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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Oct 26. 2023

TEN, TEN

https://groro.co.kr/story/6250



 틔운에 10개의 펠렛을 올리고 각각의 펠렛에 역시 10개의 라벤더 씨앗을 모두 올렸는데 2개가 싹을 틔웠다. 동시에 물에 담가 둔 아보카도 씨앗은 2개의 라벤더가 싹을 틔울 때까지 소식이 없다. 식집사 흉내를 조금 낸다고 요즘 과일만 먹으면 씨앗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최근에 물에 담가 둔 아보카도에 이어 배 그리고 사과 씨를 챙겼다.



 배는 우리가 알고 있는 크고 단 물이 많은 배였고 사과는 미니 사과였다. 더 찾아보니 미니 사과 종을 루비에스라고 하는 거 같았다. 커다란 배는 심어서 싹이 나고 나무가 돼도 집이라는 공간의 한계에 의해 배가 열리진 않을 거 같았지만 미니 사과는 작으니까 혹시 열리지 않을까 하는 무식한 기대를 하면서 씨앗을 모았다.(열매가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수정이 문제라는 걸 대충은 알고 있는데 왠지 그냥 그럴 거 같다.)



 틔운이라고 하는 기계에 힘입어 특별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책상 위에 틔운 위치를 잡으면서 코드를 꽂고 전원을 하루 중 몇 시 정도에 켰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침 10시경에 LED등이 켜지고 밤 12시가 되기 10여 분 전에 꺼진다. 대충 12시간보다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불이 켜져 있는 거 같다. 온도는 보통 업무를 보는 피아노방에 있다 보니 항상 일정하게 20도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틔운에 의해 조명이 조절되고 온도는 항상 비슷한 온도가 유지되니 생각보다 잘 자라는 거 같다. 처음엔 2개의 씨앗에서만 싹이 나와서 나머지는 실패했구나, 펠렛은 그대로 남아있으니 모아 놓은 배나 사과 씨를 라벤더가 첨가돼 영양분이 풍부한(?) 펠렛에 올리자 하고 생각할 즈음 다른 펠렛에 슬금슬금 싹 비스무리한 게 보이지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뒀는데 가면 갈수록 점점 싹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더니 10개의 씨앗이 모두 발아를 해 버렸다. 다른 식집사 분들의 글을 보면 라벤더란 녀석이 키우기 쉽지 않은 거 같은데 1기 때 파종한 임파첸스보다 더 발아가 잘 됐다. 참고로 임파첸스는 11개의 씨앗 중에 8개가 싹을 틔웠다. 사실 별 신경을 안 쓰고 파종이 실패하면 실패하는 가 보다, 앞에 말한 대로 망한 펠렛은 다른 씨앗 발아를 위해 써먹자 했는데 그런 마음이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 거 같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여유 있는 마음 때문에 파종한 라벤더가 모두 싹을 내민 건지 틔운이 좋아 그런 건지 둘 다인지는 불분명하다. 여하튼 그게 뭐든 잘 된 거겠지 하고 넘기면 사실 그만인 문제다. 대단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한 쌩초보 식집사에겐 그저 싹이 다 나온 게 신기하고 기특할 뿐이었다.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유명한 표현대로 내가 한 건 하루에 두세 번 물을 준 것뿐이다.


 그리고 아보카도는 씨앗 표면에 기억에 의하면 없었던 줄 같은 게 생겼는데 이게 싹이 나오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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