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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an 04. 2023

까불지 말고 일기나 써

 아 하하하하하

무슨 기대를 한 건지 모르겠다. 4개월 정도가 지나면 브런치 작가로 활동한 지 2년 정도가 된다.(작가라는 표현도 웃기고 활동이란 단어도 우습다. 작가가 아닌데 작가라고 쓰고 앉아 있는 상황이나 작가가 아니니 작가로서 활동한 게 없는데 맥락에 의해 활동이란 단어를 쓰는 꼴이 참 가관이다. 여하튼 브런치라는 공간에서는 작가라는 호칭 외에는 딱히 지칭할 만한 단어가 없기에 염치없지만 그냥 쓰도록 하겠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브런치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에는 모두 참여했다. 놓치거나 내가 쓴 글들과 영 방향성이 다른 공모전을 제외하곤 다 참여했다.(하지만 그런 공모전은 딱히 없었던 거 같았고 설령 있었다 해도 소가 뒷걸음치다 혹여 쥐라도 잡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다 응모를 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당선작 발표가 난 브런치에서 진행하는 공모전 중에 가장 큰 가을 공모전(가을에 진행하기에 내 마음대로 이름 붙였다.)에도 응모를 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나름 시간도 흐르고 글의 수도 조금 돼 총 6편의 브런치 북을 응모했다. 당연하게도 당선되지 않았다. 그런데 기대를 했다. 도대체 무슨 기대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기대를 했다. 아주 오래된 농담이 하나 있다. ‘국어를 배웠으면 주제를 알고, 수학을 배웠으면 분수를 알라.’라는 농담이다. 국어를 잘 배운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겠다고 나대고 있으니 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소한 자기 ‘주제’ 정도는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 공교롭게도 본업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인데 웃기지도 않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분수’를 알아도 너무 잘 알고 있을 텐데 도대체가 주제도 모르고 분수도 모르는 기대를 했다.



 공모전에 당선이 될 수도 어쩌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막돼먹은 기대를 했다.(막돼먹었다는 표현을 이런 상황에 쓰는 게 맞는 건지 확실하지 않지만 주제도 모르고 분수로 모르는 똥멍청이니까 써도 될 거 같다.) 막돼먹었음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당연하게도 당선이 되질 않았다. 지극히 정상이다. 돌아보니 딱 로또를 사는 마음으로 응모를 한 거 같다. 로또를 한 번이라도 사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로또를 사기 위해 돈을 들고 가는 순간에도 안 될 게 뻔한데 돈을 버리지 못해 안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정말 막연하고도 막연한 기대로 결국엔 로또를 사게 된다.



 작가도 뭐도 아닌 내가 일기라고 봐주면 그나마 읽어줄 만한 글들을 주워 들고 공모전에 당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딱 로또를 사러 가는 마음과 같다. 그나마 로또는 간간히 희망고문을 하듯 5등 당첨이라는 결과를 안겨 준다. 그에 반해 공모전은 5등 당첨을 통해 다시 로또를 살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아예 생각할 수가 없다. 물론 응모했다가 떨어진 글을 다음 공모전에 다시 낼 수는 있다. 이렇게 보니 이런 부분이 로또의 5등 당첨과 그 성격이 비슷한 거 같기도 하다.



 로또 5등 당첨이 됐다고 당첨금인 5천 원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바로 다시 로또로 교환해 다음 추첨 일을 기다릴 것이다. 공모전 역시 비슷하다. 이 번이 처음 응모가 아니었고 이 번에 응모한 브런치 북 중에 이미 이전의 다른 공모전에 응모했던 것들도 있다.(정확히는 응모했다 떨어진 모든 브런치 북을 응모했다.)



 이렇듯 공모전이 있을 경우에 특히 더 작가 코스프레를 하는 거 같다. 일단 공모전에 응모한다는 행위 자체가 뭔가 대단한 걸 하는 거 같다. 더해서 공모전이니 당연히 마감이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이 ‘마감’이라는 걸 기준으로 글을 쓰다 보니 정말 무슨 대단한 작가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이런 착각은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암세포처럼 내 인식을 좀 먹어 왔고 특히 공모전에 응모를 하는 경우에 극대화된다.



 작가도 아닌 주제에 작가 같은 고민을 한다. 혼자 하면 괜찮은데 뭐라도 된 냥 주변에 은근히 고뇌 뭐 비슷한 감정을 내비친다. 대표적인 것들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 번째, 글을 쓸 소재가 없다는 엄살을 부린다. 소재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이런 고민은 글로 쓸 만한 소재를 고를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 그러니까 진짜 작가들이나 해야 되는 고민이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한 시간을 포함해 글을 쓰겠다고 한 전체 시간을 다 합쳐도 2년이 조금 넘은 내가 할 고민은 아니다.



 쓴 글은 브런치에 게시한 글의 수를 기준으로 이제 겨우 300여 개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가 된다. 이 300여 개가 지금까지 내가 쓴 대부분의 글이다. 글을 쓴 지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작가도 아닌 주제에 겨우 300여 개의 글을 써 놓고 쓸 만한 소재를 찾는다? 아니 쓸 만한 글감이 없다는 엄살을 부린다? 오만이다. 오만도 아닌 거 같다. 오만이라는 건 그래도 뭐라도 있는 사람이 부리는 건데 이건 뭐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오만 비슷한 그러니까 위에도 쓴 표현을 빌려 ‘막돼먹은 건방짐’ 정도로 표현하면 어느 정도 전달이 될 듯하다. 쓸 만한 소재가 없다고 고민할 시간에 연습을 위해 일기라도 써야 되는 게 정상이다.



 두 번째, 글을 잘 써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다고 괴로워한다. ‘아 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한 번 웃어 줬다. 과연 이 고민이 지금 해야 될 고민일까? 예전부터 글쓰기를 해 왔거나 공부를 한 적도 없다. 당연히 국문과나 문예창작과나 여하튼 글쓰기 혹은 국어, 문학 등과 관련이 있는 대학의 과에 진학을 하지도 않았다. 나이가 조금 차 들어 소위 인생 2막을 글쓰기로 시작해 보겠다고 다짐을 하고 정말 맥락 없이 아무 글이나 쓴 지 이제 겨우 2년을 조금 넘어가는데 왜 잘 써야 된다는 고민을 한단 말인가?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은 고민을 하면 잘 쓸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인가? 가당치도 않다. 지금은 그저 써 내려가면서 손에 인이 박히길 기다리는 게 맞다.(이마저도 손에 직접 펜을 들고 쓰는 것도 아니고 자판을 두들기는 거니 직접 쓰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수학을 이제 막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미적분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것과 같다. 수학을 이제 배우기 시작했으면 숫자부터 세고 숫자 세는 걸 익혔으면 간단한 사칙연산을 시작하면 되는데 미적분 고민이라니… 1 더하기 1은 2를 씩씩하게 배우고 익혀도 모자랄 판에 멋있어 보이는 수학다워 보이는 미적분을 바라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제대로 기지도 못하는 주제에 뛰려고 하니 뭐가 될 리가 없고 돼서도 안 된다.



 이런 가르침을 아이러니하게도 브런치가 가르쳐 줬다. 며칠 전에 브런치에서 다이어리를 보내 줬다. 오래간만에 받아 보는 다이어리 선물이다. 사실 다이어리를 잘 쓰지 않는 사람이기에(거의 쓰지 않는다.) 다이어리는 나에게 있어 예쁜 쓰레기다. 이런 내 성향을 알 길 없는 브런치는 다이어리를 정성스레 포장해서 보내줬다. 사실 내가 요청한 거나 마찬가지긴 하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얼마 전에 브런치 앱이 업데이트됐다. 업데이트한 내용을 홍보하려는 목적인지 이벤트를 진행했다. 선물이 무엇이든 일단 받을 수 있으면 받아 두자 하는 생각으로 이벤트에 참여했다. 물론 참여한다고 모두에게 선물을 주는 건 아니었다. 추첨을 해서 준다고 했고 그 선물이 바로 예쁜 쓰레기인 다이어리였는데 당첨이 된 것이다.



 아주 시의 적절한 선물이다. 되지도 않는 기대와 고민 따위는 하지 말라는 따끔한 조언이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면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인 ‘다독, 다작, 다상량’이나 실천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라고 할 수도 있다. 너무나 뻔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을 실천하지 않고 오만방자하게 작가 코스프레나 하는 나에게 보내 준 선물이니 무언의 압박이 맞다.



 이런 압박이라면 달게 받는 것 또한 맞다. 그래서 앞으로 소재의 고민이라든지(사실 글감은 차고 넘친다. 귀찮아서 그리고 잘 써야 된다는 망상에 사로 잡혀 쓰길 주저할 뿐이다.) 잘 써야 된다는 강박 등은 집어치우고 일기나 쓰려고 한다. 일기라도 쓰려고 한다. 아니 일기나 잘 쓰면 다행일 것이다.(물론 다이어리에 쓸 생각은 없다. 다이어리는 예쁘다. 카카오가 이런 건 잘 만든 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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