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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Feb 18. 2023

나에게 사기를 치자.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한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모두 존재한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이 굴러가는 그리고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들 중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좋은 음식이 있는 것처럼 소화가 다 되고 남은 찌꺼기들은 딱히 좋다고 할 수 없는 똥오줌으로 나와야 된다.



 이런 게 있으면 저런 것도 있어야 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앞면이 있으면 뒷면도 있어야 하고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어야 한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빛날 수 있는 것이고 빛이 있어야 다 비추지 못한 곳이 어둡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까 긍정이 있다면 부정도 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턱대고 덮어 놓고 무조건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니, 가끔은 그런 표현이 역겨울 때도 있다.



 개인적으로 진정한 긍정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긍정과 부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상황은 긍정적인 대로 부정적인 상황은 부정적인 대로 바라봐야만 상황을 유지/발전시키든 개선/보완시키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덮어 놓고 좋은 게 좋은 거란 식 혹은 대책도 없이 나아질 거야 하는 식의 긍정은 무책임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싸구려 낙천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의미의 긍정은 덮어 놓고 대책도 없는 낙천으로서의 긍정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남발하는 것 같다. 모든 걸 되나 가나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그게 조증이 있는 미친놈이지,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혹은 바라보자 하는 다소 무책임할 수 있는 표현보다는 생각을 조금 돌려 보자가 개인적으로 그나마 조금 나은 표현 같다.



 실제로 요즘 딱히 긍정적일 게 없는 나는 상황을 바라보는 생각과 인식을 조금 돌려 보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에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현대인들과 늘 함께 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들어 보면 다 들어봄직한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는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였다. 다만 그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일 마음이 나도 모르게 준비가 된 건지 라디오에서 들은 내용을 하루 종일 생각하게 됐다.



 대충 이런 이야기다. 스트레스라는 것도 결국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건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유기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몸이 만들어 내는 스트레스는 과연 그냥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떠한 형태로든 쓰임은 없을까? 이런 궁금증의 연구에 대한 나름 의미 있는 결과를 들려줬다. 흔히 스트레스 하면 받으면 안 되는 것, 만병의 근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한창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만성 피로에 의해 여러 자잘한 질병이 생겨 병원에 가면 약방의 감초처럼 듣게 되는 말이 ‘스트레스를 줄이셔야 됩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스트레스는 줄여야만 하는 것인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여하튼 우리 몸이 만들어 내는 건데 정말 불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파고들어 연구를 해 봤는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실험을 위한 통제변인 등은 들었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고 결론만 이야기하면 이런 거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그룹과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 스트레스를 활용한 그룹 중에 더 오래 산 그룹이 어디일까 인데 글의 흐름과 맥락상 예상하겠지만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은 쪽이 그렇지 않은 쪽 보다 오래 살았다고 한다.



 의사들은 우리에게 모두 거짓을 말한 건가? 절대 그렇진 않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쪽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룹이고 스트레스를 받은 그룹은 가만히 있지 않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개념보다는 하나의 에너지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택배기사라고 해 보자. 매일 30Kg 정도의 물건을 5층 정도의 건물을 걸어 오르내리면서 배달해야 되는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역시 30Kg 정도의 덤벨을 들며 운동을 한다고 해 보자.



 보다 자세한 설정은 이렇다. 일을 할 때 들어가는 힘과 쓰이는 근육 그리고 시간 등이 운동을 할 때의 그것과 같다고 해 보자. 분명히 동일한 몸으로 동일한 시간 동안 역시 동일한 힘과 근육을 쓰는데 왜 일은 할수록 골병이 들고 운동은 할수록 건강해진단 말인가?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는 듯이 ‘일이 운동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



 앞에 통제변인 등을 들었지만 자세히 생각이 나지 않는 실험에 의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일도 운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분명히 같은 몸을 움직이면서 같은 운동량을 써먹고 있는데 결과가 다르다는 건 분명히 하드웨어적인 문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그러니까 멘탈, 다시 말해 마음가짐에 있다는 것이다.



 피트니스클럽에 가면 조금이라도 더 무거운 무게를 들기 위해 있는 주름 없는 주름 다 끌어다 오만 악을 쓰고 있는 얼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때 우리 몸은 분명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일을 할 때는 그 반대다. 어떻게 하면 보다 적은 힘을 들이고 혹은 보다 적은 무게를 들려고 아주 전지랄 발악을 한다. 역시 이때도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너무 웃기지 않는가? 운동을 하는 순간에도 일을 하는 순간에도 우린 분명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압박을 받는다. 압박을 받는다는 건 나에게 힘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 힘을 돌려세우면 다양한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데 운동을 할 때는 받는 스트레스를 건강해지는 동기로 삼는 것이고 일을 할 때는 골병이 드는 요인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일을 할 때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이면 운동을 하고 있는 거라고 몸은 착각을 할 것이고 운동을 할 때 그런 것처럼 일을 하면 할수록 건강해질 것이다. 물론 적절한 노동시간 혹은 업무환경이나 처우 등을 고려하지 않고 죽어라 일만 해라 이런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지금까지도 해 왔고 앞으로도 할 일, 그로 인해 늘 스트레스를 받을 건데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이 생각을 조금만 돌리면 골병이 들 수 있는 나쁜 에너지로 변환이 될 스트레스를 건강한 몸이 될 수 있는 좋은 에너지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그래서 요즘 일을 하면서 정신 나간 놈처럼 실실 웃으면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차를 끌고 다니면서 일을 하기에 운동이라고 부를 만한 신체적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차를 하고 잠깐씩 걷는 순간에 ‘운동하는 중, 건강해지는 중’ 이렇게 중얼거리며 걷고 있다. 그리고 주 업무인 아이들과의 수업 시간에도 ‘강의 연습하는 중, 강의 연습을 매일 하니 실력이 나날이 늘어갈 것이고 돈까지 받으니 이보다 행복한 건 없는데 하면서 행복해지는 중’이라고 돼 뇌이면서 돌아다니고 있다.



 너무 뻔한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걸어 다니면서 운동하는 중, 건강해지는 중을 주문처럼 중얼거리고 수업을 하면서 강의 연습하는 중, 강의 실력 느는 중, 어? 그런데 돈도 받네! 이러면서 피식피식 웃는 거 보니 뭐 대단하게 나아지거나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일이 하기 싫어 미칠 것 같은 마음은 다소 진정이 되는 것만큼은 확실한 거 같다. 우선은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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