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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May 12. 2023

맨날 술이야 2

 친구와의 ‘으리’를 지키며 술 한 잔 거하게 하고 빠따도 신나게 맞았던 고3 생활은 돌아보면 나름 아름다웠던 시절이다. 이미 시간이 한 참 지났고 시대가 그랬다고 해서 고등학생이 술을 마시고 다닌 걸 정당화하기 위해 적당히 아름다웠던 추억이라고 덮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다. 지나고 나면 별 일 아니고 멀리서 보면 사람 사는 거 다 희극이니까...



 나름 기억에 나는 경험을 이야기했을 뿐이고 그 외에도 술은 참 많이 마신 거 같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기 직전에 집에 들어와 그야말로 술이 잔뜩 취한 모습을 엄마아빠한테 보인 적도 있다. 정말 그랬는지 사실 몽롱한 기억 한 편에 있는 하나의 장면인데 수능 보기 일주일 정도 전인 거 같은데 친구들과 술을 잔뜩 마시고 너무 취해서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여인숙에 방을 하나 얻어 거의 쓰러지듯이 잠든 적도 있는 거 같다.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 중에 현재 옆에 남아 있는 친구들은 없다. 더 충격적인 건 고등학생들이 여인숙에 투숙을 할 수 있었다니... 시내 주변에 있는 허름한 여인숙이었던 거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거 이거 완전 비행청소년처럼 보이는데, 적정선은 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지금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넘은 건가? 모르겠다.



 수능 보기 일주일 정도 전에도 술이 떡이 돼 여인숙에서 쓰러져 잤지만 시간은 흘렀고 시험은 봤고 대학생은 됐다. 원하는 학교의 과에 가지는 못했지만 4년제 대학 졸업장이나 따자는 마음으로 점수에 맞춰 아무 데나 갔다. 그러니 딱히 학교생활이 재미있을 리도 만무했다. 정확하게는 학과 수업이 재미가 없었다.



 이 지점을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초등학교 시절에 적성검사를 했는데 ‘사범대(이과)’라는 결과가 나왔다. 어린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단어였다. 선생님이나 엄마아빠한테 물어봤으면 될 일이었는데 그러지 않았던 거 같다. 궁금했다. 사범대는 뭐고 이과는 뭐지?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니 녹색 창에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전이라도 찾아봤어야 하는데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뜻이 뭔지도 몰랐는데 공교롭게 중학교 시절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소위 장래희망이 됐다.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장래희망은 선생님이었고 과목은 역사였다. 중학교 시절엔 공부를 내내 잘했고 고등학교 시절엔 고 2 때까지는 잘했기 때문에 목표했던 대학은 한국교원대였다. 하지만 결과는 뭐 술에 빠진 건지 뭐에 빠진 건지 모르게 공부를 안 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너무나도 명확한 결과로 성적은 떨어져서 한국교원대라는 목표는 저기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정말 웃긴 건 역사선생님이 꿈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이상하게 왜 그랬는지 ‘이과’를 선택했다. 이쯤 되면 초등시절에 진행한 적성검사의 적중률이 무서울 정도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결과적으로 사범대(이과)를 향해 달려갔으니 말이다. 초등시절의 적성검사 결과가 사범대(이과),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꼭 알고 있었던 것처럼 중학교 때부터 꿈이 선생님, 과목은 역사.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를 선택... 결과적으로 그 선택에 의해 성적이 나락을 달렸음에도 점수에 맞춰 공대를 가게 됐고 그 연결고리가 중간에 장시간 끊어지기도 했지만 지금 수학을 가르치는데 일조한 선택이 돼 버린 웃기지도 않고 어쩌면 무섭기도 한 그야말로 멀리서 보면 희극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여하튼 당시엔 마음에 맞지 않는 대학의 과를 선택해 가서 수업 자체는 관심이 그닥 없었고 친구들과 술이나 마시고 게임이나 하고 놀러 다니는 게 낙인 ‘먹고 대학생’이었다. 아이고, 부모님 이 불효자를 용서하소서. 등골 빼 가며 등록금 대셨을 텐데 아들이란 인간이 저 지랄로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그려...



 고등학생 때도 술을 마신 인간이 대학생 때 술을 안 마실 수가 없었다. 그건 직무유기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많이 마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김은숙 작가님 존경합니다.), 해가 밝고 맑아서, 볕이 뜨거워서, 비가 와서, 비는 안 오고 날이 꿀꿀해서, 머리를 잘라서, 내가 헤어져서, 친구가 헤어져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냥 술을 마셨다.



 실제로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친구들과 우르르 가는 도중에 한 놈이 ‘야, 나 오늘 머리 잘랐는데 그냥 집에 가야 되냐?’하기에 그럼 가자 마시러 돈은? 하고 되물으니 돈은 없지 하기에 포기하고 집에 갈 만도 한데 그럼 주머니에 있는 거 다 꺼내해서 모았더니 3만 원이 됐다. 지체하지 않고 바로 시장에 있는 순대 집에 갔다.



 ‘사장님, 소주 10병 하고 순대 만원 어치만 주세요. 그리고 소주 서비스로 한 두어 병 더 주시면 안 돼요?’ 얼척없는 대학생들 보소. 마음이 좋았던 사장님은 정말로 소주 2병을 서비스로 주셨다. 보통은 안주나 먹는 걸 서비스로 달라고 하는데 우린 뭐랄까 크라쓰가 달랐다. 그런 크라쓰에 놀라신 건지 감사하게 주신 소주 2병을 맛깔나게 마셔 버렸다. 아마 7명 정도 있었던 거 같은데 다해서 소주 12병을 30분도 채 안 돼 다 마셔 버린 거 같다. 인원대비 많은 양의 소주는 아니었지만 마셔 버린 시간이 빨라 두 명 정도는 마시고 바로 뻗어 버렸고 또 두 명 정도는 화장실에서 변기를 붙잡고 나오질 않았다. 그중에 여학생이 둘 정도 있었는데 다음 날 니들하고는 다시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단호한 다짐까지 받아 낸 술자리였다. 물론 나는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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