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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Feb 04. 2023

아내와 싸웠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이 있다. 부부라는 관계는 자주 싸우면서 화해한다 뭐 이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칼로 물을 베는 게 그런 의미인가 싶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찾아보니 칼로 아무리 물을 베려도 벨 수 없는 것처럼 부부가 아무리 싸워도 쉽게 헤어질 수 없다 뭐 이런 느낌의 해석을 하는 것 같다.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런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확실한 건 부부 사이의 싸움은 그만큼 흔하고 화해도 쉽다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우리 부부 역시 많이 싸우는 편이다. 이유는 보통의 부부가 그렇겠지만 대부분 설명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소소한 것들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그때 왜 싸웠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소소한 것들이다. 연애하던 시절에도 많이 싸우고 결혼하고 나서도 많이 싸웠다. 크게 싸운 적도 있지만 지나고 나면 별 일도 아닌 그래서 기억도 거의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싸우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또 어느 정도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니 싸우는 게 정상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알고 이해할 거 같은 피를 나눈 가족 하고도 싸우는 일이 일상다반사다. 하물며 30~40년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성인들이 같이 사는데 안 싸우면 어쩌면 그게 더 이상하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나 평생을 같이 하자고 결혼을 했으니 그 마음 변치 않고 안 싸우는 부부들도 있다. 그런 부부들을 비정상이라고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존경스러울 정도다. 그리고 동시에 그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안 맞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자주 싸운다. 하지만 한 가지 그렇게 싸우면서도 나름의 신뢰는 있다. 소소한 말다툼일 뿐이라는 점, 가끔 말다툼이 커지기도 하지만 끝을 보진 않는다는 그러니까 선을 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자유롭게 싸운다. 다행인 건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더해질수록 싸우는 횟수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또 가끔은 싸우면서 서로를 진정으로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싸우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싸우고 있고 얼마 전에도 싸웠다. 정확히는 생각의 차이로 감정의 결이 빗나갔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여하튼 냉기가 흘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상당히 큰 변화의 지점이 하나 있다. 바로 딸아이의 존재다. 싸움의 횟수가 살아온 시간이 더해짐에 따라 차츰 줄어들었는데 급격히 줄어든 계기는 딸아이의 등장이었다.



 육아라고 하는 어마무시한 과제 앞에 싸우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서로 긴밀하게 도와야 하는 육아 앞에 시시한 감정의 싸움은 오래갈 수가 없었다. 둘만 있을 경우엔 오랫동안 감정적 대립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했다. 하지만 육아 앞에 그 따위 감정적 대립은 사치였다. 아이의 존재가 무어란 말인가? 내가 아내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우리 사랑의 결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로서 철저하게 엄마아빠의 선택에 의해 세상에 내 던져진 아이에 대한 책임을 도무지 회피할 수가 없었다.



 설령 싸울 일이 있어도 목소리를 낮춰 싸우게 됐고 싸운 후에 화해의 속도도 상당히 빨랐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육아라는 어마어마한 산 앞에서 시시콜콜한 의견 차이에 의한 감정의 대립은 정말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일이기에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라는 존재는 삶에 있어 정말 많은 변화를 줬는데 부부싸움이라는 어쩌면 영원히 풀 수 없는 과제도 잠시 접어두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계기로 싸움의 횟수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싸울 일은 있고 아직은 엄마아빠의 말을 온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이기에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대화하듯이 싸우는 경우도 있고 얼마 전에도 그렇게 싸웠다. 아니 냉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근 이틀간 아내와 냉전을 유지 중이었다. 그 와중에 부모님 생일이라 같이 밥까지 먹었다. 얼마든지 싸운 티를 내지 않고 가족행사를 치를 수도 있고 그렇게 했다. 부부는 그럴 수 있다.



 집에 돌아와 정리를 하고 일을 하러 나가는 길에 아이에게 아빠 안아달라고 팔을 벌렸다. 가끔 아니 자주 딸아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문득문득 아이에게 안아달라고 한다. 그럼 아이는 신나게 놀다가도 사랑스럽게 뽀로로 달려와 내 품에 안긴다. 그날도 그런 요청을 했는데 아이가 웬일인지 달려와 품에 안기지 않고 머뭇머뭇 물러나는 듯이 하면서 뭐라 뭐라 이야기를 했다.



 25개월이 막 지난 아이이기에 아직 말을 정확하게 하진 못한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아이의 표현이 불분명해도 주의해서 다시 잘 들으면 대략적으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다. 다시 들어보니 아빠가 엄마를 안으라는 거였다. 늘 하듯이 아빠가 아빠 안아달라고 아이에게 요청을 했는데 아이가 뭘 알고 그런 건지 우연히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아내와 냉전 중인 그때 엄마아빠 화해라도 하라는 듯이 평소 같으면 아빠에게 그냥 달려와 안겼을 아이가 엄마를 안으라고 했다.



 순간, 웃음이 터졌다. 우연이겠지만 우연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아이에게 싸워서 냉전 중이라는 걸 들킨 거 같아 민망하고 머쓱하기도 했다. 그렇게 상황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자란 준 거 같아 대견하기도 했다. 알고 그랬다면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럽기도 해서 그냥 웃음이 터졌다. 물론 바로 일을 하러 나가야 돼서 아내와는 일을 마치고 들어와 밤에 화해를 하긴 했지만 우연인지 의도인지 모를 아이의 행동이 지금도 계속 생각난다. 어느새 부쩍 커서 미주알고주알 쫑알쫑알 거리는 딸아이 눈치를 봐서라도 싸우는 횟수를 더 줄여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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