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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Oct 09. 2023

수목원에 바람으로 불어오는 가을

 https://groro.co.kr/story/5923



 길고 긴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무엇을 할까 아내와 고민했다. 2박 3일간의 부산여행 이후라 어디 멀리 가긴 부담스러워 조금 가볍게 보내고 싶었다. 더불어 추석 연휴 그리고 부산 여행 이후의 가벼운 일정 등의 고려 이전에 얼마 전부터 세종수목원이 뇌리에 머물러 있었다. 살고 있는 청주에서 멀지 않기에 자연스레 수목원 이야기가 나왔다.



 검색이 일반적인 시대답게 우선 검색부터 시작했다. 특별한 전시나 개인전 등이 있는지, 입장료가 성인 기준 5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대로인지 올랐는지 등을 확인했다. 오잉! 10월 9일까지 무료 개방이라는 공지를 확인했다. 바로 결정했다. 가자! 입장료 5천 원이 수목원 규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무료라는 점이 특별히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우리 가족의 결정을 단 번에 해결해 줬다.



 더불어 가을로 향해가는 시점에 수목원에 가는 게 왠지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수목원은 온실도 있어서 방문하는 데 있어 계절에 그렇게 구애받는 곳은 아니지만 가을이 주는 느낌이라는 게 분명히 있었다. 특히 계절 변화에 민감한 식물을 보러 가는 곳이니 만큼 온실 여부와 관계없이 식물이 각 계절에 보여 주는 서로 다른 맛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해 가을이니까 수목원에 가야지 하는 결정의 인과관계가 어느 정도 설명이 됐다.(물론 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다 설명이 될 수 있다.)



 가는 길에 간만에 가을소풍 느낌을 조금 내고 싶었는지 아내가 도시락을 싸 가자고 했다. 방문하면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4곳이나 되는 점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아내와 내가 먹을 건 유부초밥을, 딸아이가 먹을 건 간은 거의 안 된 색만 노란색인 카레 밥을 쌌다.



 30여 분을 달려 수목원에 도착했다. 가는 길도 상당히 단조롭다. 20여 킬로미터의 직선 도로를 달리다 수목원에 거의 다다라 우회전 한 번, 주차장에 들어가기 위해 좌회전 한 번이면 도착이다. 연휴 마지막 날이고 무료 개방이라 해서 사람이 많을 것을 예상했는데 예상대로 많았다. 그럼에도 주차장 부지가 넓은 편이라 별 어려움 없이 주차하고 평소보다 조금 더 걸어 수목원 정문에 서 여기 왔다고 사진을 찍었다.



 도착한 시간이 딱 점심시간이라 입구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 가 따뜻한 거 하나 시켜 놓고 도시락을 우선 먹기로 했다. 수목원이 상당히 넓어 걸어 다니려면 배가 든든해야 했다. 사람은 많았는데 식당은 생각보다 자리가 있었다. 우동 하나를 시키고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는데 싸 온 도시락이 생각보다 적었는지 내가 잘 먹었는지 다소 부족함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딸아이가 싸 온 카레 밥을 잘 안 먹으려 해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영혼의 메뉴인 돈까스를 아이 핑계 삼아 시켰다.



 싸 온 도시락이 무색할 정도로 양껏 시켜 야무지게 먹고 수목원으로 들어갔다. 세 번째 방문인데 첫 방문은 가 오픈 기간에 실외 여기저기를 임신 중이었던 아내와 산책하듯이 둘러봤다. 두 번째 방문은 아이도 함께 했는데 계절이 초여름이었는지 늦여름이었는지 헷갈리는데 추울 정도로 여우비가 내리는 날이어서 실내 온실만 둘러봐 조금 아쉬웠다. 이번만큼은 날도 좋고 하니 실내외를 다 둘러보자고 다짐했다.



 우선 사계절 온실을 둘러보기 위해 입장하자마자 왼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 오른편에 넓은 잔디밭이 있는데 날이 좋아 사람들이 여기저기 돗자리를 펴고 간식도 먹고 부담스럽지 않은 가을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더해서 추석 연휴라 그런지 잔디밭에 제기며 윷 등 전통놀이 기구가 있어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직 어리지만 이거 저거 경험시켜 주고 싶은 부모 마음에 아이와 함께 잔디밭으로 들어갔다. 제기를 먼저 집어 들고 차는 모습을 보여 주니 어설프게 따라 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한참을 놀다 수목원에 온 본래의 목적을 위해 아쉬워하는 아이를 달래며 사계절 온실로 향했다. 사계절 온실은 특별전시실, 지중해 온실 그리고 열대 온실로 구성돼 있다. 중앙은 쉴 수 있는 카페, 편의점등의 공간이 마련돼 있다. 특별전시실은 정원사 ‘피터 래빗’의 컨셉으로 꾸며져 있었다. 지중해와 열대 온실은 전에 봤던 모습 그대로였고 중앙에 쉴 수 있는 공간 한 편에 식충실물이 특별히 전시돼 있었다. 더해서 반려식물 상담센터도 있고 재료비를 내고 화분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식물을 그린 작가의 개인전도 열리고 있었다. 전에 왔을 때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은 밴드의 공연도 볼 수 있었다. 세 번 방문의 결과, 사계절 온실만 꼼꼼히 둘러봐도 짧은 시간에 넓은 곳을 많이 걷지 않고 임팩트 있게 세종수목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여우비가 오는 것도 오는 거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부는 통에 추워 어린아이와 도저히 실외를 관람할 수가 없어 포기했는데 이번엔 날이 좋아 두 번에 걸쳐 충분히 둘러본 사계절 온실을 뒤로하고 실외로 나갔다. 조금 제대로 관람해 보자고 다짐했지만 너무 넓어서 이내 포기하고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구경하기로 했다. 아주 아주 넓은 정원 혹은 공원을 둘러보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일부 식물을 직접 손으로 만져 보라고 권유하는 감각정원을 지나 우리 조선 시대 임금님의 정원을 본 따 만든 곳의 정자에 앉아 하릴없이 멍 때리며 연못을 바라보며 여기가 낙원이네 하는 생각을 하며 잠시 쉬기도 했다. 정자에 부끄러움은 아내의 몫임을 확인하는 듯이 어느 정도 누워 있다 일어서 다음 정원을 향해 걸었다. 몇십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분재들이 모여 있는 분재원을 지나 별로 희귀할 것도 없는 식물들을 모아 놓은 희귀특별온실을 지나 어린이 정원을 향했다.



 어린이 정원은 별다른 건 없고 그야말로 어린이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구조물을 여러 식물들과 어우러지게 만들어 놓은 수목원 내 작은 공원이었다. 놀이터도 있고 일부 나무로 구성해 놓은 미로도 있어 어린아이들을 잠시 풀어 두고 부모들은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어린이 정원에서 아이와 놀고 있다 보니 안내 방송이 나왔다. 관람시간이 다 됐으니 이제 그만 나오라는 방송이었다. 12시 반경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여기저기 둘러보니 어느덧 관람 마감시간인 오후 6시가 다 됐다. 참 넓은 수목원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며 다 둘러보려면 하루 온종일 잡아 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입구를 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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