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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Oct 01. 2022

이틀이나 늦게 쓰는 일기

2022년 9월 29일

 새벽 6시 15분이다. 알람을 맞추기로는 6시 30분이었는데 눈이 떠졌다. 아깝다. 15분을 더 자야 되는데 눈이 떠지다니…. 보통은 이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 혼자 살던 시절에는 일을 하러 나가기 1시간 전에 일어났다. 직업 특성상 여느 사람들과 다르게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 늦다. 점심이 지나야 일어나는 게 일상이었다. 일어나서 씻고 바로 일을 하러 나가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밥 먹을 시간보다 이불을 끌어안고 뒹구는 걸 더 좋아한다.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조금 더 일찍 일어나게 됐다. 다른 글에도 밝힌 바 있지만 아내는 나보다 밥 먹는 때를 조금 더 챙기는 편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조금 더 일찍 일어나 같이 밥도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일어나는 시간은 더 일러졌다. 아이가 밤에 자는 시간이 어느 정도 일정해진 뒤로 아침 8시, 늦어도 9시면 일어나 다른 방에 자고 있는 아빠인 나를 깨우러 온다. 더 뒹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기저귀도 갈아줘야 되고 귀여운 눈망울로 아빠 휴대폰을 기가 막히게 찾아 만지작거리기에 안 일어날 수가 없다. 이런 시작이 요즘 아침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일어났다. 가을이라는 환승역에 다다라 겨울을 향해 가는 시점이기에 새벽 6시면 아직 조금 어두운 편이다. 더 자야 되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시간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난 거지? 그것도 알람보다 15분이나 일찍 쓸데없이 눈이 떠지고 말이야! 누굴 탓할 순 없다. 내가 결정하고 선택한 일이다. 보통은 아침에 일이 없지만 강의가 있는 날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 내가 사는 곳에 강의가 있다면 상관없지만 강의 장소가 대부분 다른 지역이다. 그것도 보통은 경기도, 서울 등이다. 그나마 오늘은 청주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천안이다. 경기도나 서울이었으면 5시에 일어나야 했다.



 일반적으로 일이 끝나는 시간이 빠르면 밤 11시, 늦으면 밤 12시 정도이기 때문에 새벽 5~6시에 일어나 무언 갈 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 되는 일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 이렇게 알람을 맞추고 일어났다. 내가 하고 싶어서 결정하고 선택한 일이지만 새벽에 일어난 그 순간의 ‘현타’는 씨~게 온다. 한 숨이 푹푹 나온다. 일어나기 너무 싫다. 내가 왜 간다고 했지? 내가 간다고 하지 않았으면 누구도 오라고 하지 않는 자리인데…. 지금이라도 안 간다고 할까? 정말 오만 생각이 다 든다.



 더 화가 나는 건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몸은 움직인다. 습관인지 책임인지 기계처럼 움직인다. 인상은 잔뜩 찌푸린 채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향하고 있다. 마음은 잠자리 위에 아직 누워 있는데 몸은 화장실로 향하고 있다. 마음과 몸의 인지부조화. 일상 속에서 게으른 내가 늘 겪는 상황이지만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일을 시작하는 경우 부조화의 정도는 심각하게 커진다. 그런 심각함을 동력(?) 삼아 이상하리만큼 몸은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양치하고 머리 감으면서 세수하고 나와 물기를 닦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다 입는 순간까지 고작 15분 남짓이다. 후다다닥 해치우면 10분이면 끝나기도 하는데 조금 여유 부리면 15~20분이다. 그때까지도 마음은 아직 잠자리 위다. 개진 이불을 끌어안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벌렁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유혹을 뿌리친 건지 뭔지 모를 아뜩함이 느껴질 때쯤 내 몸은 차에 실려 있다. 신호대기를 받으며 차창을 열고 멍을 때리고 있다. 이렇게 또 나와 버렸다. 무슨 떼 돈을 벌겠다고 이렇게 또 나와 있다. 그냥 자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그게 그렇게 허락받을 수 없는 건가….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오늘은 유독 안개가 뿌옇다. 뿌옇다 못해 탁했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내 마음 때문인지 찾을 수 없는 원인을 찾으려는 듯이 잘 보이지도 않는 안갯속을 들여다봤다.



 어느덧 출근 시간이 돼 차는 막혔다. 서울 같진 않지만 교통체증은 겪어도 겪어도 좀체 적응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고 걸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근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가야 된다. 차가 막혀 거북이처럼 기어가도 답답한 차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꾸역꾸역 병목을 지나고 나니 그나마 차가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호두과자 가게가 눈에 많이 띄었다. 천안에 들어왔다는 소리다.



 천안은 왜 호두과자가 유명한 거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호두가 유명한 거겠지? 그런데 호두과자의 핵심인 호두 자체를 천안 산이라고 파는 건 못 본 거 같은데, 내가 본 적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호두과자들 호두는 죄다 미국 산, 캘리포니아 산 아니야? 밀가루는 중국 산이고. 그럴 거 같은데 하는 의심을 하면서 정말 많은 호두과자 가게들을 지나쳤다. 뭔 죄다 원조래. 다 원조라고 하니 원조라고 써 붙이지 않은 가게가 오히려 신뢰가 갈 정도였다.



 학교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이제 막 등교를 하고 있었다. 발랄한 녀석들. 늬들은 모르지? 늬들이 정말 좋은 때라는 걸. 나도 뭐 아직 좋은 때긴 한데, 결혼을 일찍 해서 아이를 낳았으면 늬들만한 아이들이 있을 만한 나이라…. 대기실에서 다른 강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강의 준비를 했다. 아직은 보조강사라 특별히 준비할 건 없다. 보조강사에서 정강사로 도는 부분에 있어 관리부장하고 조금 트러블이 있었다. 그걸 인지하고 있는지 부장이 날 보더니 이제 조만간 정강사로 강의해보자는 말을 했다. 난 규정대로 가려고 했는데 당신이 부추겼잖아! 이제 와서 뒤늦게 챙겨주는 척 하기는. 상황을 다 이야기하자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니 넘어가고 여하튼 미안했는지 입에 발린 소린지 뭔지를 하기에 네네~하고 넘겼다.



 강의가 시작돼 교실에 갔다. 중학생 아이들은 발랄해도 너무 발랄했다. 저 쪽 바닥에선 아주 그냥 레슬링을 하고 있다. 잘한다~ 누가 이기고 있나? 교실 블라인드가 독특했다. 부처님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저런 온화한 부처님의 눈빛을 받으며 레슬링을 시전 하는 아이들이라니, 어울려도 이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레슬링은 부처님이 봐주는 앞에서 하는 게 제 맛이지. 정강사들이 강의를 어떻게 하는지 보면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고 필요한 부분들을 지원했다.



 지원할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강의하는 부분을 보게 된다. 별다를 건 없다. 아이들 관심을 끌기 위해 게임하고, 강의주제 내용 전달하고 또 게임하고 반복이다. 아이고~ ‘기’ 빨려, 생동하는 아이들의 기는 주체할 수가 없다. 저 펄펄 넘치는 기운을 받아내야 된다. 강의가 마무리되고 설문지 챙기고 집으로 출발했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이기에 아침 출근시간처럼 차가 막히진 않는다. 다만 졸릴 뿐. 졸음을 막기 위해 과자를 우걱우걱 씹어 먹으면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면 2시 정도 될 테고 아이도 낮잠을 자는 시간이니까 조용히 들어가 나도 낮잠을 좀 자고 다시 나와야지 하면서 차를 몰았다. 도착을 했고 예상대로 시간은 2시가 조금 안됐다. 집에 들어가니 아직 아이는 낮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아빠 왔다고 아이랑 방긋방긋 인사를 나누고, 손을 씻고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낮잠 잘 준비를 했다. 아이도 아내랑 침실로 들어갔다. 나는 옷 방에서 잔다.



 그런데 세탁기가 돌고 있었다. 아~ 저 빨래를 널어야 하는데, 그럼 낮잠 자기는 글렀네…. 그래도 조금 자야지 하다 이미 생각이 그렇게 돌기 시작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 이왕 잠이 안 오는 거 이따 졸려 쓰러질지도 모르지만 일단 책이나 읽자 싶어 빨래되는 동안 책을 읽었다. 이불 빨래하고 아이 빨래였다. 이불 빨래가 먼저 되 널고, 이어 아이 빨래도 널었다. 그제야 잠이 오려는지 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나가야 될 시간이 됐다. 졸음을 끌어안고 다시 나갈 수밖에 없다.



 아침에 탁할 정도로 안개가 낀 날이 맞나 싶을 정도로 늦은 오후 햇살이 밝고 따사로웠다. 졸린 눈으로 바라보니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일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졸려 미칠 것 같았다. 평소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 데다 낮잠도 못 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쩔 수 없다. 참는 수밖에. 그래도 고마운 건 시간은 흘러갔다. 정말 졸렸지만 또 그 순간을 이겨내면 당분간은 괜찮다. 마저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많은 걸 했다. 광고 카피처럼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새벽 댓바람부터 나다녔다. 천성이 게을러서 한량이 꿈인데 이러고 있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데 밤 12시까지 일을 하고 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되는 것들을 정리를 하고 나서야 잘 수 있었다.



 이틀이나 늦게 쓰는 수요일 일기 끝.

금요일 밤에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 12시가 넘어가 이틀을 늦게 썼다고 해야 되는 건지 사흘을 늦게 썼다고 해야 되는 건지 헤매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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