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하는 늑대 Jun 26. 2022

caffe-

 커피의 몇 가지 오해와 진실까지는 아니고 커피를 나름 배우고 현장에서 일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의 생각 정도를 말해보려 합니다. 진실까지 말하기엔 배움과 경험이 부족해 감히 진실이란 단어를 쓸 수는 없습니다.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커피는 ‘기호嗜好’ 식품입니다. 음료라고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먹는 거니 식품이라고 그냥 하겠습니다. 기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무엇을 즐기고 좋아하는 일’이라고 설명돼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무언 갈 즐기고 좋아하는 자체를 의미하는데 주체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즉, 내가 좋다면 어떻게 즐겨도 상관없다는 말이 됩니다.



 내 입맛이 이 세상 입맛이 아니어서 펄펄 끓는 커피에 칼칼하게 고춧가루 팍 풀어 마신다 한들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다른 기호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억지로 먹인다면 문제지만 그게 아니라면 하등 문제 될 일이 아닙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습니다만 기호라는 것이 그런 겁니다.



 여담입니다만 어렸을 때 엄마가 어디에서 듣고 왔는지 어느 날 그냥 식빵에 마요네즈를 잼처럼 바르고 그 위에 설탕을 솔솔 뿌려 샌드위치로 만들어 준 적이 있었습니다. 이게 뭐지 싶었는데 이렇다 할 거부감 없이 호기심에 먹어 봤는데 맛이 꽤 괜찮았습니다. 이 방식이 흔히들 먹는 방식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간간히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들 처음 들어 보는 반응을 보인 걸로 봐서는 그리 흔한 방식은 아닌 듯합니다. 여하튼 혼종 같지만 그게 또 어울릴 수도 있고 일반적으론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나는 괜찮을 수 있습니다.



 기호란 그런 것이고 커피 역시 대표적인 기호식품입니다. 예전에 듣기로는 어떤 스님은 커피로 국수도 말아먹는다고 들었습니다. 드립으로 내려 커피 드시는 스님들 꽤 있습니다. 순간 들어오는 생각은 뭐! 커피로 국수를 말아먹는다고? 아니 그럼 뭐 김치도 곁들이고 간장도 타고 그렇게 먹나? 이럴 수 있겠지만 그런 국수가 아닌 조금은 말갛게 혹은 연하게 커피를 내리고 그 맑은 커피 물(실제로 그렇게 드시는 걸 본 적은 없습니다만 왠지 진하게 내리면 조금 먹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추측으로 생각해 본 부분입니다. 물이 많이 들어간 커피이니 커피 물이란 표현이 적절할 듯합니다.)에 그냥 삶은 국수만 말아먹으면 생각보다 괜찮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커피가 또 탄수화물 하고 잘 어울립니다. 탄수화물을 대표하는 음식이 빵인데 빵과 커피의 조합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국수 역시 탄수화물입니다. 일반적이진 않지만 이상할 건 없습니다. 국수를 커피에 말을 열정까진 없습니다만 취향은 충분히 존중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김밥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같이 먹는 걸 좋아합니다. 김밥도 주 재료인 밥이 탄수화물이니 역시 어울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다시 커피 본연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 보면 자판기 커피 등의 인스턴트커피, 웬만한 대한민국의 집과 사무실 어디에 가나 있는 믹스커피, 드립 커피,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만드는 다양한 커피음료들, 제가 집에서 편하게 즐겨 먹는 소위 알 커피 등. 어떠한 형태와 방식으로 즐기든 기호식품인 커피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즉, 이런 방식으로 먹는 커피가 옳고 저런 방식의 커피는 그른 방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스턴트커피의 기반이 되는 알 커피의 추출방식도 커피를 사랑해마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추출방식인 드립과 근본은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분무 건조법이 있고 동결건조법이 대표적인 방식일 겁니다. 추출하고 분무 건조와 동결건조라는 방식을 통해 유리병에 담겨 저렴한 가격에 우리 앞에 놓이는 것입니다.



 원두를 손수 갈고 드리퍼와 필터 등을 준비하고 물을 끓이고 보기에도 예쁜 드립포트로 심호흡을 하면서 나만의 드립 커피를 내리는 과정과 어떻게 하면 커피의 맛과 향을 유지하면서 대량 생산해 저렴하게 소비자들에게 공급할까 하는 고민과 공정을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짝 옆으로 빠지면 개인적으로 ‘수제手製’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식음료 매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노고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얼마나 고생이겠습니까. 거의 다 만들어진 재료를 가격도 저렴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인데 마다하고 본인의 노력과 정성 그리고 시간을 들여 만들어 냈을 테니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돈을 주고 식음료를 사 먹는 고객에게 있어 본질은 맛 자체지, 수제로 만들었는지의 여부는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수제로 만들어 맛이 좋으면 금상첨화입니다. 돈을 더 지불할 가치가 충분하고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맛은 평범하거나 심지어 별로인데도 스스로의 노력과 정성을 바탕으로 밤잠을 설쳐가며 직접 만들었으니 그 부분을 보상받겠다고 돈을 더 받는 부분은 인정해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가게들을 많이 봤습니다. 속으로 어쩌라는 거지? 나는 당신에게 수제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는데 이렇다 할 실력도 없으면서 왜 밤잠을 설쳐가며 만들어낸 그 노고를 나에게 보상받으려는 거지? 하는 거부감만 들뿐입니다. 물론 돈은 다 지불합니다만 다시 그 가게엔 가질 않습니다.



 안타까운 건 그런 가게들은 결국엔 장사가 안 됩니다. 그리고 그런 가게들의 사장님들은 세상을 한탄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어떤 노력을 들여 만들어 낸 건데 손님들이 왜 안 사주지? 내가 들인 노력이 있는데 이 정도 금액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인간들이 인스턴트와 조미료에만 찌들어서 진정한 맛을 모르는 거지 등 본인의 실력은 생각지 않고 주변 탓만 하다 결국엔 가게를 접게 됩니다.



 수제가 주는 매력은 오랜 시간 동안 한 가지 메뉴를 만들어 내는 과정 속에서 대량생산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미묘한 지점을 찾아 내 맛으로 살려내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점을 찾아낸다면 그 부분은 보상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함으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과하게 옆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정신 붙들어 매고 다시 커피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현장에서 커피 일을 하면서 커피 공부를 한창 할 때 저 역시 최고의 커피 추출은 드립이다 하는 생각으로 드립 추출에 상당히 매진했습니다. ‘핸드드립’이라는 표현을 줄여서 보통 드립이라고 많이 하는데 이는 사실 일본식 콩글리쉬입니다. 우리나라의 핸드드립 문화는 많은 부분에 있어 일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공교롭게도 1세대 바리스타라고 일컬어지는 몇몇 분 중에 대표적인 분이 박이추 선생님인데 이 분의 주 커피 추출방식은 핸드드립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재일교포 출신입니다. 핸드드립을 위한 도구도 대부분 일본 제품입니다. 최근엔 한국 제품들도 많이 보이기는 하는데 아직도 많은 분들이 일본 제품을 쓸 겁니다. 여하튼 딱히 옳은 표현은 아니지만 굳을 대로 굳어져 버린 표현이라 그냥 쓰도록 하겠습니다.(일부 카페에선 ‘brew’ 혹은 ‘pour over' 등의 표현을 쓰는 곳도 있습니다. 익히 알고 있는 핸드드립과 정확하게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혼용해서 쓰이는 것 같습니다.)



 일단 드립은 재미있습니다. 소싯적에 소꿉놀이 좀 해 봤으면 그리고 소꿉놀이가 재미있었다면 드립 할 수 있는 기본자세는 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두를 구하고 쭉정이 같은 것들을 솎아 내고 달그락달그락 볶아 낸 뒤 예쁜 유리용기에 소복이 담아냅니다. 한 잔 분량의 원두를 그라인더에 담아 토독토독 갈아내면 그때의 향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잘 갈아낸 원두를 드리퍼 위에 필터를 올리고 평평하게 담아내고 자세를 바로 잡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드립포트를 살짝 기울여 물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드립 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문장의 몇 개의 단어만 바꾸면 도를 닦는 과정으로 착각하기 좋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커피를 잘 드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과정이고 심혈을 기울인 과정이라 그런지 맛도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커피 공부할 때 추출하는 연습과 더불어 맛을 그럴듯한 수사와 함께 표현해 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보통 커피를 조금 한다 하는 분들 그리고 커피를 꽤 먹어 봤다 하는 분들이 특히 드립으로 추출된 커피를 드시고 커피 맛을 평하는 데 있어 단순히 쓰다, 진하다, 달다 이런 단순한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참고로 커피가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맛은 쓰고, 달고 신맛입니다. 로스팅 포인트를 잘 잡아 볶아낸 에티오피아 커피의 산미는 아주 산뜻합니다. 특히 아이스 드립으로 추출을 잘 해내면 과즙미 팡팡 터지는 정말 상큼한 신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로스터리 카페를 찾으신다면 대 놓고 커피 시켜 드셔도 괜찮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커피의 맛을 아주 화려한 미사여구를 곁들여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첫 모금에 에티오피아 땅의 풋풋함을 느낄 수 있으며 입안을 감도는 산미는 레몬을 살짝 베어 물었나 싶은 착각을 줄 만큼 산뜻하다.’ 이런 식입니다. 저 사람은 레몬은 그렇다 치고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나? 다녀왔을 수도 있겠지만 땅의 풋풋함은 뭐지? 진짜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맛을 저런 감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라고? 하는 생각으로 저 역시 표현을 열심히 생각해 봤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거의 기계적으로 추출을 하고 맛을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잠은 뭐 다 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는 아니고 워낙 커피를 많이 마시다 보니 제 몸은 어느덧 카페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몸이 됐습니다. 자기 전에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면 잠 잘 오고 좋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커피를 어떻게 마시고 있냐고 물어보신다면 위에도 언급이 됐지만 주로 유리용기에 담겨 있는 소위 알 커피를 거의 물처럼 마시고 있습니다. 아주 편합니다. 설탕이나 우유 등을 타지 않으면 맛도 드립 추출에 비해 그리 처지지 않습니다. 부족한 건 사실인데 만들어진 배경과 공정 등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준수한 맛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끝없는 용기와 지혤 달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