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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Feb 22. 2023

2,000원의 배신

 2008년 전후였을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자르는 머리를 어디에서 잘라야 하나 하면서 미용실 여기저기를 전전했다. 기억에 의하면 중학교 때까지는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던 거 같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는지 이미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기다리고 있었던 때였는지 명확하진 않다. 엄마랑 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가 ‘너 머리 자를 때 됐는데 미용실 한 번 가볼래?’ 하는 엄마의 말에 이발소만 다니던 까까머리 남학생이 처음으로 미용실에 가게 됐다. 이발사 아저씨가 아니라 소위 헤어 디자이너로 불리는 누나에게 머리를 처음으로 맡기는 순간이었다.



 그날 간 미용실에 근 3~5년 정도 다닌 것 같다. 지역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어서 몇 개의 가맹점도 낸 미용실이었다. 이후로 20대 초중반 까지는 한 곳을 정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헤매다 같이 일하는 선배의 추천으로 시내에 한 미용실에 가게 됐다. 추천을 받기 전에 내가 원했던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건 가격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주기적으로 자르는 머리인데 비싸면 안 됐다. 대단한 헤어 스타일링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머리 손질에 비싼 돈을 들이기 싫었다.



 시내로 나가야 하는 단점이 있었지만 다른 미용실보다 평균적으로 2,000원 정도가 저렴했다. 그리고 가끔 번잡한 시내에 나가는 기분도 과히 나쁘지 않았다. 돌아보니 동생이 결혼할 때 즈음부터 다니기 시작했고 얼마 전까지 다녔으니 10년을 훌쩍 넘게 한 미용실에 다녔다고 볼 수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해당 미용실은 다른 미용실보다 꾸준히 2,000원 정도 저렴했다. 가끔은 시내까지 차를 끌고 나가야 하는 것과 시내에 주차를 하기 조금 애매한 점 등을 고려하면 정말 저렴한 게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성향 상 뭐 하나 됐다 하고 정하면 잘 바꾸지 않았기에 그냥 다녔다. 더 바꾸기도 귀찮았다. 다니면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유대라는 것도 생겨서 그냥저냥 다녔다.



그 긴 시간 동안 100% 완벽하게 단순커트만 해서 한 번 이용하는 시간이 짧았음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다 그만뒀고 다음 일은 무엇을 할 것이며 계획은 뭐가 있는지, 더 나아가 먼저 결혼한 동생이 나은 조카는 잘 자라는지, 드라마나 영화는 뭘 보는지 등 시간 때울 때 할 법한 오만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혹은 한 달 반에 한 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가 머리를 자르면서 떠들며 보낸 시간이 10년을 넘어 코로나시국이 됐을 즈음 머리하는 곳을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을 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앞에서도 이야기했고 처음 다닐 때부터 걸리는 부분이었는데 가까운 집 앞이 아니라 번거롭게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는 점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두 번째로는 처음 이유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인데 시내는 적당히 주차를 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꽤 먼 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든지 미용실과 가까운 유료 주차장에 차를 대든 지 둘 중에 하나였다.



 초반엔 조금 거리가 있어도 먼 곳의 적당한 곳에 불법이 아닌 주차를 하고 걸어갔지만 그런 곳을 찾는 게 너무 힘들어 어느 순간부터 미용실 바로 앞에 있는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게 됐다. 머리 하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주차비가 많이 나와야 2,000원 안쪽이었다. 머리를 하는 직접적인 비용 이외에 발생하는 비용이라 영 싫었지만 그 부분을 감안한다고 해도 다른 미용실과 비용이 비슷해졌기 때문에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적당히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름 긴 시간 한 사람에게 머리를 맡기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유대라는 게 형성이 돼서 그 정도는 내가 고객이지만 나름 들일 수 있는 노력이다 싶었다.



 그런데 미용실을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의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헤어 디자이너의 태도 때문이었다. 직업 특성상 오전에 시간이 나서 머리를 자르기 위해 보통 오전에 방문을 했다. 기다리기 싫어서 헤어 디자이너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가 그날의 첫 번째 손님이 되는 방식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빨리 머리를 자르고 집에 돌아와 조금이라도 더 쉬고 일을 나가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헤어 디자이너의 출근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출근 시간이 처음에 오전 10시였다면 차츰차츰 늦어져 어느 순간 10시 30분이 되어 있고 또 어느 순간 11시가 되어 있고 이제 12시나 되어야 나오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됐다. 헤어 디자이너도 해당 미용실에 직원으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출근 시간을 당연히 꼬박꼬박 지킬 줄 알았다. 아니 이건 직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기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점점 늦기 시작해 급기야는 손님인 내가 먼저 나가서 디자이너의 출근을 기다려야 했다.



 손님이 절대적인 왕은 아니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더욱이 유로 주차장에 차를 대 서 시간이 곧 돈인데 이렇게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참 바보 같다면 바보 같은 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리를 해 준 사람이라 그런 가 쉽게 끊어 내고 미용실을 바꾸기가 뭐 했다. 이성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 여하튼 마음이 그랬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나 역시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조금씩 늦게 가는 거였다. 묘하게 눈치를 봐 가면서 내가 시간을 맞춰 나가야 했다. 그렇게 해서 한 10~20분 정도 기다렸다 머리를 했다. 신기한 건 그렇게 일을 해도 그 디자이너는 미용실에서 잘리지도 않았다.



 그다음 방법으로는 예약을 하고 가면 되는 거였는데 예약은 또 받지를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미용실을 왜 다닌 건지 모를 정도인데 오랜 시간 함께 한 그 무언가가 발목을 잡은 것 같다. 그 미용실을 다닐 이유보다 안 다닐 이유가 더 많았음에도 얼마 전까지 계속 다녔다. 물론 그러면서 언젠가는 바꿔야지 하는 마음도 같이 품고 머리를 잘랐다. 디자이너가 머리는 자르면서 내 우유부단함은 이어 붙인 건 아닌가 하는 강력한 합리적 의심을 해 본다.



 그러던 와중 결정을 하지 못하는 내 우유부단함을 때려 부수어 주는 일이 드디어(?) 발생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시내까지 차를 끌고 나가서 유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출근을 아직 하지 않은 디자이너를 10분 정도 기다린 뒤에 머리를 다 자르고 계산을 하는데 전 달까지 다른 미용실보다 2,000원 저렴했던 비용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가 툭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내 마음속에서 들렸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오른 가격에 맞게 돈을 지불하고 다음 달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다시 찾을 것 같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유료 주차장에 주차비를 내고 차를 끌고 나오면서 비로소 혼잣말을 했다. ‘이제 여긴 아니다.’



 더 이상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그나마 고민을 하고 다닌 나름의 이유와 자기 합리가 있었지만 그 선이 끊어져 버렸다. 앞에서도 몇 번 이야기했지만 시내까지 차를 끌고 나간다는 점, 유료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다는 점, 나보다 늦게 나오는 디자이너를 기다려야 된다는 점(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예약이 안 된다는 점 등 나열된 이유 중에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모든 걸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합리화해서 괜찮다고 다닌 마음을 끊어버린 건 2,000원의 가격인상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내가 단순하게 2,000원이 올랐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다닌 미용실을 바꾼 다소 좀스러운 인간으로도 비춰줬을 수도 있을 테지만 틀린 말도 아니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일일이 설명할 일도 아니다.



 2,000원의 인상이 미용실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맞지만 ‘그게 그러니까 그게 아닌데’하는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미안함과 서운함 그리고 아쉬움이 남았다. 그 와중에도 머리를 꾸준히 해 준 디자이너가 따로 미용실을 내면 찾아가리라 하고 생각하는 나는 호구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여하튼 미용실을 바꾸기로 했고 문제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던 문제를 이제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선택을 해야 했다.



 다행히 아내가 다니고 있던 동네 미용실이 있었고 우선은 그곳으로 갔다. 가격은 기존 다니던 곳보다 조금 더 받았지만 동네라 가깝다는 점(가깝지만 역시 차를 끌고 다니는...), 유료 주차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기다릴 필요 없는 예약이 된다는 점으로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았다. 디자이너가 3명 있는 작은 미용실이었는데 누구 손에 내 머리를 맡기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 3명에게 번갈아 가며 한 번씩 머리를 맡겼다. 머리를 자르는 간격을 한 달 정도로 두고 있기 때문에 3명이 다 도는데 3개월 정도가 흘렀다. 결론은 3명 다 탐탁지 않았다.



 10년 넘게 다니던 미용실을 다니기 전처럼 다시 여기저기를 전전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시 한번 아내가 전에 다니던 미용실에 한 번 가보라 해서 찾아갔는데 현재로선 가격도 기존에 다니던 미용실이 올리기 전의 가격과 같았고 예약도 되고 미용실을 바꾸고 앞서 찾아간 곳보다 집에서 더 가까워 걸어 다닐 수도 있는 곳이었다. 선택을 안 할 수가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머리를 어떻게 잘 잘라 주나 하고 맡겨 봤다. 만약에 마음에 안 들면 기를 때까지 한 달만 적당히 대충 다니면 되니까 상관없다 하는 마음으로 맡겼는데 나름 괜찮았다.



 이게 마음에 들기가 쉽지 않은 게 기존에 10년 넘게 다닌 곳에서 머리를 해주는 분의 스타일링(짧은 머리 커트라 대단할 건 없지만)이 내 눈에 너무 익숙해서 지금은 정말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디자이너가 아닌 다음에야 만족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 주차, 예약 등 외부적인 요인들이 너무 강력해 최종적으로 마지막에 간 곳으로 계속 다니기로 결정을 했다. 아 머리 자르기 힘들어.


https://groro.co.kr/story/2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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