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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Nov 15. 2022

동생이 벤츠를 사 줬다.

 동생이 있다. 두 살 어린 동생이다. 두 살이 어린 동생이지만 나나 동생이나 모두 40대다. 소위 같이 늙어 가는 나이다. 아! 여동생이다. 성인이 된 이후로 동생이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동생은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그리고 나는 장남이었다. 자라던 시절은 시대가 시대인 만큼 남자면서 첫째, 공부도 잘한 나에게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동생은 여자이면서 둘째,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어른들 눈에는 심지어 부모 눈에도 그냥 공부를 못하는 아이로 오빠인 나에 비해 거는 기대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동생과 잘 지낸 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축구부로 활동할 때 축구부 주장 녀석도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놈은(동생한테 하는 거 보면 놈이라고 불러도 된다.) 자기 동생을 상당히 함부로 대했다. 동생과 대화 도중에 아무렇지 않게 동생에게 욕을 하고 심지어 아무렇지 않게 때리기도 했다. 난 그런 모습이 이해가 안 됐다. 남동생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데 여동생을 저렇게 대하다니…



 내 기억에 동생에게 심한 욕을 한 적도 없고 때린 적도 없는 것 같다. 둘 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인가 그 보다 더 어릴 때 인가 동생이 계속 장난을 치기에 그만하라고 하지 말라고 뿌리친 손에 동생이 입을 맞아 입술이 한 번 터진 기억은 있다, 그게 다다. 그런데 막상 돌아보니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지만 동생이 먼저 독립해 나갔는데 그전까지 내내 엄마 아빠와 함께 다 같이 살았음에도 별 다른 기억이 없다. 집도 못 살아서 늘 단칸방 아니면 기껏해야 방 두 개짜리 전셋집에서 살아서 많이 부대꼈을 텐데도 별 기억이 없다.



 별 기억이 없는 와중에 몇 가지를 끄집어 내 보면 내가 초등학생이고 동생은 아직 예닐곱 살이던 때 다니던 초등학교에 수영장이 있었는데 방학이면 학교 학생에겐 수영장을 무료로 개방했었다. 동생을 데리고 수영장을 찾았는데 관리인이 동생은 학교 학생이 아니라고 안 들여보내 줘서 동생은 많이 울고 나는 난감해했고 관리인을 원망하면서 또 놀고는 싶어 놀았던 기억이 난다.



 또 다음과 같은 경우도 많았다. 엄마가 어딜 나가며 동생하고 잘 놀라고 용돈을 주고 가면 둘이서 어떻게 하면 맛있는 과자를 많이 사 먹을까 궁리도 많이 했었다. 과자 사는 과정 중에 용돈은 제한적인데 둘의 선호 차이로 항상 부딪힌 경험이 있다.



 나는 ‘오리온 초코파이’를 먹고 싶어 했고 동생은 ‘해태 오예스’를 먹고 싶어 했다. 당시 슈퍼에서 파는 파이류의 양대산맥이었다. 그럼 언제나 항상 초코파이 6개, 오예스 6개 해서 12개를 맞춰 샀던 것 같다. 그때 초코파이와 오예스는 하나에 100원이었다. 한 박스에 12개가 들었으니 박스로 사면 1,200원이었다. 이 가격을 맞추려고 6개씩 나눠 산 거 같다. 나는 초코파이 12개 들이 박스 하나, 동생은 오예스 박스 하나 사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그만큼의 용돈은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둘의 합의에 의해 나름 합리적인 소비를 했던 것 같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동생은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엄마 아빠도 그런 동생을 별로 걱정하진 않았다. 공부 잘하는 잘난 첫째 아들이 있었기에 믿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 거 같다. 그럼에도 동생이 중학생이 되자 조금 걱정이 됐는지 나보고 동생을 좀 가르치라고 했다. 하루 날 잡아 동생을 가르쳤는데 동생은 무無 자체였다. 기본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가르치는 걸 포기했다.



 이후에 동생은 상고를 갔고 졸업하면서 자연스레 공장에 갔는데 공장은 체질에 맞지 않는 듯했다. 그때 동생이 돈을 조금 많이 썼다. 성실하면서 잘난 첫째 아들 눈에는 탐탁지 않아 보였다. 꼴에 오빠랍시고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고 잔소리를 하다 둘이 많이 싸우기도 했다.(웃긴 건 당시에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이미 나 역시 고2 정도부터 공부를 안 하기 시작하면서 예전의 공부를 정말 잘하는 성실한 모습은 퇴색돼 대학교도 성적 맞춰 간 상황이었다.) 동생이 독립을 해서 나가기 전에 기억나는 일이 이 정도다. 뭐 더 있긴 있는데 소소한 것들이라 딱히 거론할 만한 일들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당시의 일반적인 분위기를 대충 전달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지 얼마 안 되는 시점. 권위주의가 아직 팽배하던 시절.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배하던 시절. 그러니 당연히 아들이면서 첫째인 내가 부모에게 더 많은 관심과 대우를 받던 시절. 그런데 동생과 나 모두 성인이 되면서 느끼기 시작했다. 동생의 재능과 역량은 다른 곳에 있다는 걸… 일단 손이 빨랐다. 알바나 일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거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손이 빨랐고 그냥 빠른 것도 아니고 정확하면서 빨랐다. 소위 ‘일 머리’가 좋았다. 그리고 과감했다. 결단력도 있었고 결정도 잘했다.



 동생이 당시에 한 빵집에서 상당히 오래 알바를 했는데 점장에게 능력을 꽤 인정받은 듯했다. 그렇게 알바인 듯 직장인 듯 일을 하다 결혼을 했고 일을 정리했을 것이다. 얼마 후에 동생은 첫째를 낳고 육아에 집중했다. 첫째가 어느 정도 크고 둘째까지 낳고 나서 동생은 일을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일을 하던 사람인데 육아 때문에 일을 쉬다 보디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경제적인 부분도 있었고.



 여차저차 알아보더니 작은 카페 하나를 인수해서 장사를 시작했다. 추진력이 대단했다. 겁도 안 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에 나는 스튜디오에 딸린 카페에서 매니저랍시고 바리스타로서 일을 하고 있었다. 결혼도 안 한 30대 초반인 오빠는 남의 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는 동생은 빚을 냈지만 자기 가게를 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 가게는 잘 안 돼 정리하고 동생은 다시 잠시 집에서 전업주부로 지냈다.



 얼마 뒤에 좋은 기회가 닿아 빵집 하나를 월급사장의 형태로 운영할 수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 일했던 빵집의 점장이 동생의 능력을 기억하고 연락을 줬던 것이다. 처음 말아먹은 카페보다 규모가 있는 빵집을 맡아 운영을 했는데 내가 알던 일머리가 있는 동생답게 잘했고 잘 됐다. 이어서 다른 빵집을 하나 더 맡게 됐다. 두 번째 빵집은 규모가 더 컸다. 월세도 상당히 비싸게 나가는 가게였다. 그렇게 동생은 두 개의 빵집을 동시에 운영을 해냈다. 그러다 하나가 잘 안 됐는지 아니면 버거웠는지 하나를 정리하고 규모가 조금 더 큰 빵집 운영에 집중했다.


 그리곤! 코로나가 터져 버렸다. 결국 빵집을 정리했다. 두 개의 빵집을 운영했기 때문에 힘이 많이 부쳤을 것이다. 집에서 조금 쉬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뒤 동생은 결국 다시 다른 가게를 시작했다. 난 신기했다. 저게 저렇게 계속 할 수 있는 건가? 돈은 어디서 나는 거지. 다 빌리는 걸 텐데 안 무섭나?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그런 생각의 배경엔 부러움도 있었다. 나는 왜 저렇게 못 하지? 커피에 관심이 있어 관련 일도 하면서 항상 나만의 카페를 꿈꿨는데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무서워서 가게를 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동생은 벌써 네 번째 가게다.



 지금 시대야 남녀 차이가 무슨 문제겠나 하지만 동생과 내가 커 온 시대는 남녀 차이가 지금보다 있던 시절이다. ‘82년생 김지영’이란 소설이 있는데 안 봐서 어느 정도 시대상을 현실감 있게 잘 담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이 딱 그 세대다. 그래서 동생이 만약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 것이다. 물론 엄마 아빠가 동생이 여자라고 특별히 막 대하진 않았다. 상대적으로 첫째인 나에게 조금 더 많은 관심과 특히 기대가 있었을 뿐이다.



 여하튼 그런 동생이 벤츠를 사 줬다. 모델 명은 'AMG GLE63'. 찾아보니 가격은 1억 5천이 넘는 듯했다.(정확하진 않다. 대충 그렇다.) 아! 나에게 사준 건 아니고 내 딸에게 사 줬다. 아직 두 돌도 안 된 딸에게 벤츠라니… 그런데 보면 충분히 사 줄 만 한 걸 사 줬다. 그렇다. 아이들이 타는 모형 벤츠를 사 줬다. 얼척이 없어서 글을 읽고 싶지 않겠지만 그냥 동생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부족한 상황에서도 필요하다면 과감하고 아무렇지 않게 실행에 옮기는 동생의 모습이 부러웠다. 이 모형 자동차 역시 그렇다. 엄청 비싸지는 않다. 그래도 돈 10만 원 정도는 할 것이다. 내가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당장 필요한 물건도 아닌데 동생은 내 딸, 그러니까 조카 예쁘다고 본인도 장사하느라 뻑뻑할 텐데 이렇다 할 고민도 없이 그냥 사 줬다. 동생은 그런 사람이다.



 나는 이 모형 벤츠를 받아 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형 벤츠의 실제 모델을 나중에 딸아이가 학교에 갈 즈음해서 정말 산다면 얼마나 멋있고 의미 있을까? 그리고 아이에게 말해주는 거다. ‘지금 아빠 차가 너 어릴 때 고모가 예쁘다고 사 준 모형 벤츠 실제 모델이야. 당시에 네 선물이라고 받아 들면서 아빠가 열심히 살아서 돈 많이 벌어 실제 모델을 사야지하고 다짐했는데 진짜 샀어.’ 꿈같은 이야기다. 아이가 학교에 가려면 5~6년 정도가 남았는데 그 시간 동안에 내가 과연 1억 5천이 넘어가는 차를 살 수 있을까?

https://groro.co.kr/story/1142

그로로에도 동시에 게시했습니다.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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