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하는 늑대 Oct 02. 2023

뭐라는 거야

https://groro.co.kr/story/5832



며칠 전 요상한 장면을 봤다.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임대를 문의한다고 하는데 영업 중인데 추석 연휴는 또 쉰다는 가게의 안내 문구였다. 뭐지? 세 가지 안내가 상존할 수 있는 건가? 임대를 냈다는 건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인데 영업 중이라고 하는 안내에 더해서 추석 연휴는 영업을 쉰다는, 이건 도무지 뭐가 안 맞는 건데? 안 그래도 뭐가 많이 덕지덕지 붙어 정신 사나운 가게 전면이 더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장사가 안 돼서 임대는 냈는데 나가기 전까지는 영업을 하자 하는데 마침 추석 연휴가 시작된 걸 수도 있다. 이해하고자 마음먹으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애매한 건 또 사실이다. 동시에 나란 사람의 정체성도 그런 거 아닌가 싶은 생각으로 연결됐다.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적절한 말이다. 40년을 넘게 살았는데 모르겠다. 좋아하는 건 뭔지, 잘하는 건 뭔지, 할 수 있는 건 뭔지, 하고 싶은 건 뭔지 등등등.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잘 모르겠다. 이런 부분이 자연스럽게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혼자 살면 딱히 걱정이 되지 않을 부분인데 사랑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가족이 있으니 걱정이 됐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길을 잘 잡아야 가족이 조금이라도 편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텐데... 삶을 제대로 살려면 내가 누군지 알아야 되는데, 이 세상에 어떤 쓰임이 있는지 알아야 써먹을 텐데 그야말로 답답한 일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나를 알아보자는 이유가 컸는데 3년을 넘게 쓰고 있는데 모르겠다. 하기야 4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꼴랑 3년 글 쓴 게 무에 대수라고 나란 존재나 삶을 알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뭐라도 쏟아내니 다행이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청주토박이로 살아온 내가 잠시 놀러 온 부산의 광안리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참 웃긴 일이다. 어느 지역에 오래 살면 그 지역의 여러 가지 것들이 삶에 묻어나기 마련인데 그런 청주가 아닌 전혀 다른 동네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모호하고 모호한 일이다. 다만 관광지, 그것도 바닷가를 바라볼 수 있는 숙소에서 밤바다를 안주삼아 맥주 한 잔 하며 글을 쓰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이러고 앉아 있으니 괜히 멜랑꼴리가 센치를 밥 말아먹는 느낌이 나면서 대단한 작가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글은 개판 그 자체다. 정체성의 모호함이란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모호하고 뭐가 뭔지 모를 분위기를 내기 위해 문장도 길게, 썼던 표현도 자주 그리고 문단 구분도 없이 쓰고 있다. 평소에도 딱히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라 조금 신경 써서 쓴 글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이게 다행인 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도 동시에 든다. 그렇게 크지 않은 작은 방에 아내와 아이는 침대에 재워 두고 불을 거의 다 끈 상태에서 어렵게 글을 쓰고 있다. 잠을 자야 하는 아이는 자기 싫다고 잠이 안 온다고 보채면서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다. 불을 거의 다 끈 탓에 눈도 아파 죽겠다. 뭐 하는 건가 싶지만 또 같이 글을 쓰는 분들과 약속한 부분이 있어 쓰긴 써야 했다. 나름 최소한의 책임감이 나를 부여잡아 준 점이 고맙기도 하다. 어제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해안을 걷는데 도로 화단에 꽃이 잔뜩 심어져 있었고 벌새가 상당히 많았다. 벌이 맞는 건지 새가 맞는 건지, 벌도 아니고 새도 아닌 건지, 벌이기도 하고 새이기도 한 건지... 지금 내 삶을 내가 바라보는 관점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생명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호한 정체성의 모호함을 이해해 보자고 쓴 글이 모호해서 그 모호함이 가관을 이루는 이때에 에라 모르겠다! 술이나 마시고 바다나 보면서 자자하고 글을 이상하게 마무리해 본다.


https://www.youtube.com/shorts/0pzIO0MUvO4

작가의 이전글 Give and take 하지 말고 기부를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