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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l 03. 2022

없어

 뭐가 없어

있는 것 같은데 뭐가 없어. 나름 열심히 살아온 거 같은데 없어. 나름이라는 부분이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열심히 살아온 정도를 정확히 표현한 거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은 없는데 말 그대로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뭐가 없는 거 같아.



 물론 난 많은 걸 가지고 있어.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조금 어울리지 않지만 없다는 표현의 반대 개념으로 접근하려다 보니 가지고 있다는 표현을 쓰는 점을 이해해 줘. 사랑해마지 않는 소위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딸아이가 있지. 뭐 사실 그거면 된 거긴 한데 그럼에도 뭐가 없는 느낌이 있어. 그나마 아내와 딸이 있으니까 이 공허함을 버티는 거야. 그러니 그들의 존재가 나에겐 실로 대단한 존재들인 거지.



 아내와 만나고 결혼하고 딸아이까지 낳아 키우고 있으면서도 아직 신기하다니까. 아내야 서로 성인이 돼 만나서 애초에 서로 세상에 이미 존재한 상태였기에 존재로서의 신기함이 덜 했는데 이게 아이는 달라. 불과 1년 여 전만 해도 이 세상에 없었던 존재라니까. 그 존재, 생명을 아내와 내가 말 그대로 만들어 낸 거야. 더 거창하게 이야기해보면 ‘새 생명의 창조’인 셈이지. 순간순간 내가 신에 버금가는 존재로 생각될 정도라니까.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하고 이번에 할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아니니까. 여하튼 그들은 그들 자체로 나에게, 내 삶에 상당히 중요한 존재라는 건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고 내가 없다고 느끼는 부분은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쌓아 왔던 무언가 있나 없나 그런 이야기야.



 자신감 하나 가지고 살아온 삶이야. 쥐뿔 개뿔 가진 거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거든. 엄마, 아빠한테 미안한 이야기지만 뭐 사실이니까.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서 참 가난하게 살았어. 이 가난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풀어보도록 하지. 그 이야기도 한 보따리는 되겠네.



 자신감, 그러니까 제 잘난 맛에 살아온 삶이었어. 뭐가 없으니까 자신감이라도 채워 살아야겠더라고. 없이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은 몰라. 가난함이 주는 그 지랄 맞은 느낌. 만화인가 소설인가 어디에서 읽었는데 뭐라더라. ‘가난이 주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만이 맡을 수 있는 뭐 그런 느낌의 표현이었어. 나는 100% 이해가 갔지.



 어찌 보면 그 가난을 덮어 보려고 살아왔던 삶 같기도 해. 가난한데 가난하지 않은 척. 그렇게 ‘척’을 하며 살아와서 뭐가 없는 건가 싶어. 학생 시절에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어. 일정 시기까지 이긴 하지만 누가 시킨 게 아닌데 참 열심히 했어.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엄마, 아빠는 공부를 하라고 한 적이 없어. 본인들이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아들이었고 어느 날인가 스스로 공부를 안 하기 시작했으니 뭐라고 할 기회가 없었을 거야.



 아들이 어렸을 때는 알아서 잘했으니 할 말이 없었고, 공부를 안 하기 시작할 즈음엔 이미 머리가 굵을 대로 굵어져 뭐라 말을 할 수 없었을 거야. 참 속이 타 들어갔을 텐데. 여하튼 그렇게 공부를 알아서 잘하다 놀기 시작하면서 원하는 대학의 과에 가질 못했지. 대학생활은 부유浮遊 자체였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기만 했지. 술 마시고, 게임하고, 알바하고 그렇게 보낸 거 같아. 그럼에도 최소한의 성실함으로 평균 이상의 성적은 또 만들어 냈네. 이게 참 또 신기한 일이라니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고 어쩌다 보니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을 하게 됐네. 물론 전공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지. 당연하게도 내가 원해서 간 대학교의 과가 아니니 그런 과의 전공을 살릴 의무 따위는 없었거든. 돌아보면 참 무책임했던 것 같아.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직장생활은 보기 좋게 7개월 여 만에 도망치듯이 때려치웠어. 너무 힘들었거든.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알바를 해서 나름 일하는 부분에 있어선 자신이 있었는데 알바와 직장은 다르더라고. 당연한 이야기인데 겪어 보고 나서야 겨우 알았지.



 그렇게 두 번째 직장으로 이어갔고 꽤 오래 일을 하다 그만두고 30대 초반에 백수생활도 해 보고, 그때의 백수생활을 뭐랄까 어린 시절부터 당시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해 온 나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해야 될까 그런 거였어. 6개월 조금 넘는 백수 시절이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아.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차를 끌고 출근하듯이 게임 방에 가서 게임을 하고 밥을 먹고 중간중간 간식도 먹고 그렇게 하루 종일 게임하다 퇴근하듯이 집에 오고 집에서 또 게임하고 출출하면 맛있는 안주와 맥주 한 잔 마시고… 그럴 일이 앞으로의 삶에 다시 있을까 싶어.



 참 겁도 없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30대 초반에 이렇다 할 경력도 뭐도 없는 주제에 아무 생각 없이 놀았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 물론 당시에는 결혼이고 뭐고 다 포기했었어. 포기라는 단어를 쓰기는 조금 그렇다. 왜냐하면 결혼을 열렬히 바란 적이 없었거든. 그냥 못하면? 안 하면? 말지 뭐 이 정도 느낌이었다고 해야 될까. 엄마는 나보다 한 세대 전 사람이라 아들이, 그것도 장남이, 더욱이 본인 생각엔 잘난 장남이 당연히 결혼하기를 바랐겠지만, 난 별 생각도 없었고 당시 상황에서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는 건, 서로의 삶에 상처만 주는 일이 될 게 뻔한 상황이었거든. 효자는 아니지만 나이 들면 엄마랑 살지 뭐 그랬거든.



 그런데 운이 좋은 건지, 하늘이 도운 건지 결혼도 하고 딸도 있다니… 허 참 종교를 가져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니까. 이래서 사람들이 신을 믿나 싶은 거지. 뭐 그렇다고 종교를 가질 건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거야. 왜 잘난 맛에 살아온 놈이 종교 그까짓 거 있을 필요나 있다고 생각이나 했겠어. 아! 성경이나 불경 등을 이해해 보고 싶은 적은 있었어. 그냥 지식이라는 관점에서 도대체 뭔 이야기가 있길래 사람들이 저렇게 빠져 들고 의지하나 싶은 거지. 물론 종교 자체를 폄하하거나 비하할 생각은 없어. 그래 맞아. 미쳐 돌아가는 세상, 신이라도 있어야 사람들이 버텨내지.



 여하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제 잘난 맛에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목적한 대로 된 건지 모르겠어. 안 된 거 같아. 그런데 결론은 뭐가 없는 느낌이 든다는 거야. 그런 느낌이 갈수록 심해져. 글쓰기도, 작가라는 꿈도 그런 느낌이 심해지면서 갖게 된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야. 왜 뭐가 없는 느낌이 드는 건지 이유를 찾고 싶었고, 내가 어떤 인간인지 그리고 채워 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리 비어있는 느낌이 드는지 알고 싶었거든. 알아가는 다른 방법도 많겠지만 내가 선택한 방법이 글쓰기였던 거지.



 그런 글쓰기조차 쓰다 보니 뭐가 없어. 처음엔 속에 들어 찬 게 똥이든 된장이든 막 쏟아내 졌는데 그마저도 어느 정도 쏟아내니 더 쏟아낼 것도 없더라고. 참 없다 없어. 버릴 쓰레기조차 없다니. 뭐지 싶은 거야. 갑자기 자괴감, 괴리 뭐 이런 고상한 단어보다 그저 비참하다는 생각이 바로 드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럼 내 아내랑 딸아이가 뭐가 되는 거야. 나 하나만 믿는 건 아니겠지만 많이 믿고는 있을 텐데 이러면 안 되는 거겠지.



 그래도 고마운 건 이 되지도 않는 글쓰기를 아내가 응원해 준다는 거야. 돈도 안 되는 이 짓거리를 말이야. 그래도 이렇게 쓰다 보면 뭐라도 채워지겠지 아니 최소한 속에 들어찬 쓰레기들은 버릴 수 있겠지. 속을 제대로 된 걸로 채우려면 일단 쓰레기라도 버려야 하는 거니까.



 고마워요 사랑해요 약해지지 않을 게요.

 내 삶의 공허함을 그나마 채워주는

 사랑하는 두 여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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