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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Aug 12. 2023

뜨거운 여름엔 뜨거운 커피

 

https://groro.co.kr/story/4867



 우린 꿈이 있다. 잘 때 꾸는 개꿈 말고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의 장래희망인 꿈이 있다. 나이 40이 넘어도 철이 드는 일은 요원해 보여 장래희망은 아직 유효하다. 뭐 그건 그렇고 내가 꾼 장래희망으로의 꿈이 몇 가지가 있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장래희망이 있고 나이가 들면서 귀가 얇아 팔랑팔랑 거리며 수집한 꿈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리스타인데 꿈을 이루기도 했고 이루지 못하기도 했고 어쩌면 꿈을 이뤄 가는 중일 수도 있다. 바리스타, 보다 정확히는 커피와 연을 처음 맺은 건 대학교 시절이다. 커피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고 알바 자리를 찾다 우연하게 카페 알바를 시작하면서 커피와 연을 맺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카페 알바였지만 대학교 시절 내내 하면서 어?! 나중에 커피 일을 하고 살아도 재미있겠는데 정도로 변해가면서 꿈이 된 경우다.



 물론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핑계인 현실적인 이유로 커피 일을 접고 일반적인 일을 시작했으나 결국 돌고 돌아 30대 초반에 커피 일을 그러니까 바리스타로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직전까지 공무원이나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공무원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최소한 1년 보통은 2년 꽉 채워 3년 정도 걸리는 일인데(지금은 어느 정도 걸리는지 모르겠다. 10여 년 전 이야기다.) 딱히 좋아하는 일도 아닌 공무원 준비에 그렇게 시간을 쏟을 거면 차라리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투자해 보자 하는 생각으로 바리스타를 선택했다.



 지나고 보면 잘 한 선택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긴 한데 여하튼 바리스타로서 카페에서 일을 했다. 재미는 있는데 뭔가 내 카페가 아니면 비전은 없는 거 아닌 가하는 생각에 카페 일을 접고 커피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시작했다. 경제적으론 부족한 삶이었지만 분명히 행복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커피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자격증을 따고 결국엔 강사 활동까지, 다시 말해 커피라는 분야에선 나름 전문가의 위치에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지 까지 했으니 나름 성공적인 꿈의 실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현실이라는 아주 좋은 핑계로 커피에서 도망쳤다. 나이가 조금 있었지만 그래봐야 30대 중반이었고 결정적으로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딱히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땡빚을 내서라도 카페를 차려 봤어야 되는데 그럴 용기는 없었다. 더 나아가 카페를 차릴 용기가 없다면 바리스타로 혹은 강사로 계속 일하면서 커피 공부를 더 하고 커피 추출하는 방법을 더 연습/연구해서 바리스타 대회라도 나가 봤어야 되는데 그마저도 적당히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고 말았다.



 그렇게 현실과 타협한 다음 직장의 첫 여름휴가에 포기한 커피에 대한 미련인지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인지 모를 마음으로 나름 커피의 성지를 찾기로 했다. 바리스타라는 단어도 모르고 그런 직업도 알려지지 않은 시절에 지나고 나서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1세대 바리스타라고 불려진 4분의 선구자가 계셨는데 그중에 한 분이 강원도 강릉에 카페를 하고 있었다. 커피를 하는 사람 그리고 커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분인데 알기로는 처음엔 서울 모처에서 카페를 하다가 이러저러 이유로 강원도 강릉에 자리를 잡고 카페를 하셨다고 한다.



 그분이 강릉에 자리를 잡아서 그렇게 된 건지 시기가 잘 맞아서 그런 건지 그 이후로 강원도 강릉은 전국적인 커피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지금은 강릉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카페 거리가 거의 있어 다소 퇴색된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해변 옆의 카페 거리라는 메리트는  한 번쯤은 가 볼만한 가치를 제공한다.



 커피를 했던 사람으로서 강릉은 몰라도 그분이 하는 카페는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아이러니한 건 커피 일을 할 당시에는 결국 가 보지 못했고 현실을 빌미 삼아 커피에서 도망친 다음에 비로소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도 몇 번을 고민한 끝에 이번이 아니면 다음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 같아 굳게 마음먹고 혼자 카페로 출발했다.



 혼자 무언가 하는 걸 두려워하거나 어색해하지는 않는다. 첫 직장이 영업직이었는데 영업을 다니다 보니 혼자 밥 먹을 일이 상당히 많았다. 혼밥이란 단어도 없던 시절에 일에 의해 자연스레 혼밥을 했다. 편했다. 일을 하다 보면 밥때를 놓치는 일이 흔한데 오히려 그 편이 편했다. 점심을 예로 들면 1시 이후나 2시 이후에 식당에 가게 되면 여유롭게 식당에 있는 신문이나 TV를 보면서 천천히 그야말로 밥을 즐기면서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혼밥은 외로운 어색한 민망한 무언가가 아닌 편안한 시간으로 인식돼 있다. 영화도 혼자 잘 보는 편이다. 다른 사람과 취향 차이를 극복해야 할 일도 없고 보고 싶은 영화 맥주 한 캔 사 들고 들어가 보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인데 뭐 그리 혼자 하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여러분 당신들이 혼자 뭘 하든 다른 사람들은 일절 관심 없으니 괜히 혼자 뻘쭘해하지 마세요.



 이야기가 옆으로 조금 많이 샜는데 혼자 뭘 하는 게 힘들진 않지만 장시간 혼자 차를 끌고 가는 일은 졸리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귀찮기도 해서 망설이다 출발한 부분이 있어 굳이 혼자 갔다는 이야기를 해 봤다. 더불어 커피를 좋아라 했고 커피에 이 한 몸 바쳐보자고 다짐도 했지만 현실이라는 핑계로 도망친 직장의 여름휴가를 이용해 찾아가는 과정이 다소 앞뒤가 안 맞는 듯하여 더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결국엔 갔다.



 그 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잘 틀지 않고 창문을 열어 가며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을 계속하면서 꾸역꾸역 액셀을 밟았다. 드디어 도착했다. 외형적으로 비치는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차분했다. 화려한 요즘의 대형카페들에 비하면 허름할 정도로 평범한 외관의 건물에 커피를 파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소소한 이미지의 건물이었다. 주차를 하고 카페에 들어섰는데 내부도 다소 낡은 소품들이 자리를 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줬다. 그렇게 넓지도 않은 공간에 테이블도 기억에 의하면 서너 개 정도밖에 없었고 손님도 한 테이블에 두 명 밖에 없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크지 않은 창문 밖 저 멀리 보이는 바다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다가 멀어 더 그랬겠지만 물결의 일렁임도 파도의 움직임도 거의 보이지 않아 액자 속에 그림 같은 바다가 보였다. 창문을 통해 불어 온 바람이 아니었다면 그림이라는 착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처럼 보이던 바다도 바다지만 불어 들어온 바람의 느낌이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생생하다. 바다에서 불어 온 바람이라 습하면서 짠 내가 나는 듯하면서 7말 8초라는 가장 더운 여름의 열기를 머금은 바람은 그렇게 상쾌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닷바람이라고 설풋 시원한 기운이 볼을 살짝 간질이기도 했다.



 1세대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내려 주는 커피의 성지 같은 곳에 가서 웃기지도 않게 창밖의 여름 바다와 바람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직원 분의 주문 마감한다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커피를 시켰다.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 도착을 했는데 평생 커피를 내려 어깨가 많이 상하셔서 카페 문을 일찍 닫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왔는데 그마저도 어쩌면 늦게 도착해 커피를 마시지 못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눈길은 창밖의 뜨거운 여름 햇살아래 놓인 바다를 보면서 기다렸다.



 사실 커피 맛은 별로 기억에 나지 않는다. 커피 공부를 그렇게 했음에도 커피 맛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둔한 미각의 소유자라 그럴 수도 있지만 커피는 그저 커피일 뿐이다. 대단한 미사여구를 이용해 커피 맛을 표현하는 행위 자체는 오히려 커피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들 혹은 커피에 입문한 초보자들에게 괜한 거리감을 줄 뿐이다. 정말 그런 맛을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들을 뭐라는 건 아니지만 커피는 전문가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삶 속에 친근하면서 가깝게 자리하고 있는 음료일 뿐이다. 그런 음료를 마시며 황홀한 경험을 화려한 단어들을 통해 표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커피는 그저 커피일 뿐, 사람과 사람을 잇는 보조적인 매개로 그 역할은 충분하며 맛과 향이 좋으면 금상첨화 정도로 인식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여하튼 전문적인 커피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니까 이쯤에서 정리하고 장래희망 중에 하나인 커피 그리고 바리스타, 이룬 것 같기도 이루지 못한 것 같기도 이루기 위한 과정 중에 있는 것 같기도 한 커피. 그 커피를 현실이라는 좋은 핑계로 도망치고 또 도망치다 결국엔 찾아 간 여름이라는 계절 그리고 창밖으로 보였던 여름 바다, 바람. 뜨거운 햇살과 녹아내릴 것 같은 열기를 머금은 한 여름인 8월 초 어느 날이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그 여름 바다의 커피 향을 끌어안은 짭짤한 바람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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