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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Oct 20. 2022

재수財數 없어, 재수再修하지 마!

 수능 시즌이다. 이제 채 한 달도 안 남았다.(2022년 10월 19일 기준) 일반적인 자격시험과 비교를 할 수 있는 시험인지 모르겠다. 규모가 엄청난 국가고시라면 국가 고시다. 응시하는 학생이 계속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응시인원이 50만 명이 넘는 시험이다. 단일 시험으로는 가장 많은 인원이 응시하는 시험이라는 소리도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병력 수가 55만 정도가 된다고 한다.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그렇다고 명시적인 자격증이 주어지는 그런 시험은 아니다. 물론 결과적으론 가치로 평가받는 자격이 주어지는 시험이긴 하다.



 수능 보는 날은 나라 전체가 일시 정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능 보는 학생들을 위해 나라와 국민 모두가 봉사하는 날이라고 해야 되나? 아침 댓바람부터 모든 대중교통과 경찰, 소방관, 관련 공무원, 자발적인 봉사자들이 수험생들을 고사장으로 안전하게 이송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수능 당일에 영어 듣기 평가하는 시간엔 비행기 이착륙도 할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만 한정하면 3년, 그 이전까지 확장하면 한글을 익히기 위해 애를 쓰는 순간부터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선을 향해 달려온 학생들에 대한 예우라고 할 수 있다.



 겨울로 접어드는 11월 중순의 하루를 위해 차갑게 불기 시작하는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학생들이 현실의 문을 여는 첫 단추를 제대로 꿰겠다는 일념으로 오늘도 불철주야 공부를 하고 있다.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남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직 한 달 정도가 남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줄 순 없을 것이다. 물리적인 한계라는 건 꽤 강력한 벽이기 때문에 되지도 않는 희망고문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런 독 같은 희망고문의 의미가 아닌 4주 동안 할 수 있는 최선을 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수학 문제를 15개 정도 맞는 실력이라면 남아 있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부분을 최선을 다해 15개를 찍지 않고 확실하게 맞출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내든지 아니면 한 두어 개 더 맞출 수 있는 상황 정도는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시간 동안 5등급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3등급이 되고 3등급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1~2등급이 될 수 있다는 식의 현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는 노력, 같은 등급이라도 보다 확실하고 안정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는 본인의 실력에 근거한 등급 만들기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수능 시험을 보지도 않은 지금 이 시점에 벌써 재수를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 시험을 보지도 않았는데 짧지만 한 달이 남은 이 시점에 왜 재수를 생각하는지 그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하지만 재수라는 건 서울대 갈 실력이 있는 친구들이 정말 부득이하게, 정말 부득이하게 재수 없게 실수를 해서 연, 고대 갈 상황이 됐을 때 하는 거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물론 지역에 있는 대학 중에 내가 가고자 하는 대학보다 조금 못한 대학에 갈 성적이 나와 다시 시험을 보려 하는 학생들의 모든 노력과 의지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만큼 재수라는 게 힘든 과정이라는 걸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보통 의지와 실천이 필요한 과정이 아니라는 거다.



 고3으로 입시를 준비할 때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환경적인 요인들을 이야기해 보겠다. 다시 말해 재수생이 되면 있는지도 몰랐던 즉, 공기 같았던 이런 환경적인 요인이 다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 공기를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평소에 우린 공기의 존재 여부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공기가 없다면 우린 3분 정도도 못 버티고 모두 죽어 버릴 것이다. 고3 시절엔 그런 공기와 같이 당연하게 내 옆에 있는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몇 가지만 나열해 보겠다.



 우선 학생들이 정말 가기 싫은 학교를 간다는 자체가 공부하기 가장 좋은 환경적인 요인이다. 어린이 집, 유치원 등등 제외하고 초등시절을 시작으로만 생각해도 본인들 인생의 반 이상을 학교에 갔으니 지겨울 만도 하다. 지겨운 정도가 아니라 지긋지긋할 거다. 이 놈의 학교만 안 가면 혹은 벗어나면 세상 행복할 것 같은 그 기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학생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이해를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돌아보면 학교라는 울타리는 상당히 강력한 울타리다. 온실도 그렇게 따뜻한 온실이 없다. 학교폭력 등의 잔인한 사회적인 범죄가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이번 글에선 철저하게 학습이라는 측면에서만 생각하기로 하겠다.



 학교學校, 단어 그대로 배우는 곳이다. 배우기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가르쳐 주는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교실, 책상, 의자, 교구, 급식, 쉬는 시간 등등 모든 요소가 기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가르쳐 주는 목적에 맞춰져 있다. 짧게는 4교시, 길게는 7~8교시, 필요하다면 자율학습 시간까지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 주는 곳이다. 이 긴 시간을 홈스쿨링 혹은 학원 등을 이용해 대체하고자 한다면 엄청난 시간과 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모든 걸 학교라는 한 공간에서 다 할 수 있다. 애써 설명하지만 사실 설명할 필요가 없는 요인이다.



 학교 선생님부터 보자. 담임선생님이란 존재가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나를 잘 챙겨주시면 고마울 것이고, 그 반대라면 서운하고 더 나아가 원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재수생이 되면 원망할 대상조차 없어진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 모두가 소중할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도 한 인간일 뿐이다. 반에 있는 20~30명 남짓한 아이들을 하나같이 챙기고 싶지만 의도와 다르게 그러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가족을 생각해 보자. 형제자매가 많은 집이라면 부모의 의도와 다르게 일정 자녀에게 조금의 관심이 더 쏠리는 경우가 있다.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도 많다.



 자기 배 아파 낳은 아이임에도 다른 관계도 아닌 부모와 자녀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이라고 하는 부분이 동등하게 가질 않는다. 이런 관심의 불균형은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불균형의 완벽한 해소는 거의 불가능하다. 누구보다도 가까워야 할 가족 안에서도 그런 불균형이 존재하는데 학교에서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물론 그런 불균형을 방치하거나 혹은 조장하는 선생님들까지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잘 안 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그런 선생님은 직무유기를 범하는 것이다. 다만 상황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할 뿐이다. 요점은 부족하더라도 어느 정도 담임선생님의 관심은 돌아온다는 것이다. 



 친구를 생각해 보자. 역시 말해 무엇할까? 동고동락하는 사이다. 같이 잠만 자지 않을 뿐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존재들이다. 그런 존재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같이 공부한다는 공감대는 어디에서도 제공받을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세상은 양면성이라는 게 있으니 당연하게도 그 친구들과 경쟁을 해야 하고 때로는 밟고 올라서야 한다. 하지만 이는 선의의 경쟁이라는 전제를 통해 그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애초에 물고 태어난 게 많은 금수저들과는 선의의 경쟁이란 단어를 쓰기도 애매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우린 살아갈 의미가 없다. 어차피 세상엔 어떠한 형태로든 그게 무엇이든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적인 모순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문제이긴 하지만 다소 복잡하니까 일단 경쟁이란 걸 해 볼 수 있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그렇게 암담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경쟁이란 게 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결과적으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성년자다. 성년이 아직 아니란 소리다. 성년이 아니니까 보호받을 의무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스스로들은 이제 조금 컸다고 모든 것을 제약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런 제약들이 사실은 본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걸 이해했으면 좋겠다. 본인들에게 꼰대라고 욕 들어 먹는 부모나 선생님을 위시한 어른들은 그 방법적인 부분이 조금은 잘못되거나 방향을 잘못 잡아 그런 거지 그 근본 의미는 미성년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더 열거할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나는 정도만 해도 이 정도다. 재수생이 되면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비빌 언덕이 없어지는 소가 된다. 일단 재수생이 된다는 건 실패라고 하는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을 끌어안고 1년을 더 버텨야 한다.(1년 안에 끝나면 다행이다.)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디든 갔을 것이다. 많이 외로울 것이다. 물론 재수를 준비할 수 있는 학원 등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야 말로 밟고 올라서야 하는 말 그대로 경쟁자들이다.



 재수학원 이야기를 했으니 더 해 보자면 재수학원엔 1년이 아닌 2년 3년 재수생들도 있다. 우선 내가 미성년이 아닌 상황에 나보다 한 두 살이 더 많은 언니, 오빠, 형 누나들과 공부를 하다 보면 재수의 힘든 상황을 고3 시절엔 생각할 수 없는(고3들이라고 해서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방법으로 함께 풀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방법이 그렇게 긍정적이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재수 생활의 스트레스를 푼다고 딱히 뭐라고 해 줄 꼰대도 없다. 있어 봐야 부모님 정도인데 부모님 입장에서도 이미 성인이 된 아들, 딸을 어찌하기엔 이미 힘에 겨운 상황일 것이다. 재수생활의 스트레스를 잘못 풀다 자칫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혹시라도 그렇게 되면 부족한 성적에 의해 성에 차지 않은 대학교가 가기 싫어 재수를 시작했지만 그보다 못한 대학교를 갈 수도 있다.



 대학교에 가면 고등학교 때까지 와는 다르게 조금 더 자유롭게 공부를 할 수 있다. 더 어려운 것 같지만 반수도 있다. 즉, 다소 성에 안 차지만 대학교를 다니면서 1학년 때 다시 수능을 보는 것이다.(개인적으로 그냥 재수보다 성공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고 본다.) 전과도 있다. 과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냥 바꿔 주진 않는다. 대학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일정 수준의 자격 요건이 충족되어야 전과를 할 수 있다. 편입도 있다. 역시 전과와 마찬가지로 자격 요건이 필요하다. 반수, 전과, 편입 등이 쉬운 건 아니다. 다만 재수할 노력이면 충분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본다면 재수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나의 방법은 분명히 맞다. 다만 정서적인 스트레스가 그 어떤 방법보다 크다는 단점이 있다. 반수, 전과, 편입 등은 실패를 하더라도 다니고 있는 대학이라고 하는 안전망이 있다. 물론 이 지점이 더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안전망이 있으므로 인해 노력을 덜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재수는 배수진을 치는 형국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성공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다. 그런 부분까지 감안한다 할지라도 재수는 모 아니면 도의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high risk, high return'의 결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반수, 전과, 편입 등을 실패해서 그냥 다니는 학교에 다니는 것 역시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니까 재수를 하는 게 어쩌면 더 낫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만약 지역에 있는 3등급 수준 정도의 대학교를 가기를 바랐는데 바로 그 밑에 대학교에 가게 됐다면 졸업했을 때 과연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을까 하는 부분은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진 않겠지만 만약에라도 내가 원했던 대학교에 가서 적당히 대학생활을 보낸 경우와 조금 부족한 대학교에 가서 보다 열심히 대학생활을 보낸 경우를 졸업을 하고 난 뒤라고 생각하고 비교해 보면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대학교에 가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4년간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원했던 대학교에 비해 다소 부족하더라도 과는 같거나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분야를 공부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하기 싫은 데 이거 저거 다 하는 고등학교 시절의 경우와 조금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분야의 공부를 하는 건 그 의미가 다르다. 반수, 전과, 편입 등을 성공해서 보다 나은 대학에 가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했다 해도 상황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부분이 나름 많다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서두에 서울대 갈 학생들이 실수해서 연, 고대 가게 될 상황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전제를 깔았지만 재수는 자유다.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다만 정말 힘들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이 간단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재수를 할 때의 시간과 돈 그리고 외로움. 여기도 저기도 아닌 중간에 끼어 있는 위치의 애매함이 주는 불안함. 생각하기 나름이고 받아들이기 나름이긴 하다. 부정적이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확실히 힘든 상황이 될 거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점에 재수를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냉정하게 생각하고 남아 있는 시간 등을 고려해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재수를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한 달 뒤에 닥칠 시험의 결과가 두려운 나머지 결국에는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게 불 보듯 뻔한데 13개월 뒤에 시험을 본다는 그 상황 뒤에 숨으려는 건지, 100% 장담할 수는 없지만 후자일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다. 냉정하게 상황을 보고 명확한 계획을 세운 전자라면 아마도 남아 있는 한 달의 시간은 이 번 수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이고 만약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다음부터 12개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계획도 세워져 있을 것이다. 후자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불안하고 어쩌고 뒤에 숨고 싶고 다 좋다. 사람이니까 우린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이니까 다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어차피 이렇다 할 명확한 계획도 없이 그냥 재수하겠다는 막연한 13개월의 시간 뒤에 숨을 거라면 13개월이라는 시간 속에 당장 1개월 이 번 수능에 쓴다고 한들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불안해 떠는 이 시대를 이끌어 갈 우리들의 미래여! 그대들의 삶은 생각보다 찬란할지니 꼴랑 1개월 남은 시간, 어쩌지 불안해하지 말고 당당하게 준비하고 혹여 결과가 부족하다면 그때 가서 걱정해도 늦지 않으니 지금 당장은 제발 11월 17일만 바라보길 바랍니다. 이런 개그지 같은 입시 현장을 만들어 놓은데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는 40대 아저씨가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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