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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Aug 04. 2023

백수는 여름이 불안했다.

 https://groro.co.kr/story/4709



 2011년 1월 백수가 됐다. 30대 초반의 일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백수가 됐다. 그보다는 계속 일을 해오다 백수가 된 부분이 살짝 당황스러웠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수능을 보고 성적을 기다리면서 알바를 시작했다. 대학교에 가서도 알바를 계속 했다. 중간 중간 알바를 쉬는 시기도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알바를 했다. 군대를 가기 위해 휴학을 했을 때도 알바를 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반년 정도 놀고 복학하기 전까지 역시 알바를 했다. 복학을 하고 학교를 다니면서 알바를 했다. 역시 중간에 쉬는 시기도 있었지만 주로 알바를 했다. 4학년이었던 해 12월 까지 알바를 하다 그만 뒀다.



 그만 둔 이유는 취업이 됐기 때문이다. 졸업은 다음 해 2월이었지만 취업이 됐다. 일을 하는 도중에 졸업식에 참석했다. 그렇게 첫 직장에서 졸업식을 맞이하고 몇 개월 더 일을 하다 힘들어 그만뒀다. 쉼 없이 바로 이어 다음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 직장에 비해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했다. 그리고 그만 두고 백수가 됐다.



 기존 우리 한국 나이로 33살의 나이에 만으로 계산하면 31살의 나이에 그렇게 백수가 됐다. 일단 후련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부터 32살 까지 일을 했다. 쉰 적이 없다. 뭐 대단하게 돈을 번 것도 아닌데 쉬질 않았다. 그야말로 생계유지였나 보다. 그래서 그런 건지 후련했다. 남들은 자리를 잡아 가고 결혼을 하는 시기에 혼자 백수가 됐다. 걱정이 될 법도 한데 그냥 그랬다. 아니 걱정이 됐는데 뭐랄까 막연하면서 대책도 없이 후련했다. 그간 너무 일을 해 온 부분에 대한 보상심리 같기도 했다.



 여하튼 당장은 걱정이 없었다. 걱정이 없었기 보다는 일단 외면하고 무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외면하고 무시하는 방법으로 게임방에 출퇴근을 했다. 게임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백수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 날 필요도 없고 혼자 살고 있었으니 일어나라고 잔소리를 하거나 따뜻하게 깨워 주는 사람도 없었다. 외롭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그냥 그랬다는 거다.



 정확히는 편했다. 예전에 배철수 아저씨가 그랬는데 알람 없이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그때가 그랬다. 그럼에도 그렇게 늦게 일어나진 않았다. 일을 하던 가락이 있어서 그런 건지 사람 습관이 무서운 건지 10시 정도면 일어났다. 꼼지락 꼼지락 거리며 손으로 발로 리모콘을 찾아 TV를 켜면서 일어났다. 조금 더 누워 있다 씻고 나갔다.



 게임방으로 출근이다. 게임방에 12시나 1시 정도에 도착했다. 자리를 잡고 게임을 시작했다. 일어나 게임방에 출근할 때까지 특별히 먹은 게 없기 때문에 슬슬 배가 고파진다. 게임방 인근에 빵집이 있다. 잠깐 나가 빵을 사 온다. 달달한 거 한 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식빵 한 개 정도 사 들고 들어 왔다. 빵을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게임속의 전투에 몰입했다. 게임 속에선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기 때문에 쉴 틈 없이 전투를 치러야 했다. 빵은 세상을 구하는 전투를 치루기 위한 그야말로 전투식량이다.



 몇 시간 그렇게 빵을 씹어 먹으며 몬스터, 악마, 악당을 때려잡다 보면 본격적으로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다. 세상을 구하는 것도 식후경이다. 대충 빵으로 때울 만한 상황이 아니다. 다시 밖으로 나가 이번엔 밥을 사 먹는다. 근처 식당에서 백반을 파는데 괜찮았다. 쌀밥과 보리밥을 섞어서 공기가 아니라 사발에 주고 대 여섯 가지 반찬과 항상 고등어조림이 나오는 식당이었다. 가격도 저렴했다. 기억에 의하면 그렇게 한 상에 4천 원이었다. 밥은 더 달라고 하면 더 줬다. 당연히 반찬도 더 줬다. 고등어조림은 메인이라 더 주지 않았던 거 같은데 기본으로 나오는 양으로도 충분했다.



 한껏 밥을 먹고 다시 게임방으로 올라갔다. 세상을 구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어느덧 게임방에 온지 7~8시간 정도가 지났다. 카운터에 가서 정액 요금으로 돌린다. 정액 요금은 한 시간에 천원 정도하는 금액을 10시간을 한 번에 계산하면 조금 싸게 해주는 게임방의 일반적인 계산 방법이다. 원래 정액 요금은 선불로 내는 게 원칙인데 평일에 출퇴근하는 백수는 게임을 하다 정액 요금으로 돌려도 사장님이 적당히 이해해 준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10시간을 다 채워 게임을 하고도 부족해 조금 더 하다 시계를 보면 밤 12시 혹은 새벽 1시 정도다. 이만큼 세상을 구했으면 오늘 할 일은 다 했다 하는 뿌듯한 마음으로 추가금액을 계산하고 나온다. 공기가 맑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때려잡은 놈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기가 맑은 느낌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집으로 퇴근을 했다.



 하루 종일 내가 직접 때려잡았다면 집에 들어와선 이제 영화 보는 걸 통해 누군가가 대신 때려잡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했다. 가끔 맥주도 한 두병 사 들고 들어갔다. 크~~~ 정말 행복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당시에 결혼을 하고 애를 키우고 하는 친구들이 봤으면 여럿 부러워 죽어 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살았다. 백수로, 게임 속에서 세상을 구하는 영웅으로...



 6개월을 그렇게 살았다. 여름이 됐다. 드디어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백수와 게임 속 세상 그리고 현실 인식과 여름, 전혀 관계가 없는 단어들이지만 백수가 된지 6개월 만에 여름이 시작되는 시점에 게임 속 세상에서 아니 현실을 외면하고 무시했던 마음속에서 밖으로 나왔다. 하필이면 여름에 나왔다. 날도 덥고 짜증나는 계절에 그보다 더 짜증나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 이런 짜증나는 상황에 짜증이 났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다시 짜증이 난다.



 다시 살아야 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뜨거운 여름만큼 뜨거운 마음과 몸짓으로 다시 일을 찾았다. 무시하고 외면했던 마음과 현실이 불안으로 다가 왔다. 불안을 잠재워야 했다. 게임으로 잠재워 지면 좋았겠지만 한 번 인식 된 현실의 불안이란 괴물은 게임 속에서 세상을 구하던 영웅 따위로 때려잡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뭐도 없던 현실의 백수인 내가 맞서야 했다.



 그해 여름 백수였던 나는 그렇게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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