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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n 24. 2023

인형과 함께 자는 남자,
그것도 40대 남자가...

 이 무슨 변태 같고 오타쿠 같은 이야기란 말인가? 아! 그전에 40대 남자가 인형과 함께 잔다고 해서 변태라거나 오타쿠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음을 밝힌다. 다만 일반적이지 않음을 조금은 자극적인 단어를 이용해 표현했음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쁜 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여하튼 난 인형과 함께 잔다. 그것도 보자... 4개? 4마리? 단위를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또 실제로 세어 보니 그렇게 많은 인형과 자는 것도 아닌 거 같다. 간혹 가다 한 두 마리가(집에 있는 인형이 대부분 동물인형이고 약간의 애정이 있다 보니 실제 동물은 아니지만 동물인 것처럼 ‘마리’라는 단위를 붙이는 게 조금 더 어울릴 듯하다.) 더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4마리와 함께 잔다.



 그렇다면 40대 남자가 왜 인형과 함께 자게 됐을까? 우선 그전에 인형 하나하나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1. 무무(인형의 이름이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아내에게 선물로 사 준 인형이다. 왜 연애할 때 한 두 번은 사주는 큰 인형 있지 않은가. 딱 그런 인형 선물이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는데 어느 날 무슨 기념일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서프라이즈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름 몰래 준비를 해서 짜란~ 하고 선물해 준 인형인데 바로 ‘무민’이었다. 그렇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무민이다. 핀란드에서 탄생한 캐릭터인데 생긴 건 곰인지 하마인지 잘 모르겠는 하얀색의 역시 동물인지 외계인인지 애매한 그런 캐릭터다. 놀랍게도 곰도, 하마도, 외계인도 아닌 트롤이라고 한다. 아마도 중세판타지의 그 험악하고 무식하고 힘만 센 엄청난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 트롤이 맞을 거다. 알아보니 초기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괴물로서의 트롤의 이미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고 하는데 점점 귀여운 캐릭터로 변모했다고 한다. 여하튼 그 무민이다. 결혼을 하면서 아내 집에 있던 녀석이 신혼집으로 오게 됐고 같이 살게 됐다. 처음엔 그저 집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그야말로 인형이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점점 아이의 친구가 된 녀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민이 아이보다 더 컸는데 이제 어느 정도 비슷해졌다. 그럼에도 무민은 딸아이의 보디가드이며 레슬링 상대 선수다. 이름이 무무인 이유는 아내와 나는 아이에게 무민이라고 가르쳐 줬는데 아직 말이 서툴 때 가르쳐 줘서 그런지 아이는 그걸 무무로 알아들었던 거 같다. 지금은 말이 늘어 무민 정도의 단어를 무무로 알아들을 일은 없지만 딱히 고쳐 주거나 그럴 필요는 느끼지 못해 아내도 나도 아이가 처음에 잘못 알아들은 표현인 무무를 이름으로 쓰고 있다. 든든한 녀석이다.     



2. 큰 라이

그렇게 크지 않은 바디 필로우 형태의 ‘라이언’ 인형이다. 이 인형 역시 연애시절에 아내에게 사 준 선물이다. 내가 라이언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내 생각하면서 끌어안고 자라는 오글거리는 연애시절에만 할 수 있는 생각과 멘트로 해 준 선물이었다. 역시 결혼하면서 신혼집으로 같이 온 녀석인데 바디 필로우답게 소파나 침대에서 같이 생활했던 거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아이가 몸을 삐대는 언덕이 돼 주고 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된다는 속담이 생각날 정도로 아이는 잘 삐대고 있다. 때론 과해서 발로 아주 짓이긴다. 필로우 재질 특성상 삐대기 좋은 걸 아이도 아는 거 같다. 이 녀석 역시 아이가 말이 서툴 때 라이언이라고 가르쳐 줬는데 아이는 당시에 3음절을 따라 하기 어려웠는지 자기 마음대로 마지막 음절은 잘라 버리고 라이까지만 부르는 과감성을 보여 줬다. 당연히 아내와 나도 그냥 라이라고 부른다. 큰 라이인 이유는 뒤에 소개될 녀석이 작은 라이이기 때문이다.     



3. 작은 라이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내가 라이언을 상당히 좋아한다. 같이 일하던 사무실 사람이 인형 뽑기에 한창 빠져 인형을 상당히 많이 모았었는데 그만두면서 선물로 주고 간 녀석이다. 생각지도 않게 받은 녀석이라 결혼 전에 받은 건지 후에 받은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좋아하는 라이언이기에 역시 같이 살게 됐다. 아이가 큰 라이를 삐대기 좋은 대상으로 삼았다면 작은 라이는 가끔 애착인형처럼 끌어안고 다니는 녀석이다. 라이언이란 이름을 처음 가르쳐 줄 때 3음절을 따라 하기 힘들어 라이라고만 불렀는데 이 녀석은 앞에 이야기한 녀석과 비교하기 위해 작은 라이로 가르쳐 줬는지 아이가 알아서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렇지 않게 4음절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유는 두 라이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는 시점에 이미 아이는 3~4음절 정도의 단어는 아무렇지 않게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컸기 때문이다.     



4. 판다 공

이름 그대로 공이다. 판다 얼굴 모양의 공이다. 아마 안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 좋은 소위 탱탱볼인 거 같다.(탱탱볼이 요즘에도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잘 튀는 가벼운 고무공의 제품명이다.) 겉을 판다 얼굴 모양으로 인형처럼 감싼 공인데 친동생의 딸들, 그러니까 조카들이 그들에겐 사촌인 딸아이가 귀엽다고 준 선물 아닌 선물이다. 판다 얼굴을 하고 있지만 공의 원래 기능에 충실하게 아이와 가끔 주고받고 던지고 발로 차면서 가지고 노는 대상이다. 판다 얼굴을 하고 있어 나는 가끔 미안한데 그런 디테일을 아직은 구분할 생각이 없는 천진난만한 딸은 신나게 잘 차고 논다.



 이렇게 4마리가 나와 늘 함께 자는 녀석들이다. 언제부터 함께 자게 됐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아무래도 엄마와 함께 자는 게 여러모로 더 좋았기 때문에 아이가 없었을 때 나와 아내만의 침실은 아내와 아이의 차지가 됐고 난 다른 방 중에 옷 방을 선택해 전기장판을 깔고 잔 지 꽤 됐다. 일을 나가기 전 주로 옷 방에서 자기도 하고 쉬기도 하다 보니 아이가 아빠랑 놀겠다고 옷 방으로 올 때 인형들도 같이 딸려 오는 경우가 많았다. 딸려 온 인형을 아이가 다시 치울 생각은 잘 못 하게 되다 보니 돌아보면 어느새 인형들이 옷 방 여기저기를 뒹굴게 됐다. 처음엔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 놓았는데 언제부턴가 귀찮아서 그냥 옷 방에 두게 됐고 급기야 같이 자는 녀석들이 됐다. 이제는 그 녀석들이 잠자리 주변을 뱅 둘러 주면 오히려 포근함 마저 느낄 정도라 자기 전에 인사까지 하고 잔다. 아이랑 잘 놀아 줘서 고맙다고...


 다음은 가끔 옷 방에 오는 녀석들인데 사실 아이 입장에선 더 중요한 녀석들을 소개하겠다. 어느 정도로 중요한 녀석들이냐면 아내와 아이가 함께 자는 침대에서 늘 같이 자는 녀석들이다.      



5. 뚜이

아이의 애착인형이다. 아이의 찐친이다. 늘 함께 하는 녀석이다. 아이가 조금씩 커 가는 모습을 보며 여느 부모들이 그런 것처럼 애착인형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심사숙고 한 끝에 고른 녀석이다. 최종 후보가 귀여운 토끼와 생쥐 인형이었다. 토끼는 이유를 막론하고 전통적으로 귀여움으론 거의 1 티어에 해당하는 녀석이라 후보에 올랐고 못지않게 귀여웠던 생쥐는 아이가 쥐띠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귀여움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토끼로 할 것이냐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해 생쥐로 할 것이냐 고민 끝에 생쥐로 선택을 했고 결과적으로 꽤 괜찮은 선택이 됐다. 이유를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뚜이라는 이름은 내가 지어 준 이름이다. 생쥐 인형인데 뚜이라... 전혀 매치가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가 쥐띠, 인형도 생쥐. 생쥐 하면 떠오르는 애니메이션 영화, 바로 ‘라따뚜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아이는 라따, 인형은 뚜이. 둘이 합체해서 라따뚜이가 된다. 둘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관계다.     



6. 달이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인이 선물해 준 역시 애착인형이다. 애착인형이라 함은 아이들이 물고 빠는 대상이기 때문에 보통은 유기농 면으로 만들어진 녀석들을 고르게 되는데 지인도 그 부분을 신경 썼는지 누가 봐도 유기농 면으로 만든 것 같은 꽤 괜찮은 인형을 선물해 줬다. 다만 아쉬운 건 재질이 조금 거칠어 아이가 실제로 물고 빨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 와중에 아내와 내가 사 준 뚜이(역시 유기농 면 재질의 인형이다.)가 확고한 애착인형의 위치를 차지했기에 달이는 그저 침대를 지키는 역할에 집중하게 됐다. 기린 인형인데 몸에 동그라미 모양이 있어 문득 하늘의 달이 생각났고 아이 이름과도 연결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 싶어 ‘달이’라고 이름 지어 줬다. 보통은 늘 침대 위에 있는 녀석이다.


 몇몇 녀석들이 더 있는데 아이가 주로 노는 녀석들만 소개했다. 아이가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아 엄마, 아빠를 제외한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다. 움직이거나 살아 있지는 않지만 어린아이답게 그 부분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 거 같지는 않다. 밖에 놀러 나갔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면 집에 다 왔다고 외치면서 ‘집에 뚜이랑, 무무랑, 라이랑, 판다랑, 달이랑 기다리고 있지.’라고 이야기해 주는 거 보면 아이에겐 상당히 소중한 친구들이 확실한 거 같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 엄마, 아빠(실제로는 아빠의 욕심이 더 크다.)의 욕심으로 어린이집 가는 시기를 늦추다 보니 인형들이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거 같아 다소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하다. 다만 착각하는 게 아니라면 아이가 인형들과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상당히 즐거워 보이기에 애써 괜찮다고 합리화 아닌 합리화를 하며 인형들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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