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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an 07. 2024

# 3rd 그로로팟, 온도

https://groro.co.kr/story/7620



 지난 글 말미에도 이야기했지만 발아를 위해 냉기가 도는 적절한 곳을 찾아야 했다. 문제는 냉기가 도는 정도여야지 추우면 안 됐다. 후보지는 거실의 베란다, 세탁실 그리고 피아노가 있어 피아노 방 혹은 내가 주로 업무를 보는 곳이라 마음으로는 서재라고 생각하는 방의 베란다 이렇게 세 곳이다.


 거실의 베란다는 아파트의 그 흔한 베란다를 의미하는 것이고 세탁실은 집이 남향인데 반대편 그러니까 주방 쪽의 벽면 창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피아노 방의 베란다도 피아노 방이 미닫이 문이면서 동시에 통창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는데 벽면의 창 쪽이 문 겸 통창 하나 차이로 온도가 상당히 낮다.


 거실의 베란다는 남향으로 낮에는 적잖이 햇빛도 들어와 후보지 중에 단연 최고의 장소다. 다만 전자제품인 틔운의 코드를 꽂을 마땅한 콘센트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 적합한 장소는 피아노 방의 베란다(정확한 표현인지 잘 모르겠으나 편 한대로 표현하겠다.)였다. 남향집의 반대편 벽면이라 햇빛은 안 들어오지만 틔운의 코드를 꽂을 콘센트가 바로 옆에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온도를 재보니 생각보다 낮았다. 11도 정도까지 떨어졌는데 그로로에서 보낸 안내 문자에 보면 발아에 적합한 냉기가 도는 정도의 온도는 13도 이상이었다. 자칫 씨앗들이 움을 틔우기도 전에 얼어 죽을 수도 있을 거 같아 선뜻 내놓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은 세탁실인데 세탁기도 있고 빨래 통에 쓰레기통 그리고 냉장고에 쌀통 양파 등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워낙 많아 씨앗 따위는 걸리적거리기 딱 좋은 장소여서 온도라는 측면에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명목상의 후보지였을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에라 모르겠다,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틔운을 믿고 그냥 피아노 방에 두었다. 약간의 찝찝함을 덮고 조명 관리나 잘해주고 물이나 잊지 않고 주면 되겠지 이러다 문득, 아! 참 틔운의 씨앗 키트를 넣는 판이 분리가 되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하! 바로 판을 분리했다. 역시 분리가 됐다. 그럼 문제는 바로 해결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나가기 전인 오후 3~4시까지 틔운의 키트 판을 분리해 거실의 베란다에 두면 됐다. 온도도 적절하고 틔운의 인공조명에 비할 수 없는 해님의 볕도 받고 일석이조의 해결방안이 드디어 나왔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보냈다. 그러는 와중에 물을 주면서 보니 10 립의 씨앗 중에 한 4 립 정도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물을 줄 때마다 두둥실 구름빵처럼 떴다. 아... 저 놈들 쭉정이구나... 그야말로 펠렛에 씨앗을 올리다시피 했는데 다른 놈들은 적당히 자리를 잡았는데 한 네놈 정도가 물을 줄 때마다 펠렛 표면을 탈출하려 했다.

 일단은 부실해 보이지만 녀석들을 믿고 몇 번 더 물을 줬는데 안정적인 녀석들은 자리를 잡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스스로의 몸 자체를 벌크 업 시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저 네놈은 그냥 쭉정이로 생을 마감하겠구나 싶어 물을 주는 스포이드를 이용해 펠렛의 표면을 살짝 눌러 홈을 만들어 줬다.

 그렇게 홈 속에 씨앗을 살짝 밀어 넣고 물을 마저 주니 아무래도 홈 속에 자리하고 있어 이전처럼 두둥실 떠올라 어딜 도망가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줬다. 또 몇 번 물을 주고 나니 그런 조치의 결과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쭉정이로 끝날 줄 알았던 녀석들 중에 한 두 녀석이 자리를 잡아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1월 7일 새벽 2시, 현재 네 녀석은 기지개를 켰고 세 녀석은 자리를 잡아 기지개를 켜기 위해 꿈틀 거리는 거 같고 나머지 세 녀석은 아직 방황을 하고 있다. 방황하는 질풍노도 삼총사를 다 잡기 위한 노력을 마저 해야 되는데 이 놈들이 중2병에 견주는 상황이라면 녹록지 않을 거 같아 심히 걱정이 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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