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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Nov 10. 2023

75만 원

2부

https://groro.co.kr/story/6566



 진료를 마치고 나와 약값을 지불했는데 25만 원이었다. 아... 비싸다. 앞에서 이야기한 비염치료제인 칙칙이가 2만 원도 안 했던 거 같은데... 10배를 넘어서는 가격이라니... 그리고 이렇게 세 번은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럼 약값만 75만 원인데 이게 잘하는 건가 싶었다. 더 나아가 한약을 먹을 경우엔 불편한 점이 조금 있었다. 별 다른 건 아니고 소위 약발을 잘 받기 위한 그리고 약발을 떠나서 일반적으로도 건강한 삶을 위해서 줄여 가면 좋은 습관이기도 하다.



 바로 밀가루 음식을 덜 먹고(안 먹으면 좋고) 술을 안 마시는 거다. 술은 좋아하고 잘 마시기도 하는데 약을 먹기 위해서 버티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약을 먹지 않을 시기에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가볍게 맥주 마시는 게 전부였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진짜 문제는 밀가루였다. 밀가루로 되어 있는 음식이 너무 많고 맛있는 음식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하려면 뭐든 할 수 있는 존재다. 약을 먹는 순간부터 밀가루가 아닌 다른 가루?(쌀이나 옥수수 등 ㅋ)로 만들어진 맛있는 과자들을 찾았다. 100% 완벽하게 대체할 순 없었지만 먹을 만한 맛있는 과자들을 많이 찾았고 그중엔 기존에 먹었던 과자들도 있었다. 아! 이 과자가 옥수수 가루로 만든 거구나! 하는 발견을 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약을 먹지 않을 때도 좋아했지만 약을 먹으면서 밀가루를 피하다 보니 떡을 더 먹게 됐다.



 건강해지자고 약을 그것도 비싼 돈을 들여 먹어야 되는 마당에 건강에 도움 될 게 없는 행위를 어떻게든 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가는 모습 속에서 소위 현타가 오는 순간이 있기도 했지만 뭐 약은 약이고 그건 그거라는 자기 합리화라는 아주 좋은 도구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처음 한 제 다 먹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밀가루 음식을 먹거나 부득이하게 술을 마실 경우(‘부득이’를 가장한 의도적 술자리) 약발이 덜 받거나 간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약을 한 두어 번 건너뛰라고 해서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성실한 환자이기에 밀가루 음식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건너뛰다 보니??? 조금 밀렸다.



 이어서 한 제 더 먹을 때는 조금 더 빨라지긴 했다. 그만큼 밀가루를 대체할 음식들을 더 많이 찾았다는 뜻이고 술은 통제가 되는 편이니 별 문제가 없었다. 처음 진맥을 잡으러 가서 약을 지을 때 최소한 세 번은 지어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약을 짓기 위해 다시 방문해 이런저런 이야기와 주의사항을 듣고 마저 지어 왔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술을 마실 경우엔 약을 건너뛰는 게 맞지만 밀가루 음식을 먹었을 경우엔 건너뛰지 말고 그냥 약을 먹으라는 추가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밀가루에 의해 약발이 다소 떨어져서 피하라고 한 거지 약을 끊어 먹으면 오히려 약효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즉, 약을 먹기 시작하면 가급적 꾸준하게 먹으라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그보다 우선은 밀가루 음식과 술을 안 마시면 그만인데 그걸 꾸역꾸역 먹어가며 약을 먹겠다고 하는 바보 같은 마음을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네!!! 결과적으로 처음 방문했을 때 선생님의 계획대로 약을 세 번 다 지었다. 두 번째 약을 먹고 있고 이제 이번 주에 세 번째 약을 받아 올 예정이다.



 이 과정 속에 한 가지 의문 아닌 의문이 들었다. 약 한 제에 25만 원인데 세 번이면 75만 원, 한 번만 더 지어먹으면 약값만 100만 원이네... 아니 그런데 한약이라는 게 체질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근본적인 개선을 노리는 건데 25만 원이면 자전거 한 대 값인데 자전거를 사서 운동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약을 먹는 내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운동을 조금 했으면 하는데 걷기 운동의 실천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자전거를 사서 조금 타볼까 생각하던 차여서 더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공교롭게 가격대도 비슷해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세 번째 약을 짓기 전에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좋은 생각이긴 한데 이왕 먹은 거 일단 끝까지 먹어 보자고 해서 못 이기는 척 따른 부분도 없지 않았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의도하지 않았지만 시기도 잘 맞게 약을 지어서 일단 먹기로 했다. 환절기 이야기를 하고 그런 환절기에 비염으로 고생을 하고 있지만 또 웃긴 건 계절 변화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아니다. 몸은 격렬하게 반응하지만 그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힘들면서도 계절이 바뀌면 바뀌는 가 보다 하는 사람이라 지금껏 비염을 안고 살고 있으면서도 환절기에 특별히 무슨 준비를 해 본 적이 없다.



 지금 먹고 있는 한약도 시작이 장모님께서 챙겨주신다고 해서 먹기 시작한 건데 어머님께서 환절기에 맞춰서 말씀을 주신 걸 수도 있겠지만 돌아보니 환절기에 딱 겨울을 준비할 수 있는 약을 먹게 됐다. 마지막 세 번째 약을 먹고 겨울을 잘 보내고 2월에 다시 한번 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더 시의적절하게 약을 지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살아오면서 가장 비싼 겨울 준비를 했으니 이번 겨울을 비롯해 비염으로 고생하는 날이 제발 사라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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