침해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3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