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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Feb 17. 2023

2022년 5월 마음정산

 2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듄]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책을 읽다 죽을 뻔했다. 너무 힘들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동명의 영화가 2021년 10월에 개봉을 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2022년 2월에 재개봉을 했다. 1980년대에도 동일한 소설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있었다. 알기로는 같은 원작을 둔 같은 이름의 두 번째 영화다. 아무래도 장르가 장르인 만큼 80년대 당시의 영화기술력으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그 부분을 이제 컴퓨터그래픽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없는 시대에 다시 제작해 개봉을 한 것이다.



 장르는 쉽게 말하면 SF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지구라는 공간에 국한하지 않고 우주로 확장된 대서사시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70년대에도 [스타워즈]라는 지금 봐도 손색이 없는 특수효과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어낸 할리우드지만 보다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더욱더 그럴듯한 표현을 하고 싶고 또 그걸 보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인지라 제대로 각 잡고 다시 만들어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동력의 바탕엔 당연히 괜찮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시 듄으로 돌아와서 8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 듄을 보진 못했고 지난해 초에 재개봉한 그 유명한 퇴폐미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티모시 샬라메’가 주연인 듄을 봤다. 장르를 가려가며 영화를 보진 않는다. 안 보는 장르가 있긴 하다. 절대 안 보는 건 아니지만 로맨스나 로맨틱코미디 그리고 소리 꽥꽥 지르는 공포는 잘 안 보는 편이다.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정도의 장르를 제외하곤 여러 장르를 두루 보는 편이다. 배우 좋고 이야기 괜찮을 것 같으면 그냥 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듄이라는 영화에 끌린 이유는 우선 우주에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판타지라는 점이었다. 중세시대를 기반으로 하는 엘프와 드래곤 등이 날뛰는 일반적인 의미의 판타지를 좋아한다. SF는 그런 판타지와는 조금 결이 다른 미래의 어느 시점엔 어쩌면 진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당장은 환상 같은 이야기다. SF의 ‘F’가 판타지를 뜻하는 이니셜은 아니지만 대충 그런 느낌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긴 하다. 여하튼 [반지의 제왕]류 나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듄]이라는 영화에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참고로 위에서 언급은 했지만 주연인 티모시 샬라메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른 주요 주 조연 배우들 중에 좋아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괜찮게 생각하는 몇몇 배우가 있긴 있었지만 영화를 보는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여하튼 나름 재미있게 봤고 중요한 건 원작을 읽고 싶어 졌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영화가 개봉을 하고 얼마 뒤에 원작 소설도 양장으로 개정판이 나왔다. 영화가 나오면서 같이 기획이 돼 진행이 된 건지 우연히 시기가 맞아떨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깨끗하고 빳빳하게 양장으로 개정판이 나온다니 기대가 됐다. 안 그래도 영화를 보고 영화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빠진 이야기들이 궁금해 원작을 알아보던 차에 그럴듯한 표지의 양장본까지 나왔다고 하니 더 보고 싶어 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 시점부터 책은 잘 사 보지 않고 주로 지역의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영화를 보고 원작을 알아보는 와중에 다른 책을 반납하고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갔는데 신작코너에 빳빳하고 두꺼운 양장으로 스스로의 위용을 과시하는 듯한 듄의 원작 소설책을 볼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새 책으로 보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기에 나도 모르게 대박을 외치며 바로 빌려 보려 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이미 1권은 대출이 된 상태였다. 초판은 아마 18권으로 출판됐을 거다. 개정판은 적당히 몇 권을 합쳐 6권으로 출간이 됐다. 여하튼 1권이 없으니 2권부터 읽을 수는 없어 1권 대출 예약을 걸고 2주 정도 기다린 끝에 빌려 보게 됐다.



 기다리던 1권을 받아 본 순간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내용보다도 그 페이지 수가... 기억에 의하면 900페이지가 넘었다. 헉 이걸 이게 그러니까 어떻게 읽지 이걸로 한 대 맞으면 이 다 나가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묵직했다. 2권은 1권에 비해 페이지가 대폭 줄어 3~400페이지 정도였고 나머지 3~6권은 모두 700페이지 전후였다. 6권 모두 다하면 4,500페이지 정도로 기억을 한다. 애초에 18권의 소설을 6권으로 합본한 거니까 어쩌면 당연한 건데도 일단 눈에 보이는 그 어마무시한 페이지에 압도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목표는 하루에 100페이지씩 읽기로 해서 한 달 보름 만에 완독을 하기로 했는데 거의 100일이 걸렸다.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읽다 보니 나중엔 졸린 눈을 부비면서 이를 악물고 오기로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오죽하면 일어서서 봤을까. 아무리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은 읽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무슨 호승심인지 고집인지 모를 마음으로 책과 싸우듯이 꾸역꾸역 읽어 냈다.



 그래서 민망한 이야기지만 기억나는 내용이 딱히 없다. 영화를 보고 사이사이에 빠진 이야기가 궁금해 읽기 시작한 원작이지만 결과적으론 그 이야기의 홍수 아니 페이지의 홍수에서 허우적대기만 한 꼴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일단 이야기가 너무 방대했다. 방대한 이야기가 이 영화와 소설의 장점이지만 방대해도 너무 방대했다.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지금 지구로 따지면 석유나 미래의 먹거리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혹은 그런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원료 등을 놓고 힘 있는 자들의 이권 다툼 정도로 보면 된다.



 그리고 우리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 읽는 내내 불편함을 줬다. 우리 소설이 아니기에 번역이 된 글을 읽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번역한 글은 특유의 어색한 표현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번역하는 분들의 능력을 의심한다거나 노고를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다. 각각의 언어와 문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색을 다른 문자와 언어로 완벽하게 변환할 수 없는 근본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분명히 번역이 잘 됐고 우리 글로 적혀 있기 때문에 읽을 수 있고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는데 묘하게 잘 모르겠는 그 느낌을 읽는 동안 자주 느꼈다. 물론 내 이해의 폭이 좁아 그런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번역을 통한 표현을 이해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꾸역꾸역 읽어 냈다. 웃긴 것 그렇게 읽기 힘들었던 만큼 다른 책도 같이 많이 읽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듄이 읽기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책들은 너무 수월하게 읽혔다. 그래서 듄은 일을 하듯이 읽었고 그 사이사이에 휴식을 취하면서 다른 책을 읽었다. 아마 최근 들어 가장 책을 많이 읽은 기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읽... 아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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