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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Sep 05. 2023

귀찮아 죽겠네.

 https://groro.co.kr/story/5383



 오늘도 무사히 일을 마쳤다. 월요일 밤 10시. 늦게 시작하고 끝나는 일이라 시간이 늦을 뿐 일하는 물리적인 시간은 일반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하튼 나에게 밤 10시에 일이 끝났다는 건 상대적으로 일찍 끝난 날에 속한다. 아 하하하하, 놀자! 하고 싶지만 일찍 끝나는 날은 운동을 하기로 했다. 글을 같이 쓰는 분들과 글쓰기 외에 매일 개인적인 실천 과제를 통해 인간이 되자 하는 나름 프로젝트의 일환인데 이 마저도 매일 걷기를 하려다 밤 10시보다 더 늦게 끝나는 날은 거르고 일주일에 3일만 걷기로 쥐도 새도 모르게 계획을 바꿔 버렸다.



 운동이라고 해서 대단할 건 없고 그저 걷기다. 조금 빠른 걷기. 평범한 성인의 걷기 속도는 시속 4Km 정도인데 그 속도를 조금 상회하는 정도로 빠르게 걷는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를 걷는다. 내가 사는 아파트와 옆으로 건너 3개 정도의 다른 아파트 단지와 바로 붙어 있는 초등학교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산책로가 코스다. 한 바퀴를 크게 돌면 4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하루 운동 거리로 적당하다. 가끔 늘 같은 산책로를 도는 게 지겨워 여기저기 포인트를 찍는 만보기 앱을 활용한 적도 있는데 중간중간 횡단보도도 건너야 해서 조금 번거로워 잘 활용하진 않는다.



 집에 도착을 했다. 아이는 아직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보통 밤 10시에서 11시 정도에 재우는데 아빠가 들어오는 소리에 침실에서 엄마랑 후다닥 달려 나왔다. 마침 아이 간식이 택배로 도착해 있어서 택배를 들여 뜯어 아이에게 확인시켜 주고 아이를 다시 침실로 보내면서 아침에 보자고 인사했다.



 우선 옷을 갈아입었다. 겨울에 걷기를 할 때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주차를 한 뒤에 겉옷 정도만 차에 벗어 두고 걸었지만 여름엔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어 집에 올라와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이로 인해 실천력이 겨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오늘도 들어온 길에 그냥 나가지 말까 하다 글의 소재로 써먹기 위해 부득불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무언 갈 할 때 도구나 물품을 먼저 사는 편이 아니다. 일단 해 보고 정말 필요하다면 하나씩 사는 성향이다. 옷은 5년 정도 전에 첫 해외여행으로 동남아 어디 휴양지를 갔는데 래시가드가 필요하다고 해서 하나 사 둔 걸 땀복처럼 활용하고 있다. 신발은 이 전에 신었던 조금 낡은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안 그래도 지루한 걷기를 조금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한 목적과 운동을 했다는 걸 공유하기 위한 만보기를 위해 휴대폰도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유선이어폰을 쓰고 있었는데 조카가 쓰다 남은 무선이어폰 하나를 받아서 세상 편하게 걷기를 하면서 음악 등을 듣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워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지만(휴대폰을 들고 운동을 목적으로 걷는 게 은근히 아니 상당히 불편하다.) 아마도 사지는 않을 것 같다.



 블루투스 기능을 통해 무선이어폰을 연결하면서 밖으로 나섰다. 운동을 하기 전과 후에 스트레칭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하는데 너무 귀찮아서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몸을 풀고 걷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약간의 속도를 내기 전에 뭘 들을까 이거 저거 찾기 시작했다.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게 일반적인데 오늘은 유튜브에 손이 갔다. 유튜브를 켜자마자 며칠 뒤에 유럽에서 있을 축구 국가대표 친선경기 관련 영상이 떴다. 짧은 영상이고 화면을 봐야 되는 영상이라 대충 보고 넘겼다.



 빠르게 화면을 내리다 잘 보는 과학 관련 영상이 눈에 걸렸다. 과학을 잘해서 보는 영상은 아니고 은근히 재미가 있다. 설거지를 할 때도 잘 보는 채널이다. 똑똑한 과학자 세 분이 나와서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해 주시기 때문에 볼 만하다. 잘 모르겠는 이야기는 그냥 아저씨들이 노닥이는구나 하는 정도로 대충 넘기면서 들으면 들을 만했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과학사적으로 소름 돋았던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하나의 영상과 주로 빛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상 2개를 듣고 봤다. 북한의 핵실험에 의해 민간인들이 입었던 피해를 이야기했고 허블 이후에 제임스 웹 망원경(?)을 우주로 보내 우주를 찍었는데 감동적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들으면 된다. 양자역학을 발견(?), 이해한 물리학자가 그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밤을 지새웠다는 부분이 같은 과학자로서 이해 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듣고 보면서 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운동을 하기 위해 산책로를 도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집에 들어가는 길을 산책로를 택해 운동도 할 겸 지인들과 수다도 떨고 전화도 하면서 걸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강아지를 이끌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과 평안함이 느껴졌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같은 목적 하에 산책로를 걷고 뛰면서 공감대가 형성이 돼서 그런 건지 늦은 시간임에도 자유롭게 서로를 믿고 나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은 건지, 여하튼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연결시킬 수 있는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귀와 눈은 다시 두 번째 영상으로 향했다. 주로 빛에 대한 이야기인데 빛의 속도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 건지, 누가 처음 재려고 했는지, 빛의 속도를 재려고 한 이전의 과학자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등등을 이야기했다. 이 영상을 보느라 40분 정도만 돌고 들어가려 했는데 근 1시간을 걸었다. 집에 있는 전자레인지와 초콜릿을 이용해 빛의 속도를 오차가 있지만 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걷기를 마무리했다. 허, 참! 과학자들이란... 재미있고 신기하고 고마운 양반들이야.



 집에 돌아왔다. 밤 11시 30분이 넘었다. 아이는 아직 안 자고 있었다. 침실에서 엄마랑 안 자겠다고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그야말로 미운 4살의 진면목을 보여 주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조용히 욕실로 들어가 샤워하는 게 전부다. 샤워를 하며 땀에 흠뻑 젖은 래시가드를 대충 빨고 나왔다.



 자리에 앉아 한 숨 돌리고 글을 쓰고 있다. 겨우 걷기지만 운동하는 게 너무 귀찮아 죽을 거 같아 오늘도 역시 머뭇거렸지만 정말 귀찮아하다 죽을 순 없어 운동을 나섰다.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떨치고 죽진 못할망정 귀찮아 죽을 순 없어 꾸역꾸역 운동을 다녀와 하루를 기록하고 있다. 동시에 옥수수를 뜯어먹는 건 안 비밀!

  상기 이미지는 삼성 헬스 앱 화면을 캡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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