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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n 05. 2022

미련

 셔츠가 찢어졌다. 아끼는 셔츠인데 짜증이 치민다. 꿰맬 수 있으면 좋으련만 꿰맬 수 있는 형태로 찢어지지 않아서 그럴 수가 없다. 누구나 그런 옷이 있을 것이다. 가지고 있는 옷들 중에 유난히 잘 어울리는 옷, 입고 나가는 날 은근히 기분 좋은 옷, 이번에 찢어진 하얀 셔츠가 그런 옷이다.



 많이 아끼는 옷이니 심사숙고해서 내가 직접 골라 산 옷 같지만 또 그렇지는 않다. 동생이 준 옷이다. 정확히는 동생 남편이 입으려고 산 옷인데 조금 크다고 해서 입으려면 입으라고 준 옷이다. 동생 남편은 키가 조금 작은 편이고 나는 조금 큰 편이다. 팔 길이가 약간 짧은 듯했으나 입을 만해서 그냥 입었다. 한 6년 전 일 같다.



 비싼 옷은 아니었다. 물론 동생 성정 상 비싼 옷이었더라도 안 맞았으면 그냥 줬을 것이다. 여하튼 그리 비싼 옷은 아니었다. 저렴한 SPA 브랜드 제품이었다. 저렴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지만 간혹 득템 하듯이 얻어걸리는 그런 느낌의 옷이었다. 약간은 두께감이 있는 리넨 소재 같은데 어른들 표현으로 톡톡한 느낌을 주는 옷이었다. 청바지에도 면바지에도 잘 어울리는 입고 나가면 산뜻해지는 그런 옷이었다. 흰색이라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입는 순간마다 좋은 기분을 준 옷이었는데 6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인지 안 그래도 목둘레 부분이 조금씩 헤지고 있었다. 헤진 부분마저 소위 빈티지한 느낌을 주는 옷이었는데 차에서 가방을 내리다 유리창에 이상하게 걸리면서 찢어진 것이다. 입에선 짜증 섞인 격한 발음의 말들이 계속 튀어나왔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꿰맬 수 없게 찢어져서 더 짜증이 났다.



 세탁소에 맡기면 해결이 될 것 같기는 한데 거기까지 가기엔 입어온 시간도 충분했고 그만큼의 노력과 돈을 들이기에도 솔직히 조금 아까웠다. 얻어 입은 옷이 아니라 내가 산 옷이면 조금 달랐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뭐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비싸지 않은 옷, 6년 정도 입었으면 됐지 하는 생각이 더 크다고 해야 되나?



 찢어진 그날 이후로 셔츠는 옷 방의 어정쩡한 위치에 걸려 있다. 새 옷 혹은 빨아서 곱게 개 둔 옷들과 함께 있지도 못하고 빨래 통에 던져지지도 못하고 있다. 찢어진 게 근 3주 정도 전이었을 텐데 아직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그대로 걸려 있다. 아마도 저렇게 걸려 있다 조만간 버려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도 아닌데 미련이 남아 방치해두는 중이다. 단어 그대로 방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건 아니고 그냥 하지 않는 딱, 미련이 남아 그냥 걸어 두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성격이 그렇다. 쓰던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오래된 물건이 여럿 있다. 20대 초반엔 뻔질나게 입고 나간 티를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집에서 편한 옷으로 아직까지 입고 있다. 스마트폰을 쓰기 전엔 그 유명한 모토로라 레이저라는 피처폰을 8년 정도 썼었다.



 이런 물건들을 찾아보면 더 많을 텐데 그렇다고 궁색하지는 않다. 성격상 별스럽지 않게 물건을 오래 잘 쓰는 편이다. 엄마의 표현을 빌자면 물건을 ‘정하게’ 쓴다. ‘바를 정’ 자의 의미일 것이다. 이런 내 성격을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기에 이제 저 셔츠를 과연 언제 버릴까 하는 희한한 의구심이 드는 수준까지 왔다.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미련한 미련이 덜 찼기에 아직은 아니다. 뭐 하는 건가 싶겠지만 그냥 그렇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이치와 순리대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다. 모두를 이해시킬 수 없지만 그 사람에게만은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상황이 설명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내 모습 같기도 해서 걸어 두고 보는 걸 수도 있다.



 마음속에 미련이 다 차올라 넘치거나 헤매는 내 마음이 갈피를 잡는 그 순간 아마도 버려질 셔츠의 명복(?)을 미리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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