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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Apr 23. 2023

우리 집 화단

 기억나는 게 두 번 정도인 거 같다. 식물을 키워 본 경험이야기다. 한 번은 정확하진 않지만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과제 형태로 내준 강낭콩 키우기였던 거 같다. 이후에 몇 번은 더 있었을 거 같긴 한데 기억에 남는 경험은 없는 거 같다. 그리고 결혼 후 아내 지인들을 집들이로 초대했을 때 선물로 받은 신新산세베리아를 키운 게 두 번째다.



 꽤 오래 잘 키웠다. 사실 엄청난 노력을 들이진 않았다. 잊을 만하면 물 한 번 흠뻑 주는 정도가 다였다. 그럼에도 베리아는(본래 식물명을 줄여 부르기 시작한 게 자연스레 이름이 됐다.) 무럭무럭 자라 주었다. 선물로 처음에 집에 왔을 때는 앙증맞은 화분에 한 포기(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가 심어져 있었는데 앙증맞은 화분은 어느덧 베리아를 가두는 감옥 같은 크기로 작아졌고 원래 다른 뿌리가 있었던 건지, 한 포기가 뿌리 혹은 가지를 뻗은 건지 두 포기가 돼 있었다.



 선물을 받았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화분갈이를 해야 될 판이었다. 꽃집에 가서 물어보니 돈을 꽤 달라고 했다. 화분 자체의 가격과 화분갈이가 돈이 조금 들어간다는 건 식물 키우는 일에 큰 관심이 없었어도 대충 주워 들어 알고 있었는데 직접 들으니 금액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한 포기 살기도 버거운 화분에 두 포기를 뻗어낸 베리아를 그대로 가둬 둘 수는 없었다.



 마침 어머님 댁에 여분의 커다란 화분이 있었다. 화분을 받아 왔다. 화분을 채울 흙만 있으면 됐다. 집 주변에 흙을 퍼 올 적당한 곳이 없나 둘러봤는데 있을 리 만무했다. 아무 땅이나 가서 퍼 올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화분갈이용 흙을 꽃집에 가서 한 포대 사 왔다. 집 베란다에 자리를 깔고 화분갈이를 했다. 단칸방 집에서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 보내준 듯하여 내 속이 다 시원했다.



 그 뒤로도 잘 자랐다. 광고에서 보는 쭉쭉 뻗은 알로에 보는 거 같았다. 조금 아쉬운 건 사진을 한 장을 안 찍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사진을 잘 안 찍는다. 스스로가 됐건 다른 사람이 됐건 경치가 됐건... 일단 사진에 찍힌 내 모습 보는 게 영 불편하다 보니 스스로를 찍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 사진도 잘 안 찍어준다. 더 나아가 아름다운 경치를 사진 따위에 다 담을 수 없어 실망한 경험이 많아 그조차 보통은 눈에 담는 편이었다. 다만, 최근에 글을 쓴다고 이래저래 필요에 의해 찍고 있을 뿐이다. 더해서 식물이(생명이) 집에 들어왔기 때문에 키운 거지 애초에 식물 키우기에 큰 관심이 없어 베리아를 키우면서도 사진 찍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여하튼 그렇게 잘 자라주던 베리아는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집을 떠나게 됐다. 어느 날인가 아이가 화분의 흙을 한 번 파먹은 적이 있다.(뭐 그럴 수 있다. 우리 어린 시절엔 다 흙 파먹으면서 컸다. 엄마 재 흙 파먹어, 땅그지인가 봐~) 흙만 파먹기엔 아쉬웠는지 베리아 잎을 꺾은 적도 있다. 이러다 뭔 사달이 나도 날 거 같았다. 아이에게도 베리아에게도 위험신호였다.



 안타깝고 아쉽고 미안했지만 별수 없이 어머님 댁으로 보냈다. 그전에 한 포기가 더 나왔을 때 관심을 표현하신 적도 있고 해서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보냈다. 아마 지금은 어머님 댁 실외에 있는 계단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식물을 키워 본 지난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이제 비로소 우리 집 화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그런데 사실 우리 집엔 화단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 집 화단 이야기를 할 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식물을 키워 본 경험은 앞에서 이야기한 두 번의 경험이 거의 전부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집엔 화단이란 게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집 화단 이야기를 한다는 거다. 뭔가 앞뒤도 안 맞고 접속사도 엉망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살고 있는 아파트 공동 화단을 우리 집 화단이라고 우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집 화단. 정확히는 우리 아파트 공동 화단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파트와 공동이란 단어를 지워 버리고 집이란 단어를 넣었기 때문에 이 혼란이 야기된 것이다. 뭐 어쨌든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공동주거 형태이고 그런 주거 형태가 가지고 있는 화단은 당연히 공동 화단이겠지만 또 우리 집 화단이기도 하다. 아니 베란다 창을 통해 떡 하니 보이는 화단에 의해 나름 눈이 호강하고 마음도 치유가 되기도 하는데 어찌 우리 집 화단이 아니란 말인가? 베란다 창을 밖을 볼 수 없는 벽으로 바꿀 수도 없고 눈을 감을 수도 없으니 우리 집, 내 화단으로 인정하고 바라볼 수밖에... 더욱이 화단 관리를 위한 노력도 필요 없으니 눈이 원할 때, 마음이 허할 때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경비아저씨, 다른 하실 일도 산더미일 텐데 화단 관리까지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아파트 공동 화단에 눈길이 간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어진 지 조금 된 아파트라 최근에 지어지는 아파트들의 휘황찬란한 조경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다. 매일 지나치는 길에 그냥 있는, 영화나 드라마 화면 속에 있는 배경을 위한 소품 같은 그런 느낌의 별 관심도 가지 않는 어느 아파트에 가도 다 있을 법한 그저 그런 화단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시기로 따져 보면 작년 봄부터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눈길이 가기 시작했고 보다 관심 어린 시선이 가기 시작한 건 작년 겨울이 시작될 즈음이었던 거 같다. 분명히 늘 지나치는 아파트 화단 길이었는데 이상하게 화단의 그 무언가가 발걸음을 잡았다. 정말 특별할 게 없는 늘 똑같은 나무, 풀, 꽃들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바라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하고 어!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턴 나도 모르게 바라보다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무나 풀 그리고 꽃들에게 말을 걸진 않았는데 그냥 그들(생명이니까 이렇게 지칭하겠다.)을 보며 느껴지거나 생각나는 것들을 떠들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경우보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떠드는 편이긴 한데 가끔 말을 걸기도 한다. 뭐 그렇다고 식물과 대화를 하게 됨으로써 뭔가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거 같아요! 아 하하하 이딴 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며칠 전엔가 한 번 내가 살고 있는 동棟을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의 식물들을 찍어 봤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그냥 막 찍었다. 생각보다 다양한 식물들이 풍성하게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가 사는 아파트만 이런 게 아니고 웬만한 아파트는 이 정도의 조경은 다 돼 있는데, 요즘 아파트들은 지상에 아예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공원 한 두어 개 정도 규모의 조경을 하지 않나? 그런데 왜들 그렇게 자신들이 사는 공간인 아파트를 삭막하다고 할까?



 가만히 둘러보면 조경을 워낙 잘해 놔서 애초에 공원의 빈 공간에 아파트가 들어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도대체 뭐가 그리 삭막하다는 거지? 아! 서울은 지방하고 다르게 아파트에 조경 따위 할 공간도 없는 건가? 그렇다면 할 말은 없는데, 아니 그러면 더 할 말이 있다. 그게 그렇게 불만이면 지방에 살면 될 텐데 왜들 그렇게 서울에 못 살아 안달일까?



 그렇게들 서울에 그러니까 대도시에 못 살아 안달이니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은 모이는데 땅은 좁으니 아파트를 짓는 거 아닌가? 그런데 거기에 살면서 삭막하다고? 구조적인 환경에 발맞추듯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아파트에 살면서 그림 같은 전원주택을 꿈꾸는 모습은 뭔가 조금 모순적이지 않은가. 물론 그런 꿈을 꿀 수는 있는 일인데 지금 살고 있는 삶의 공간에 막연한 불평과 불만을 갖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바쁜 와중에도 경비아저씨들이 잘 관리해 주신 바로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 공동 화단에 있는 나무와 꽃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까지는 아니어도 아쉬움 정도를 달래는 게 보다 발전적이지 않을까.



 좁아터진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높게 올려 지어지면서 다소 삭막해 보일 순 있으나 그로 인해 얻어지는 편의성은 생각하지 않는 건가? 우리가 아파트에 잔뜩 몰려 살고 있으니 슬리퍼 대충 신고 나가도 되는 거리에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는 편의 시설 등이 위치한다는 건 왜 외면한단 말인가? 안 그래도 집값이 비싼 나라에서 지금의 다소 삭막하다고 하는 주거 형태인 아파트를 버리고 단층으로 가면 집이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건 나만의 걱정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집도 절도 없는 삭막한 상황이 되는 거 아닌가?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삭막하다면 과감하게 팔아치우고 지방으로 내려가면 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만한 땅이 차고도 넘친다. 물론 알고 있다. 그럴 수 없다는 거, 그게 쉽지 않다는 거.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그저 이 글을 쓰는 사람의 성정이 조금 꼬여서 그렇다. 그러니 식물이야기하다 이상하게 자기 화단도 아니면서 지 거라고 우기는 이야기를 하다 이렇게 까지 흘러 온 거다. 여하튼 요지要旨는 그거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어디든 주변을 둘러보면 화단으로 삼을만한 공간은 다 있다는 거다. 누가 관리를 해 주셨건 많은 사람이 보라고 예쁘게 꾸며 준 화단 열심히 보면 삭막한 공간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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