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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Apr 02. 2023

벚꽃과 함께 하는
청주 푸드트럭 축제

2023년 3월 31일

 축제다. 그야말로 축제다. 사실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냥 그런 규모의 축제다. 그런데 시기가 그냥 그런 축제를 조금은 남다르게 다가오게 해 줬다. 여러 꽃이 있지만 봄의 여왕이라고 해야 되나? 겨울의 추위를 이겨 내고 돌아온 백기사라고 해야 되나? 여하튼 봄이면 누가 뭐라고 해도 벚꽃의 아름다움이 압권이다. 봄인데 새하얀 눈 같은, 눈꽃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어쩌면 겨울의 눈보라를 뚫고 당당하게 돌아온 백기사의 온몸에 수북이 쌓인 눈일지도 모르는 팝콘무더기는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가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국 여기저기에서 벚꽃축제가 열리는 거 같다.


 청주도 무심천변 도로가 대표적인 벚꽃 거리다. 우암산 산책로에도 벚꽃이 꽤 피지만 쉽게 갈 수 있는 보다 대중적인 장소는 무심천변 도로의 벚꽃거리다. 매년 봄 3월 말 4월 초입이면 풍성하게 만개한 벚꽃을 보기 위해 청주 시민 모두가 그 거리로 향한다. 사회적인 거리를 유지해야 했던 코로나 시국 한 복판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물론 성숙한 시민의식과 공무원들의 노력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조심하면서 벚꽃 구경을 했다.



 이제 코로나는 끝나가고 있다. 그런 변화에 발맞춰 움츠리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전국에서 축제가 한창이다. 청주도 그에 응하듯 정말 오래간만에 벚꽃축제를 제대로 연 거 같다. 사실 내가 한참 어렸을 때 사회 전반적으로 환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절엔 벚꽃이 피는 봄만 되면 무심천에 온갖 불법 노점과 야시장이 장사진을 이뤘다. 다들 그냥 그러려니 했고 아무렇지 않게 핫도그나 꼬치를 사 들고 먹으면서 벚꽃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무심천 하상에 열린 야시장은 더 개판이었다. 야시장은 장소를 옮겨가며 영업을 하는 포장마차들이 대부분이다. 안 그래도 환경에 대한 인식 따위가 없던 시절에 내가 사는 곳도 아닌 곳에서 한탕해 먹고 자리를 뜨면 그만이라는 장사치들과 우리가 사는 곳이지만 사람 많이 모이는 한 철은 원래 그런 거라면서 쓰레기를 여기저기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개 같은 시민의식이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며 무심천을 골병들게 했던 시절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인식이 성장하면서 시에서 안 되겠다고 판단을 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불법 노점과 야시장을 모두 단속해 버렸다. 그 이후로 무심천변 도로의 벚꽃 거리는 순수하게 벚꽃만 보는 거리가 됐다. 말 그대로 벚꽃을 보기만 하면서 사진 정도나 찍는 거리였던 무심천변 도로의 벚꽃 거리가 코로나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푸드트럭을 불러들여 축제를 열었다.



 사실 얼마 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환경도 좋은데 조금 심심하다고 할까? 사람이 모이면 음식을 먹고 술도 마시고 뭐 이런 왁자한 분위기가 주는 정취라는 게 분명히 있다. 그 정취가 주는 감성적인 측면을 우린 알고 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무분별하게 불법 노점과 야시장이 열리는 걸 묵인할 수도 없었다. 그러기엔 이러나저러나 우리의 인식이 너무 커져 버렸다. 축제분위기를 내면서 환경을 생각하는 방법이 뭐가 없을까 생각했다.



 무식한 머리로 생각한 거라 말도 안 되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냥 돈이면 해결될 거 같았다. 즉, 경유차들이 환경개선부담금을 내듯이 시에서 축제를 위해 축제기간 동안 들어와 장사를 할 사람들을 신고나 등록을 통해 모집을 하고 환경개선부담금의 의미로 하루에 돈을 얼마 간 받는 거다. 정확히 어느 정도를 받아야 할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수십 만 원을 받는다고 해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영업을 할 거 같았다. 그래서 시에 제안을 해 볼까 말까 그러고 있었는데(내가 제안을 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시가 내 마음을 알았는지 보란 듯이 축제를 열어 줬다. 기간은 3월 31일부터 4월 2일 까지다.



 너무 늦으면 꽃도 다 떨어지고 끝물이 주는 약간의 스산함이 싫어 부랴부랴 시간을 만들어 오늘 바로 나갔다. 컥, 벚꽃 축제가 아니고 사람 축제인 거 같다. 코로나 한참 이전부터 단속을 통해 막아 왔던 먹거리가 함께 하는 축제, 코로나가 끝나가는 응축된 사람들의 마음이 터지는 시기에 열린 축제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축제가 됐다.



 푸드트럭하면 떠오르는 아는 맛, 벚꽃을 보며 그 무섭다는 아는 맛 한 번 보겠다고 나왔는데 푸드트럭에 서 있는 줄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니, 이거 줄을 서면 내 차례가 오기는 오는 거야? 아이랑 나와서 우린 굶어도 아이는 뭘 먹여야 되는데... 한 바퀴를 다 돌았지만 그나마 줄을 서 기다릴만한 건 커피정도의 음료를 파는 푸드트럭이었다. 하지만 우린 특히 우리 아이는 저녁대용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먹어야 했기에 분위기에 휩쓸려 뭐라도 먹자 하고 줄을 서 커피를 살 수는 없었다.



 돌아보니 푸드트럭만 있는 건 아니고 소소한 물건을 파는 마켓도 함께 하는 축제였다. 아쉬운 대로 돌아볼 건 다 돌아보고 도저히 줄을 서 기다릴 수 없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어렵게 주차를 한 곳으로 가서 차를 끌고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메뉴는 급하게 찾느라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백반을 선택했다. 아쉬운 마음이 통했는지 아내와 나는 밥을 다 먹고 다시 가 보기로 했다.


 시간도 어느 정도 지나고 밥 때도 지나고 하면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밥을 일단은 맛있게 먹었다. 급하게 고른 식당이었는데 나름 정갈하게 잘 나오는 집이었다. 밥을 다 먹고 다시 축제 현장으로 향했다. 아까보다는 주차하기가 수월하겠지 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빙글빙글 주변을 돌다 처음 주차한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다시 주차를 하고 축제 거리로 갔다.


 억,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니 이 양반들이 밥을 다 여기서 먹으려고 하나? 줄이 아까랑 똑 같잖아! 어! 줄이 가장 길었던 그래서 더 먹고 싶었던 스테이크 푸드트럭 줄이 짧았다? 아니 없었다! 달려가듯이 걸어갔더니 웬걸 재료가 다 떨어져 마감을 하는 중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다른 푸드트럭을 둘러봤는데 다들 비슷한 상황 같았다. 시간을 보니 밤 9시였는데 푸드트럭들이 일제히 마감을 시작하는 거 같았다. 나중에 정보를 찾아보니 원래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축제 첫날에 맞춰 달려 나갔는데 다 우리 같은 마음이었는지 북적북적 사람 보는 맛은 있었지만 정작 맛을 보고 싶었던 푸드트럭의 음식 맛은 못 보고 엄한 백반 집 매출이나 올려 주고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간만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축제다운 축제를 봤다는  점이 그나마 아쉬운 마음을 조금 달래줬다. 아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봤을 건데 나름 색다른 경험을 하게 돼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더불어 생전 처음으로 솜사탕을 사주기도 했는데 엄마아빠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이는 생각 외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달고 짠 음식을 천천히 먹이고 있는 중이라 솜사탕 같은 설탕 덩어리를 먹이면 눈이 돌아갈 줄 알았는데 너무 순수한 당이 어색한 건지 식감이 별로인 건지 한 입 먹고 나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에 놀라 기다리기 힘들어 의도치 않게 백반을 먹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시 돌아왔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의 축제에 대한 열망에 밀려 버린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보기 위해 축제 마지막 날인 일요일을 기약했다. 그런데 과연 일요일이라고 줄 서기를 성공할지는 미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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