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01. 2023

겨향소풍

https://groro.co.kr/story/6957



 2023년도 끝나갑니다. 매번 매년 이야기하지만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딱히 잡고 싶은 마음이 없음에도 잡고 싶을 만큼 빠르게 흘러갑니다. 잘 올라타야겠지요. 12월 마지막 달입니다. 그야말로 겨울을 알리는 초입인 그런 달입니다. 물론 내년을 준비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소소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반갑기도 하고 예상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니 괜히 안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상기후다 뭐다 하지만 겨울은 이렇게 또 오는구나 뭐 이런...



 요즘은 붕어빵보단 잉어빵을 더 많이 파는 거 같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 한정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잉어빵이라고 내 걸고 파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성이 윤尹가 인데 파평 윤 씨는 잉어를 먹지 않습니다. 그 뭐냐 설화 비스무리한 건데 조상님들 중에 위험에 처한 분이 몸을 피하다 강을 만나 어쩔 줄 몰라하는데 잉어들이 모여 다리를 만들어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입니다. 그 후손으로서 감히 빵이지만 잉어를 잡아먹을 순 없어 안 사 먹습니다 는 아니고 비싸서 안 사 먹습니다. 3마리에 2천 원이라니... 추운 겨울에 호호 불며 먹으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줄 붕어인지 잉어인지 모를 빵의 가격이 너무 추워 못 사 먹겠습니다. 그저 겨울이 오는 구나하는 하나의 풍경 정도로만 보면서 지나치고 맙니다.


 나무들이 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죠? 나무들 춥지 말라고 입히는 옷이 아니라는 거... 아니 애초에 나무 길이가 있는데 꼴랑 30cm 정도만 덮어 주면 그게 그 따뜻하겠습니까? 사람으로 치면 한 겨울에 홀랑 벗겨 놓고 팬티 한 장 덜렁 던져 주는 꼴과 같은 건데 희한하게 보고 있으면 겨울바람에 나무 따뜻하라고 둘러준 거 같습니다. 아! 따뜻하라고 둘러 준 게 맞긴 맞습니다. 다만 벌레들 모이라고 따뜻하게 둘러 준 옷인데 벌레들에겐 수의壽衣가 되겠군요. 봄이 되면 홀랑 태울 텐데 저 죽는 줄도 모르고 따뜻함에 기어들어 가는 관棺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뭐 그건 벌레들 사정이고 겨울이 오는 모습입니다.


 드디어 한 여름 신나게 돌아갔던 에어컨에 옷을 입혔습니다. 한 여름 잘 버틸 수 있게 도와줬으니 누렇게 색 바래지 말라고 옷을 입혀 줘야겠지요. 그래야 내년에 또 신나게 달릴 테니 누레지건 그렇지 않건 간에 돌아가는 데 전혀 상관은 없지만 이왕이면 새 하얀 모습으로 돌아가야 조금이나마 더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잘 쉬시고 내년에 봅시다. 성은 에요, 이름은 어컨 씨. 이름이 좋아, 누가 지었는지 아주 시원하게 잘 지었어!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마침 크리스마스 4일 전이 딸아이 세 돌인데 드디어 아빠로서 산타할아버지를 이용해 먹으며 아이의 여러 가지 생활 습관을 들일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지난해 까지는 ‘누가 누가 이거 저거 잘하면 산타할아버지께서 선물을 가져다주신대. 그거 알아?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걸 다 알고 계신다고.’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아이가 받아 줄 수 없었는데 올해는 드디어 그 허무맹랑한 소리를 아이가 받아 줄 수 있는 수준이 됐습니다. 그래서 안 먹는다고 버티고 안 씻는다고 버티고 결정적으로 안 잔다고 버틸 때마다 산타할아버지를 소환합니다. 적잖이 먹혀들어 가는데 내심 산타할아버지가 분기마다 한 번씩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겨울입니다.     

 


 겨울을 향해 가는 소소한 풍경

 겨향소풍



 앗! 호빵을 빼먹을 뻔했다. 겨울을 대표하는 빵은 붕어빵이 전부가 아닙니다. 호빵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겨울이면 찾아오는 호빵은 사실 사계절 내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시장인근이나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두를 쪄서 파는 가게에 보통 찐빵도 같이 팔고 있는데 그 찐빵과 호빵이 다른 게 아니라고 합니다. 뭐랄까. 찐빵을 대형 식품업체에서 공산품 화해서 만들어 슈퍼나 편의점 혹은 마트 등에 납품해 파는 건데 그 찐빵의 브랜드 명이 호빵이라고 어디에선가 주워들은 기억이 납니다. 아니면 말고...



 뭐 여하튼 그렇다더라 하는데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시사철 볼 수 있는 찐빵과 겨울 하면 떠오르는 호빵은 그 갬성이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전 호빵보단 찐빵을 더 잘 먹습니다. 슈퍼나 편의점에서 호빵을 바로 쪄 주는 ‘찜기’라고 해야 될까요? 그걸 생각하면 호빵이 주는 감성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인데 생각보다 비싸서 찐빵을 더 자주 사 먹습니다.



 그마저도 요즘엔 잘 사 먹지 않고 문득 생각이 났는데 제가 또 단팥빵을 좋아라 합니다. 그래서 한 때 여기저기 단팥빵을 살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다양한 단팥빵을 사서 맛을 봤는데 종착지는 홈플러스에서 파는 4개들이 한 세트 단팥빵입니다. 정상가는 7천 원이 조금 넘지만 마감에 임박해 가면 5천 원대로 떨어지는데 그렇게 사 오면 정말 촉촉하고 묵직한 가성비 좋은 단팥빵을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겨울 하면 생각나는 호빵을 이야기하다 홈플러스의 단팥빵으로 흐르다니... 이 맥락 없는 의식의 흐름 사랑스럽지 않나요? 더해서 호빵을 폭폭 찌고 있는 찜기 사진을 좀 찍으려 했는데 사진만 찍으러 가게에 들어가기 뭐 해 창문에 써 붙인 호빵이란 단어만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재능충 vs 노력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