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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Feb 09. 2023

봄이네?!

 나는 시간 변화를 조금은 빠르게 느끼는 편이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를 하자면 내 감각 등이 예민하고 민감하고 혹은 섬세해서가 아니라 나름 살아온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간다는 걸 체험했고 이 부분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거 같다.



 다시 말하면 내 정도 나이가 된 사람이라면 다 느낄 수 있는 아니 인지 또는 의식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의 변화일 것이다. 다만, 그 부분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정도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뿐이다.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가을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설풋 볼을 스치는 그 느낌, 느껴본 사람은 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겨울이 시작되면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시작된다. 겨울이 이제 시작이니 봄은 언제 오지? 이번 겨울은 춥다는데 혹은 눈이 많이 온다는데 어쩌나 등등. 그때 그런 이야기를 듣는 내 속은 그래 봐야 12, 1, 2월 이렇게 3개월이면 끝입니다. 어~하면 음력설 보내고 주변에서 봄옷을 파는 걸 보게 될 겁니다. 3개월 순식간입니다. 매년 그랬고 올해도 어김없이 그렇게 겨울 끝입니다.



 이번 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엊그제 겨울이 시작됐고 겨울 초입에 눈이 잔뜩 와서 난리도 아니었는데 하고 뒤 한 번 돌아보고 앞을 보니 순식간에 봄의 문턱에 바짝 다가서 있다. 물론 아직 2월 초입이고 ‘춘삼월’이라는 단어처럼 봄을 상징하는 3월이 와도 꽃샘추위를 위시한 추위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고 일부 지역은 예상치 못한 눈도 많이 내릴 것이다. 그럼에도 3월은 3월이고 겨울은 끝물이고 봄의 시작은 확실하다. 그런 3월이 불과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얼마 전 음력설을 맞아 아내의 친정집에 가는 날이었다. 정확히는 음력설 직전 날 그러니까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이었다. 이러저러 준비를 하고 아내 그리고 아이와 함께 아파트 공동 현관을 나서 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1층 앞 화단에 앙상한 나뭇가지를 내비치고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앙상한 가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웬걸 가지 끝마다 벌써 봄에 틔울 잎을 품고 있었다.



 절기로는 대한大寒 다음 날이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음력설 전 날이었다.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실히 그 이름 모를 나무는 가을에 잎을 떨구는 순간부터 겨울을 보내고 다음 봄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을 것이다. 아둔한 사람의 눈에 그제야 보인 것일 뿐이다.



 절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절기는 뭐랄까 참 묘하다. 잘은 모르지만 이 절기라는 게 예전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잘 쓰던 거라고 알고 있다. 1년을 24개의 절기로 나눠 시기에 맞는 일을 해야만 한 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뭐랄까 하나의 지침 혹은 기준점 같은 거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부지런해야 한다고 그야말로 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 망친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산다.



 그래서인지 절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양력으로서의 계절 변화를 거의 한 달 정도 앞당겨 시간의 흐름을 정리해 두고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2월이면 이제 겨울이 끝나가는 시점으로서의 달月이라고 할 수 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 전 달이니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2월은 아직 분명히 겨울이고 또 꽤 춥다. 그런 2월 초에 봄의 문을 여는 입춘立春이라는 절기가 있다.



 입춘으로 끝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할 텐데 바로 이어서 새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정월대보름(대보름은 24 절기에 속하진 않는다.)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2주 정도가 지나면 눈이 녹는다는 우수雨水다. 다시 2주 정도가 지나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닥친다. 결정적으로 다시 2주 정도가 지나면 그야말로 계절의 변화를 확실히 알리는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春分이다.



 표면적으로는 아직 겨울인 2월에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과 눈이 녹는다는 우수가 있다. 그리고 아직 쌀쌀하고 많은 사람들이 패딩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3월에 눈도 녹고 땅도 다 녹아 개구리까지 깨어나는 경칩과 낮의 길이가 본격적으로 길어지는 춘분도 있다.



 자연은 시간의 흐름을 끊김 없이 가을의 끄트머리 즈음 겨울을 맞이하면서 이미 벌써 봄으로 갈 준비를 한다. 아직 한창 겨울이라고 생각하는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1월 말 경에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에 움을 틔우고 이제 한 달 뒤면 쌀쌀하지만 3월이니까 봄이다 하고 있을 지금 2월, 절기는 입춘을 지나 달리고 있다. 절기 위에 올라타면 조금은 부지런한 사람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https://groro.co.kr/story/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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