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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n 04. 2023

가족이라고 하면 조금 그런가?

 첫 직장이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다. 일차적으로 필요한 게 자차였다. 영업사원이면 주 업무라 할 수 있는 영업을 다녀야 되는데 버스를 타고 다닐 수는 없었다. 택시는 더더욱 탈 수 없었다. 아! 물론 만약에 지역이 서울이라면 자차 없이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시스템과 노선을 가지고 있는 지하철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청주, 영업을 다녀야 하는 지역도 청주를 기반으로 한 충청도 전역이었다.



 지금은 청주가 4개의 구로 나뉘어 있지만 당시엔 2개의 구 밖에 없었다. 청주도 서울처럼 도심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강은 아니고 천이 있다. 무심천. 무심천을 기준으로 한쪽은 상당구, 다른 한쪽은 흥덕구이던 시절이었다. 내가 맡은 지역은 상당구, 그러니까 청주 전 지역의 반을 맡았다. 마음먹고 버스를 타고 다닌다면 못할 일도 아니지만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성비가 상당히 떨어지는 짓이 될 게 뻔했다. 더 나아가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젊은 청년은 영업사원이라는 좋은 핑계를 빌미 삼아 차를 갖고 싶기도 했다.



 맡은 지역이 청주에서만 끝났다면 영업을 다니기 위해 차가 필요하다는 핑계의 약발이 조금은 부족할 수도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추가적으로 음성, 광혜원, 영동 그리고 경기도 이천의 장호원까지 맡게 되었다. 이거 뭐 차를 무조건 사야 되는 상황이었다. 생각이 없던 젊은 청년은 차가 생긴다는 생각으로 영업지역이 넓어 힘들 거라는 현실을 눌러 버렸다.



 여하튼 운전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 온 아빠와 함께 차를 사러 갔다. 조금 아쉬운 건 중고차를 사러 간 거였는데 괜찮았다. 짐작하듯이 첫 차니까 여기저기 긁어먹을 거 뻔하니까 몇 년 타고 버릴 생각으로 중고차를 보러 갔다. 삐까뻔쩍한 새 차면 더 좋았겠지만 이 정도는 양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고차 상태가 영 별로였다. 몇 군데를 돌았는데 적당히 타고 버릴 마음을 가지고 차를 보는데도 이건 아니다 싶은 차들만 보여 줬다. 딜러들이 차를 팔 생각이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빠도 아니다 싶었는지 됐다고 잠깐 있어 보라면서 어디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는 가자면서 현대자동차 매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어라? 일이 이렇게 굴러간다고! 나는 나쁠 게 없었다. 첫 차니까 부담 없이 중고차를 사려고 하는데도 이러네 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기꺼운 마음으로 차를 골랐다. 알고 보니 아빠 친구의 아들이 딜러로 있는 매장이었다.



 이미 중고차에서 새 차로 넘어왔기 때문에 사실 차종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큰 차를 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만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더욱이 영업을 다니기 위한 차인데 기름을 너무 먹어서도 안 됐다. 연비와 가격 등을 고려해 당시에 흔하지 않은 소형 디젤승용차를 샀다. 대학교 졸업식 직전에 영업사원으로 취업이 돼서 졸업식 전에 차를 가져올 수 있었다. 졸업식이 있는 날, 가는 길은 아빠가 차를 끌고 오는 길은 내가 끌었다. 영업을 위한 아주 보기 좋은 핑계로 차를 산거지만 사회생활 시작과 함께 자차라니! 졸업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운전하는 내내 흐뭇했다.



 차는 누가 샀냐고? 내가 샀다. 아빠는 취등록세 정도만 내주고 100% 할부로 돌려 내가 다 갚았다. 처음엔 5년 할부로 계약했는데 이자가 너무 많은 거 같아 3년으로 재계약을 했다. 열심히 갚았다. 아 하하하하하 그런데 제약회사 영업사원 일은 너무 힘들어 1년도 못하고 그만뒀다. 다행이라면 그다음 일도 자차가 필요한 일이라 차는 나름대로 잘 썼다.



 첫 차를 그렇게 10년 정도 탔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일을 많이도 바꿨다. 첫 차와 인연을 맺은 지 10년 정도 되는 해에 지금 하는 일을 시작했다. 10년이 됐지만 주행거리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 충분히 더 끌 수 있었다. 그런데 바꾸고 싶었다. 일단 10년이란 시간 동안 같은 차를 타는 게 조금 지겹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그즈음 결혼을 포기했었다.



 결혼을 포기한 이야기를 할라치면 또 한참 해야 돼서 그냥 그렇게 됐다 정도로 넘어가고  결혼을 포기하니 큰돈이 들어갈 일이 없었다. 살던 곳도 내 집은 아니지만 꽤 장기간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집이었다. 나중에 나이가 차면 엄마 정도는 모시고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럼 차나 바꾸지 뭐, 결혼을 포기한 상황과 마음을 달래기 위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크게 틀리진 않았다.



 첫 차는 소형차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액센트나 프라이드 정도의 차를 생각하면 된다. 순서(?)대로 올라가면 아반떼로 대표되는 준중형을 사면 되는데 결혼도 안 하는데 한 단계 건너뛰어도 문제없을 거 같았다. 그렇다면 소나타로 대표되는 중형차다. 더 올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자칫 카푸어가 될 수도 있었기에 참기로 했다.



 한 참을 골랐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차를 바꾸기로 마음먹는 그 순간부터 차 밖에 안 보인다는 것을. 사실 선택지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우선 지금은 조금 바뀌긴 했지만 난 세단을 좋아한다. 차고가 높은 SUV를 싫어한다. 바닥에 착 붙어 부드럽고 날렵하게 나아가는 세단이 좋다. 국산차 중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소나타, 말리부, 당시엔 없었지만 SM6가 거의 전부였다. 다 괜찮은 차들이지만 도로에 너무 많았다. 괜찮은 차니까 그렇겠지만 많아도 너무 많았다. 외제차로 눈을 돌려 돈을 더 들이면 선택의 폭은 조금 더 넓어지겠지만 부담스러웠다. 차는 산다고 끝이 아니라 유지가 진짜 시작인데 외제차는 아무래도 국산차보다 유지비용이 더 들어가는 게 사실이다.



 고민했다. 선택지가 몇 가지 없으니 더 고민이 됐다. 그러다 문득 앞에서 이야기한 첫 차를 사기도 한참 전 20대 초반에 난 나중에 귀여운 차를 한 번 끌어 봐야겠다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스파크나 모닝 그리고 레이 같은 경차도 귀엽지만 그런 귀여움 말고 조금 더 유니크한 귀여움을 원했다. 찾아보면 세상에 귀여운 차는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고 대중적이며 브랜드 가치가 있는 차는 몇 없었다.



 고민 끝에 그중에 하나를 사기로 했다. 가격은 소나타로 대표되는 중형차 가격을 조금 넘어섰다. 이럴 거면 그랜저로 대표되는 대형차를 사는 게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 귀여운 부분에 눈이 돌아갔고 결혼도 안 할 건데 나 혼자 즐겁게 귀여운 차를 끄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았다. 가격대비 많은 걸 포기하고 귀여운 부분 하나 보고 차를 선택했다.



 기대한 대로 혼자 즐겁게 잘 타고 다녔다. 안 그런 차가 어디 있겠냐만은 혼자 타고 다니기 정말 좋았다. 10년 정도 끌었던 첫 차를 보내는 마음이 조금 그랬지만 미안할 정도로 빠르게 두 번째 차로 마음이 옮겨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연애를 시작했다. 어? 아니지, 아니야. 연애한다고 다 결혼하는 거 아니니까 그래 두 명까지는 충분히 즐겁게 타고 다닐 수 있는 차니까 괜찮아. 오히려 귀여운 차가 연애의 맛을 더 배가시킨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한 부분이 문제라는 의미가 아니고 차를 선택할 때 결혼을 하지 않을 거기 때문에 동일한 가격대의 일반적인 차들이 주는 편의를 포기하고 귀여움을 선택한 건데 결혼을 해서 차 선택의 가장 주요한 전제조건이 없어지는 상황의 당황스러움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연애할 때나 결혼을 했을 때나 두 명인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억! 애가 생겼다.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분명히 뒷좌석이 있는 차지만 사람이 타기 쉽지 않은 차였다. 작은 아이 한 명이 뒤에 타는 건 문제가 안 됐는데 작은 아이라서 문제였다. 카시트를 설치해야 했고 아이를 보기 위해 아내가 뒤에 같이 타야 됐다. 문제였다. 카시트를 설치할 수 있고 아내가 같이 탈 수 있었지만 좁았다. 아이가 생기니 물건도 많아져 이동할 때 차에 실을 것도 많아졌는데 트렁크에 유모차 한 대 실으면 끝이었다. 장난감센터에서 조금 큰 장난감 하나 빌려 올라치면 카시트를 떼고 난리부르스를 춰야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잘 타고 다녔다. 좁았지만 잘 타고 다녔다. 뒤에 아이와 아내가 타려면 앞 좌석을 접어야 했지만 잘 타고 다녔다. 일을 하러 다닐 때는 여전히 혼자 차를 탔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추우면 추운 대로 나를 보호해 줬고 더우면 더운 대로 나를 시원하게 해 줬다. 가족을 제외하고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하는 녀석이기도 했다. 연애하던 시절부터 차에게 별명도 붙여 줬다. 그 순간부터 움직이는 기계가 아닌 삶을 함께 하는 동반자적 지위의 무언가가 됐다.



 피곤하면 잠을 잘 수 있는 침실이 되기도 했고 스트레스나 불만 등이 쌓이면 누구랄 것도 없는 대상에게 마음껏 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돼 주기도 했다. 음악을 듣는 콘서트홀이기도 했고 노래를 부르는 노래방이기도 했다. 참고로 간간히 클래식을 듣는데 클래식을 듣게 된 계기가 차에서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의 클래식 채널을 듣고부터다. 일을 준비하는 사무실이 돼 기도 하고 급하면 한 끼 밥을 먹을 수 있는 나만의 1인 식당이 돼 주기도 했다.



 장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달려 주고 나면 나도 모르게 대시보드에 손을 올리고 고마움을 표현한다. 고생했다고... 일을 마치고 주차를 하고 문이 잠겼는지 확인하면서 늘 엄지를 치켜세우며 네가 최고다, 네 덕에 먹고 산다를 하루를 마무리하는 주문처럼 외우고 돌아선다. 한 가지 아쉽고 미안한 건 세차를 정말 드럽게 안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나 고마운 존재인데 세차를 안 해도 너무 안 한다는 사실이 많이 미안하다. 조금만 관리해 주면 참 귀여운 차인데... 할 말이 없다.



 나중에 아이가 더 크면 바꾸긴 해야 될 텐데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 첫 차를 보낼 때도 마음이 허했는데 지금 차는 더 할 거 같다. 삶의 한 부분을 포기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포기한 부분이 아무렇지 않게 삶으로 들어왔고 그 부분을 묵묵히 같이 받아들여 준 녀석이라 그런지 나중에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보내겠지? 인간은 간사하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고 지금은 고마운 마음으로 잘 끌어야겠다. 최대한 오래...



고맙다, 비트라. 네 덕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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