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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Mar 07. 2023

아무것도 아니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이야기한다. 이야기하는 만큼 성공을 이룬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성공을 이룰 것으로 생각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이야기한다. 나 역시 성공을 이야기한다. 보다 정확히는 어떻게 하면 성공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고 보는 편이 맞다.



 성공... 최근에 여러 글에서 참 많이 다룬 주제다. 이 전 글에서도 많이 다뤘던 주제다. 그만큼 이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그런데 뭐가 빠진 것 같다. 순서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결과로 볼 수 있는 성공을 이루려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니 그 부분을 간과한 거 같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성공을 이루기 위한 원인으로서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지. 학창 시절, 20~30대 그리고 지금으로 적당히 나눠 생각해 보려 한다. 학창 시절을 먼저 생각해 보면 우선 공부를 잘했는지 아닌지를 확인해 봐야 될 거 같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부를 잘했다. 잘했지만 일정 시기까지만 잘했다. 결과론적으로 만족스러운 성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 했다.



 학생이니까 공부를 하는 게 최우선이겠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니 공부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엔 공부 아니면 지극히 단편적인 표현인 예체능계로 나눴다. 물론 예체능계라는 표현 하나만으로 상당히 많은 걸 포괄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유물 같은 단어다. 지금은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장래희망의 종류가 훨씬 다양해진 거 같아 다행이다.



 돌아 생각해 보면 지금 애를 쓰면서 쓰고 있는 글을 학창 시절에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하던 대로 잘했다면 또 달라지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했을 때 그 정도 공부해서 적당한 대학을 갈 거였다면 차라리 책에 빠져 책을 많이 읽고 글이나 신나게 써 볼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콘텐츠의 시대인데 그때부터 글을 쭉 썼다면 어떤 형태로든 글밥을 먹고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여하튼 한 때는 공부를 잘했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모든 걸 쏟아부어서 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건지 아직도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다. 물론 실천으로 잘 이어지지 않아서 문제지만 일단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나름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는 하는 것 같다. 그 적극성을 보다 키우고 지속력도 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늘 하고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일은 하면서 살 수 있다. 얼마나 질 좋은 일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봐야 되겠지만 먹고살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족한 시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일이기에 보다 열심히 해야 될 것이다. 학창 시절에 하다 만 공부에 대한 갈망을 전환해 일을 하는 데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그러지 못하고 있다. 늘 언제나 항상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하는 걱정과 불안만 달고 살아갈 뿐이다.



 간혹 공부를 잘하던 시절의 내 모습을 떠 올릴 때가 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공부할 준비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50분 정도 공부를 하고 10분을 쉰다. 이어서 계속 같은 패턴으로 공부를 한다. 그렇게 새벽 2시 정도까지 공부를 한다... 당시의 그런 정성을 지금 일을 하는 데 들이면 분명히 지금보단 확실히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성인이라 그런 건지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않고 또 걱정과 불안만 끌어안고 낑낑거리고 있다.



 물론 일을 열심히 한 시기도 있다. 어느 정도 성과도 나왔다. 그로 인해 차도 사고 포기했던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아직은 은행 집) 아이도 낳고 나름 잘 살고 있다. 문제는 다음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아 있고 아이도 커 가는 와중에 다음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음은 고사하고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고 있는 지금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다행인 건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상당히 게으른 사람인데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학창 시절의 공부와 지금의 일이 내 삶 속에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 왔고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크게 보면 두 번의 실패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즉, 삶 자체를 놓고 봤을 때 과연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Burn out’이라는 표현을 자신 있게 쓸 수 있을 정도로 살아왔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번아웃은 보통 부정적인 표현으로 많이 쓰이는데 난 조금 생각이 다르다. 무언가에 집중해 스스로를 완벽하게 태워낸 삶, 오히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한 점 두려움이나 거리낌 없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를 확실하게 태우는 삶, 한 번은 살아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는 유명한 표현도 있다. 새카맣던 연탄이 완벽하게 타올라 새하얀 재만 남은 상태, 어찌 생각해 보면 환골탈태換骨奪胎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삶은 아직 그렇게 하얗게 타오르지 못한 거 같다. 다행이라면 남아 있는 삶 동안 기회는 아직 있다는 것이다. 성공을 그 어느 때보다 바라는 지금, 새까만 연탄이 새하얀 연탄재가 되는 과정을 떠 올리며 남은 인생 그야말로 새하얗게 태워 봐야지 하는 생각 혹은 다짐을 해 본다.



 아직 아무것도 아닌 삶, 홀랑 태워 아무것도 남지 않을 삶을 바라본다.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중에서


https://groro.co.kr/story/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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