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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l 05. 2023

글맛집, 그로로

 https://groro.co.kr/story/4125


 ‘적극적인 일기’

 

 요즘 내가 잘 쓰는 표현이다. 글을 쓰겠다고 시작한 이후로 나름 꾸준히 써 온 시간이 근 3년이 다 돼 간다. 처음엔 포부가 당당해 얼마 간 쓰면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쓰는 게 글이 맞나? 물론 글이 아닌 건 아니다. 하지만 읽어 주는 대중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글은 아닌 거 같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 낸 단어가 바로 적극적인 일기다. 일기도 분명 글이 맞긴 한데 그렇다고 모든 일기가 다 글로서 의미를 갖고 팔리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글은 팔리는, 대중들이 돈을 기꺼이 주고 사서 볼 수 있는 그런 글을 의미하는 건데 지금 내 글은 팔릴 거 같지가 않아서 감히 글이라고 할 수 없는 마음을 대변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써 온 여러 글에서 글을 왜 쓰고 있는지 얼마 간 쓰고 있는지 등에 대한 이력을 자주 소개했다. 한 이야기를 또 하는 격인데 지금 쓰고 있는 글을 읽어 주는 감사한 분들에게 내가 이러쿵저러쿵 써 놨으니 찾아보세요 하고 그나마 얼마 있지도 않은 양심을 차 버릴 수 없어 다시 한번 간단하게 소개하려 한다.



 2020년 여름 코로나로 한창 전 세계가 난리일 때 일이 하기 싫어졌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현실이 뒤통수를 후려갈길 것이 뻔하기 때문에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답답한 마음은 달랠 길을 찾아야 했다.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 눈독을 들인 건 유튜브였다. 시작이 우선이라고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것들만 유튜브를 통해 배워 바로 시작했다. 그야말로 처음 한 달간 가열 차게 같지도 않은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결과는 눈앞에 드리워지는 현타라는 장막을 보는 거였다.



 하던 일에서 슬럼프로 헤매다 해결하기 위해 찾은 길이 유튜브였는데 다시 헤매기 시작했다. 영상을 만들다 보면 안 그런 사람들도 있는데 보통은 대본을 만들게 된다. 대본은 어쩔 수 없이 글의 형태로 쓸 수밖에 없다. 문득, 어! 대본 쓰는 건 어렵지 않은데 어떻게 찍을지 영상 편집을 어떻게 할지가 어려운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본만 쓰는 건 그러니까 글을 써 보는 건 어떨까? 뭐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거 같다.



 처음엔 아주 쉽게 생각했다. 말을 조금 잘하는 편이다. 그 말은 생각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말로 떠들던 걸 글로 옮겨 적으면 되겠네 하는 행복회로가 돌았다. 그렇게 아주 쉽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내 글엔 구어체가 상당히 강하게 남아 있다. 처음엔 문어체로 변환하려고 나름 애도 썼는데 지금은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는 자세로 막 쓰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처음 다짐은 내용이 뭐가 됐든 매일 한글문서 기준 한 페이지를 채워 쓰기로 했고 한 달 정도 그렇게 했다. 한 달만 그렇게 했다. 작심삼일이라는 건 지켜야 되는 명제인 것처럼 한 달도 오래 간 게 아니냐는 자기 합리화로 펜을 타자 치는 손을 내려놓았다. 이렇게 또 한 번의 바람은 그야말로 설풋 스쳐가는 가을바람처럼 사그라드는 줄 알았다.



 다음 해 봄에 기회가 닿아서 시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을 참여하게 됐다. 귓가에 스쳐가는 바람인 줄 알았던 글쓰기를 다시 잡아채는 순간이었다. 대체적으로 나보다 연세가 많은 분들과 매주 한 꼭지의 글을 써 오고 서로 합평하는 형식으로 근 1년을 진행했다. 원하면 시의 지원 아래 출간도 할 수 있었는데 써 놓은 글들이 영 내키지 않아 그냥 말았다.



 그 와중 5월경에 우연한 기회에 글쓰기 플랫폼의 대표주자인 ‘브런치’를 알게 됐고 지원을 했다. 일정 심사과정을 거쳐 한 번에 브런치작가가 됐고 신나게 글을 써 올렸다. 머리로는 아마추어 작가도 안 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브런치작가라고 불리는 게 내심 싫지 않았던 듯하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매일 한 페이지의 글을 쓰자는 다짐을 업그레이드해 매일 한 꼭지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로 다짐했고 처음과 달리 3개월 정도 매일 글을 올렸다.



 하지만 내재된 작심삼일의 DNA는 강력해 브런치 활동마저 뜸해지고 흐지부지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이미 그때부터 내가 쓰는 게 글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그냥 조금 긴 일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점점 머리를 잠식해 갔다. 다만 글을 쓴 지 1년이 다 돼 가는 시점이었고 그냥 손을 놓아 버리기에는 다소 아쉬워 짧은 한 줄의 일기도 글도 뭐도 아닌 걸 조금씩 써 올리고 있었다. 글태기라면 글태기, 매너리즘이라면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을 나름 운명처럼 만난 것처럼 브런치에서 일부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 모집 글을 봤다. 당시에 뭔가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글을 쓸 수 없을 거 같았다. 모집기간 막바지에 인원이 다 찼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지원했는데 다행히 함께 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1년이란 시간을 그들과 함께 글을 쓰며 웃고 있다.



 그때 함께 했던 한 분이 지나가는 말로 여기도 브런치처럼 글 써서 올릴 수 있는 곳인데 무슨 홍보를 하는 건지 글 하나만 써 올리면 커피쿠폰 준 대요 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좌우 살필 겨를도 없이 커피쿠폰에 눈이 멀어 글을 써 올렸는데 그게 바로 그로로와의 첫 만남이었다. 첫인상은 별로였다. 브런치에 비해 글을 쓰는 에디터도 영 엉성하고 별로였다. 그런데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차피 커피쿠폰 하나 받고 빠질 심산이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뒤에 커피쿠폰을 받고 여하튼 내 글을 올린 공간이니 어떤 곳인가 싶어 둘러보다 어라! 싶은 지점을 발견하게 됐다. 당시에 브런치에 글을 써 올린 지 1년 4개월이 다 돼 가던 시점이었는데 집안 어른들이 돈 문제로 싸우면 흔히 하는 ‘내가, 응! 이 집구석에서 1원 한 장 받은 적이 없어! 이거 왜 이래!’라는 표현 그대로 브런치로부터 1원 한 장 받아 본 적이 없는데 여기는 뭐 하는 곳인지 인기 글이 되면 만원, 그로로 에디터가 픽하면 몇 만 원, 이 달의 메이커(작가)가 되면 또 몇십만 원을 준다는 게 아닌가?



 여기 뭐지? 싶었다. 돈을 준다고? 나한테, 작가도 뭐도 아닌 나부랭이한테! 물론 내 걸은 몇 개의 타이틀을 얻어야 돈을 받는 거긴 하지만 여하튼 준다지 않는가. 그래서 글을 신나게 올렸고 정말로 돈을 받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넘은 시점에 내가 쓴 글로 처음 돈을 받아 보는 순간이었다. 기쁘기보다는 다소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맞는 건가. 왜 나한테 돈을 주지? 다만 몇 만 원이지만 내 글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바라마지 않은 일이었는데 실제 일어나니 조만간 깨어 날 꿈만 같았다.



 그럼에도 글 쓰는 메인 플랫폼은 브런치였다. 그로로는 어디까지나 브런치에 올린 글을 복사해서 올리는 정도의 위치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무한증식하는(그런데 정말 무한증식하나?) 아메바처럼 브런치에 쓴 글을 그로로를 비롯해 요즘 폭증하고 있는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에 복사 붙이기를 통해 올리고 있다.



 돈 한 푼 안 준 브런치가 메인일 수 있었던 이유는 돈을 안 줬기 때문이다. 돈을 안 주니 정말 순수한 글쓰기 환경이 구축됐고 광고나 여타 지저분한 것들이 들러붙지 않아 고고한 학처럼 글만 쓸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에 반해 그로로는 엄청난 돈은 아니지만 다만 몇 만 원이라도 들어오는 나름의 캐시카우(이 단어를 쓰기엔 너무 적은 돈이지만 여하튼...) 같은 역할을 맡아 준 곳이었다.



 그렇다면 그로로는 광고나 지저분한 것들이 들러붙느냐? 신기하게 또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뭐 이리 풀을 키우는 글들이 많아? 아니 이거 뭐 나 빼고 죄다 풀 키우는 사람들이 글 쓰는 공간이잖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다시 의문에 휩싸였다. 그런데 왜 나한테 돈을 주지? 난 풀을 키우지도 관련 글을 쓰지도 않는데... 여긴 뭐 돈이 썩어 남아도나 싶었다.



 그렇게 브런치에 우선적으로 글을 써 올리고 그 글을 복사해 그로로 및 다른 플랫폼에 올리는 일상을 계속 보냈다. 그 과정 속에 그로로가 약간의 개편을 거치게 됐는데 그 일련의 과정으로 그로로에 관심이 조금 더 쏠리게 됐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로로에서 진행하는 소소한 이벤트도 간간히 참여하면서 상품도(스탠머그컵, 네이버페이 정도였다.) 받았지만 역시 메인은 브런치였다.



 동시에 그로로에 약간의 불만도 생겼다. 전에 그로로의 정체성에 대해 나름 생각해 본 부분을 글로 써 올린 적도 있지만 풀을 키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확장된 건 알겠는데 확장을 했으면 풀을 키우지 않는 그러니까 풀 키우는 글 이외에 다른 글을 쓰는 사람도 조금 더 챙겨줘야 되지 않는 건가? 물론 플랫폼의 방향성을 풀 키우는 경험을 글로 공유하자 하고 잡은 게 맞다면 그야말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이 떠날 순 없는 노릇이니 내가 그로로에 글을 안 올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돈을 몇 만 원이라도 손에 쥐어 주니 선뜻 떠날 수도 없었다.



 그때 마침, 잠잠하던 이벤트 소식 하나가 떴다. 그 이름도 유명한 ‘그로로팟’ 이벤트였다. 어! 신청해서 되면 씨앗을 보내 줄 테니 풀로 키워 보라고? 그리고 그 과정을 글로 써 보라고, 그러면 이것도 주고 저것도 준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단비가 내리는 느낌이었다. 풀을 키우지 않아 그로로에 써서 올릴만한 글이 마땅치 않았는데 그런 기회를 주겠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상품도 괜찮았다. 받고 싶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로로팟이 진행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또 다른 이벤트가 하나 더 진행됐다. 풀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아는 식물을 키우는 전자제품이 상품으로 걸린 이벤트였다. 오호라! 이거 이거 그로로가 뭔가 다짐을 했나. 그로로에 풀인 듯 풀이 아닌 듯 이끼처럼 서식한 게 근 9개월 정도가 되는 시점이었는데 그간 가장 큰 두 개의 이벤트였고 무엇보다도 풀을 키울 수 있는 키트까지 준다고 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감사하게도 그로로팟 대상자가 돼 키트를 받아 열심히 키우고 그야말로 그로로에 어울리는 풀 키우는 글을 써 올리고 또 다른 이벤트 상품을 받기 위해 그로로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상주常住라는 단어가 적절할 정도로 매일 매 시간 들락거렸다. 얼마 전까지는 브런치에 쓴 글을 복사 붙이기로 올리고 나면 들락거릴 일이 없는 공간이었는데 풀을 처음 키워 보니 정보나 조언도 얻어야 했고 동시에 진행하는 이벤트도 참여해야 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게 됐다.



 지금은 브런치가 메인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들락거리는 횟수, 머무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그로로가 메인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 됐다. 문득, 아! 이게 그로로의 정체성인가 싶었다. 풀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키우길 바라는 마음, 풀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져 전통적인 텃밭관리든 플랜테리어든 뭐든 식집사들이 행복해지는 환경조성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절대 직접적인 홍보를 하진 않았지만 자사의 식물 키우는 전자제품이 잘 팔렸으면 하는 마음!



 특히 마지막이 웃긴 게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전에 그로로의 정체성과 관련한 글을 쓸 때는 과연 이 회사가 식물 키우는 제품을 팔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걸까 싶었는데 지금은 나도 모르게 그 제품을 가져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거였다. 누가 등 떠민 게 아닌 자발적인 마음이라는 게 더 무섭다. 물론 의도한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풀 키워 보라는 이벤트를 이용해 등을 떠민 격일 수도 있지만 그런 우회적인 정성이라면 적당히 낚여 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글을 써 올리는 가상의 인터넷 공간인 그로로가 여느 가게와 같은 현실에 존재하는 입체적인 공간이라면 지금 내가 가장 많이 들르는 가게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그로로다. 그야말로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다. 그로로씨! 나 당신 단골이야~ 풀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 풀을 키우고 풀 키우는 제품도 한 번 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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