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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Feb 11. 2023

여기가 어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길을 잃은 거 같다. 시작을 잘못했다. 슬럼프라는 간단하고도 직관적인 단어로 당시 상황을 표현하는 게 너무 싫다. 인정하기 싫은 마음일 수도 있는데 나는 당시에 일이 하기 싫었던 거지 슬럼프는 아니었다. ‘저기요, 일하기 싫은 거 그게 슬럼프예요. 이 양반아.’라고 하면 할 말은 없는데 여하튼 난 2020년 여름 당시의 상황을 흔해빠진 단어인 슬럼프라고 표현하고 싶지가 않다.



 중요한 건 일이 하기 싫었다는 점이다.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지만 당당하게 일을 줄이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그만두고 싶었는데 차마 그렇게 까지 할 수는 없었다. 같이 일을 하던 아내가 임신으로 일을 정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까지 일을 아예 그만둘 수는 없었다. 모아 둔 돈이 많았다면 혹여 로또라도 됐다면 그만뒀을 것이다. 열심히 일을 하면서 사는 삶도 의미가 있지만 여력이 된다면 열심히 노는 삶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모두가 죽자고 일을 해서 성공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아쉽게도 그런 재력이 없었기 때문에 일이 정말 하기 싫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야 했다. 일을 조금 줄이는 선에서 합의를 봤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선택이 이후의 삶 동안에 상당한 고통을 선사해 줬다. 바보 같기는...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가? 자본주의 시대에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천민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돈을 안 벌겠다고? 그럼 뭐 굶어 죽어야지.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정말로 굶어 죽지는 않았지만 정서적으로 여러 번 굶어 죽을 뻔했고 지금도 그런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당시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없지만 그랬다. 일을 줄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진절머리가 났다고 해야 되나? 하여튼 싫었다고!!! 아 뭐 어쩌라고!!! 내가 나에게 이유를 묻고 있지만 모르겠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일을 줄이지 않았거나 줄이는 속도를 조금 늦췄을 거 같긴 한데 장담은 못하겠다. 중요한 건 시간을 돌릴 수도 없다.



 그 와중에 뭐라도 해 보겠다고 여차저차 글쓰기를 선택해서 지금까지 되지도 않은 글을 쓰고 있는데 점점 길을 잃은 느낌이 강렬하게 든다. 일은 엉망이 됐다. 생활은 정서적으로 몇 번이나 굶어 죽을 뻔했다. 글은? 웃음 밖에 안 나온다. 뭐 엄청나게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건 줄 알고 착각을 하며 지금까지 글을 썼다. 글을 쓰고 있지만 글을 쓴다는 표현조차 민망해서 하기가 힘들다.



 사거리 한 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다. 이쪽으로 가지도 못하고 저쪽으로 갈 수도 없고 그냥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자니 차들이 씽씽 지나다녀서 너무 불안하고 위험하다. 옆을 돌아보니 길을 찾은 사람들인지 분주하게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다. 한 걸음만 옆으로 내딛으면 될 거 같긴 한데 무슨 자존심인지 평범한 시류에 적당히 발을 걸치는 거 같아 그건 또 싫다. 어쩌자는 건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https://groro.co.kr/story/2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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