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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l 03. 2022

2022년 7월 2일 날씨 맑음

제목: 오늘은 맥주 마시는 날     

 

 나는 오늘 아침 8시 50분 정도에 일어났다. 일어나고 싶어서 일어난 건 아니다. 너무 강력한 알람인 딸아이가 그 시간이면 나를 깨운다. 안 일어날 수가 없다. 토요일 아침인데 일이 있어 일어나야 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일어나기 싫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주말 없이 일을 많이 했다. 주말 없이 일을 지속적으로 해 왔음에도 주말에 일을 하는 느낌이 주는 약간의 부당함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있어서 영 적응이 안 된다. 최근엔 이러저러한 이유로 주말에 일을 쉬고 있다가 다시 시작하는 시점인데 참 하기 싫다. 그래도 일이니 해야지 하면서 깨워주는 아이도 생각하면서 일어났다.



 하루 일과의 첫 번째 임무는 딸아이의 밤 기저귀를 갈아주는 거다. 이제는 꽤 커서 일어나면 아빠가 뭘 하는지 알아서 자기가 먼저 자리를 잡고 눕는다. 귀여운 녀석. 눈을 마주치며 밤새 잘 잤냐며 물어보기도 하고 딸아이가 좋아할 만한 이상한 소리를 내주며 공감(?) 하기도 한다. 그 사이 딸아이 다리를 열심히 주물러 준다. 아빠를 닮으면 키가 클 테지만 또 모를 일이니 열심히 주물러 준다. 키 커라. 키 커라 주문과 함께 말이다. 물론 이런 행위가 실제 키를 키울 수 있는 행위인지는 모르겠다. 더 솔직히는 그런 과정을 통해 딸아이와 스킨십을 하는 쪽이 더 정확하다고 할 것이다. 로션을 발라주면서 충분히 주물러 주고 기저귀를 갈고 다시 바지를 입히면 자기도 거들겠다며 다가온다. 그럼 로션을 쥐어주며 엄마 가져다 줘하고 난 기저귀를 잘 싸매 버린다.



 그와 동시에 아내는 아이의 밥을 준비하고 나는 세수하러 들어갔다. 세수하는 동안 아이의 밥 준비가 다 끝나고 아이를 아이 의자에 앉히기 전에 손도 한 번 더 씻기고 자리에 앉혀주고 마저 나갈 준비를 했다. 아내와 아이가 자리를 잡고 밥을 먹을 즈음 준비가 다 돼 나가면서 아이의 이마와 양쪽 볼에 뽀뽀를 해 주고 아내와도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10시의 일이 어그러졌다. 아~ 기름 값도 오르고 날도 더운데 이게 뭐야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점심에 아이 밥을 위해 우유 하나 사 오라는 아내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마트에 잠시 들렀다. 마트를 가면 안 되는 게 원래는 200ml 우유 하나만 사면 되는 거였는데 식빵도 사고 과자도 사고 내가 좋아하는 나초를 보자마자 아! 7월이구나 맥주를 다시 마실 수 있구나 하면서 나초도 사고 돌아 나와 보니 16,000원을 넘게 써 버렸다. 영수증을 보니 우유는 800원 정도였는데 원래 목적보다 20배가 넘는 돈을 써 버리고 말았다. 뭐 그래도 맛있는 것들을 샀으니 그걸로 만족을 하자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딱 점심시간이어서 아내는 또다시 아이 밥을 준비하고 나는 아이와 놀아 줬다. 책도 읽고 단어 카드도 보고 아빠 힘드니까 그냥 누워 있자고 꼬셔서 잠시 누워 있기도 하는 동안 아이 밥이 다 준비가 됐다. 아내는 냉면을 먹기로 했고 난 간만에 파스타를 해 먹는 다기보다는 면은 파스타면을 썼지만 카레를 주 재료로 해서 야채 한 두어 가지와 함께 끓이듯이 볶듯이 만들어 먹었다. 아내와 함께 먹는 음식은 에어 프라이로 구운 돼지 목살이었다.



 아내가 밥을 준비하면 나는 설거지를 한다. 그런데 최근 비염이 거의 일주일 단위로 토요일에 올라오고 있다. 원래 살아오면서 알러지성 질환은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차서 그런 건지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이가 차니 면역력이 떨어진 건지 여하튼 30대 중반부터 간간히 올라오는 비염으로 고생 중이다. 매일 비염으로 고생하는 분들에 비하면 그나마 낫지만 이게 한 번 올라올라치면 그날은 아주 죽을 맛이다. 줄줄 흐르는 콧물에 재채기는 시종일관 나오고 심하면 눈 주위와 뒷골까지 열이 오른다. 그날의 비염을 진정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을 자는 것이다. 최대한 빨리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바로 낮잠을 잤다. 두 시간 푹 자고 나니 조금 괜찮아졌다.



 이제 오후 우리 가족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여름에 걸맞게 최근에 빙수를 자주 사 먹었다. 세 번을 사 먹은 것 같다. 그런데 뭔가 다 조금씩은 부족했다. 양이 부족하다든지 가격이 비싸다든지 그러다 아 맞다! 우리나라 최고의 빙수 브랜드가 있는데 왜 이러고 있지 하면서 오늘은 그 브랜드 매장에 가기로 했다.



 집에서 가까운 매장에 걸어갔다. 날이 더워 아 이거 실수한 거 같은데 하면서 꾸역꾸역 걸어갔다. 그만큼 더 맛있겠지 하면서 걸어갔다. 도착하니 매장이 거의 만석이었다. 대목이구만. 아내가 좋아하는 흑임자 빙수를 시켰는데 30분을 기다리라고 해서 헉! 했지만 별수 없어 기다리기로 했다. 그 와중에 생각지도 않게 아내의 동창을 만나게 됐다.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먹고 있었기에 아내 동창의 가족들이 나가면서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우린 먹기 시작했다.



 역시 이 브랜드가 주력으로 미는 메뉴가 괜히 빙수가 아니었다. 최근에 갔던 다른 브랜드들보다 모든 면에서 나았다. 앞으로는 빙수 먹을 일이 있으면 고민하지 말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빙수를 아쉬움을 달래며 다 먹었다. 다른 테이블에서 시킨 다양한 빙수 메뉴를 보는 것도 나름 즐거움이었다.



 다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파트 놀이터에 잠시 들렀다. 한두 바퀴만 돌아보고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놀이터에 도착하니 몇몇의 아이들이 신나게 물총 싸움 중이었다. 엄마들도 같이 있었는데 자신의 아이들보다 어린아이가 오니 고맙게도 물총 싸움을 중단하고 우리에게 오더니 미끄럼틀 타실 거면 물에 젖은 부분 닦아 드리겠습니다 하시기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잠시 돌아보고 갈 겁니다 하고 잠시 돌아보다 집으로 들어왔다.



 빙수를 잡아먹기 위한 여정을 마치고 도착한 집은 천국이었다. 에어컨 없이 어찌 살아왔는지 모를 정도다. 다시 아내는 아이 밥을 준비하고 나는 아이의 기저귀를 갈면서 아이의 옷을 갈아입혔다. 그리고 아내가 잠시 친정에 들를 일이 있어 아내는 나갔고 나는 아이와 점심때 먹다 남긴 카레에 파스타 면을 넣은 이상한 나만의 음식을 마저 먹어 치웠다. 그 와중에 사랑스러운 아이는 똥을 쌌고 바로 이어서 아이의 샤워를 준비했다. 아내가 들어 올 시간이 거의 다 된 듯하여 얼추 시간을 보며 아이의 샤워를 시작했고 포동포동하고 귀여운 아이의 몸을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겼다. 너무너무 귀엽다.



 아이 전용 샤워 가운과 수건 하나를 더해서 아이 몸을 감싸고 욕실 밖으로 나가니 딱 아내가 돌아왔다. 보통은 내가 샤워를 시키고 아이 몸에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려주고 하는 일은 아내가 했는데 오늘은 마저 내가 다 했다. 물론 마무리는 아이 머리 말리면서 젖을 줘야 했기에 아내가 결국 하긴 했다.



 저녁 은 설거지를 하고 아내와 나도 샤워를 하고 이제 쉴 시간이 됐다. 비염이 올라오는 날이라 낮잠을 나름 충분히 잤는데 두 시간을 잤더니 딱 그만큼만 몸이 버텨 주고 다시 콧물 줄줄에 재채기가 시작돼서 아내와 아이는 자러 들어갔고 나는 보통 내 일을 보기 시작하는데 비염을 진정시켜야 하기에 바로 잤다.



 이번에도 두 시간 조금 남짓한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 쓰기를 마치면 낮에 사 둔 나초와 지난달에 만원에 4캔을 사서 2캔은 마시고 남아 있는 2캔 중에 1캔을 마시려 한다. 난 술을 잘 마시는 편이다. 주량은 딱히 재 보지는 않았지만 소주 두병 정도는 편하게 마시는 거 같다. 대학시절부터 30대 중반까지 꽤 자주 술을 마셨는데 보통은 술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편이었다. 한창때는 2차, 3차 아무렇지 않게 새벽 3시, 4시 개의치 않고 술을 마셨는데 결혼하면서 아내와 약속을 했다. 일주일에 맥주 1캔만 마시기로….



 결과적으로 잘 지켜지진 않았다. 아내는 약속을 지키려는 방패였고 난 어떻게든 뚫어내고 맥주를 마시고 싶어 하는 창이었다. 물론 한창때에 비하면 거의 안 마시는 거나 마찬가지긴 했다. 그러다 아이를 출산하면서 아이가 혹여 밤에 아플 수도 있는데 아내도 운전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빠가 돼서 자기 좋다고 술 마시고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아이가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는 안 마시기로 했다. 그 시기가 아이의 첫 돌까지였고 돌이 지나고 나서 어느 정도 아이가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여 나는 다시 원래 약속이었던 일주일에 맥주 한 캔을 부활시키려 했으나 아내가 2주일에 한 캔만 마시라고 해서 아쉽지만 협상을 타결한 상태다. 이 협상은 아이의 두 돌이 지나면 다시 테이블에 올려 심도 있게 논의할 예정이다.     

 


 오늘 일기 끝. 길게 썼으니 선생님이 ‘참 잘했어요’ 찍어주시겠지!

 맥주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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