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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l 25. 2023

성욕설(性欲說)

 https://m.oheadline.com/articles/J8MfBy1R7cKe6JNU381YWQ==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이 있고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이 있다. 철학이니 윤리니 사상이니 하는 복잡하고 어려우며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본 문제일 것이다. 간단하다. 인간이 나기를 선善하게 혹은 악惡하게 태어났는가 하는 물음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다.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굳이 선택해 보라면 난 성악설에 조금 더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인간이 나기를 선하게 태어났다면 근본적으로 모두가 선할 텐데 왜 선한 행위나 사람이 이슈가 되고 뉴스거리가 될까? 선함이 기본 옵션이라면 선한 행위나 사람은 공기 속에 존재하는 산소와도 같은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만큼 흔해 빠진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행위나 사람이 보이면 무슨 대단한 일인 양 뭐랄까 세상에 다시없을 무언가를 본 듯한 느낌으로 소위 물고 빨고 찬양해 마지않는다.



 그럼 바로 타인의 물건을 훔치거나 피해를 입히거나 심하면 죽이는 일도 이슈 혹은 뉴스가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다시 묻겠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는 건 우린 기본적으로 악하게 태어났다는 건데 그럼 우리가 종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근본적으로 악하디 악한 우린 서로의 것을 탐하다 못해 죽이고 난리 브루스를 치다 멸종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다시 반문할 것이다. 아니, 선택하라면 성악설을 선택할 거라면서 뭐야, 성악설도 부인하잖아? 굳이 선택하라면 성악설을 선택한다고 했지, 성악설이 맞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악설을 조금 더 믿는(?) 이유는 몇 천 년에 걸친 인간의 역사 속에서 교육과 철학 그리고 종교 등으로 가르치고 설파하고 믿으라고 강요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아직 서로의 것을 탐하고 죽이고 전쟁도 불사한다. 다들 알고 있듯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이 아니다. 중국-대만도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도 있다. 70여 년 전 2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다시는 없을 것 같았지만 전쟁은 현재 그리고 미래 진행형이다.



 정리해 보자면 선하지 않으니까 선한 행위나 사람을 보통 일이 아닌 것처럼 여기고 아무래도 악하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하지 좀 말라고, 말 좀 들으라고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을 시켜도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상황을 놓고 볼 때 성악설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게 맞지 않나 하는 뇌피셜을 확신도 없으면서 뇌까린 것뿐이다.



 그럼 뭐지? 맹자나 순자 같이 배운 사람은 아니어서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사실 어떻게 태어난 거지 하는 문제는 누구나 나름의 관점과 가치관으로 정리해 볼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못 배운 한계 따위 고려하지 않고 생각해 본 결과, 인간은 욕欲이 드글드글한 상태로 태어난 거 같다.



 욕심, 욕구, 욕망...

나름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다. 지구에 인간이 80억 명 정도라고 하는데 80억 개의 빵이 있다고 하자. 80억 명에 80억 개의 빵이 있으니 사이좋게고 나발이고 간에 그냥 하나씩 먹으면 된다. 이렇게나 간단한 문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과연 그럴까? 아마도 거의 확실히 분명히 명명백백히 대다수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인간들이 자기 빵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옆에 놈의 빵을 완력으로 빼앗거나 몰래 훔치려 들 것이다. 그게 마음 같이 안 되면 싸우거나 때리거나 살인도 저지를 것이다. 패거리를 이루다 못해 전쟁을 벌이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일 것이다. 이 지점을 악한 본성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또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는 건 아니니까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욕欲이다. 선하고 악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가지려고 하는 마음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욕’ 자의 뜻은 ‘하고자 함’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은 행위를 통해 무언 갈 가지려고 하는 마음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그런 마음이 상대적으로 작으면 선해 보인다고 그 마음이 크다 못해 넘치면 악해 보인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생명체로써 가장 근본적인 행위와 마음은 살아 내고자 하는 마음일 텐데 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욕欲과 기본적으로 다름이 없음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모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선善이나 악惡이 아닌 욕欲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https://groro.co.kr/story/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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