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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an 16. 2024

# 3rd 그로로팟, 속도

https://groro.co.kr/story/7890



 지난 글 말미에 정리한 대로 네 놈 정도가 싹을 틔웠는데 그중에 세 녀석만 나름 의미 있는 모습을 보여 줬다. 분명히 싹이 올라올 거 같은 다른 녀석들은 결국 주저앉아 버렸는지 더 이상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물을 줄 때마다 두둥실 떠오르던 녀석들은 본인들이 쭉정이라는 걸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듯이 결국 그렇게 계속 둥둥 떠오르는 모습을 통해 내가 그래도 씨앗이긴 했습니다 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만 남긴 채 스러져 갔다.


 그 와중에 깔끔하고 의미 있는 모습으로 싹을 틔운 세 녀석을 빠르게 화분으로 옮겨주기로 마음먹었다. 시즌1에서는 펠렛에 올린 씨앗에서 싹이 나오자마자 바로 화분으로 옮겼다. 객원으로 참여한 시즌2에서는 싹의 뿌리가 펠렛을 뚫고 나온 한참 뒤에 화분으로 옮겼다.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싹이 나오자마자 바로 옮기는 건 그래도 가급적이면 바로 옮기는 게 낫다는 나름의 결론에 이르게 됐다. 어~하다 또 뿌리가 펠렛을 뚫고 나올 거 같아 바로 옮겼다.


 시즌1 때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화분을 활용했고 시즌2 때는 요거트 통을 재활용했기에 그로로에서 제공해 준 화분이 남아 있었다. 의도치 않게 세 번째 그로로팟 키트의 화분까지 해서 총 세 개의 화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화분에 옮겨야 하는 네모필라도 세 녀석이었다. 베란다에 방치해 둔 화분을 들고 들어 와 쌓인 먼지 등을 대충 물로 씻어 주고 라벤더가 말라죽은 화분의 흙을 재활용해 담아냈다. 말려 죽인 라벤더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 등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흙이었다.


 시즌1 때는 펠렛의 껍데기뿐만 아니라 싹의 뿌리에 묻은 흙까지 다 걷어 내고 화분에 옮겼다. 객원으로 참여해서 마음이 그냥 그랬는지 시즌2 때는 귀찮아서 그냥 펠렛 채로 화분에 옮겨 심었다. 뿌리가 한 두 가닥도 아니고 펠렛을 잔뜩 뚫고 나온 지경이라 사실 껍데기를 뜯어내거나 흙을 걷어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냥 펠렛 채로 옮기려다가 아무래도 껍데기가 없으면 뿌리가 뻗어나가기 더 좋겠다는 생각에 껍데기만 뜯어내기로 했다.


 하나를 뜯고 이어 두 번째 펠렛의 껍데기도 뜯어내려고 했는데 보니 이미 두 가닥 정도의 뿌리가 뚫고 나와 있었다. 뜯어내다 자칫 뿌리가 상할까 싶어 그냥 두고 싹이 가장 작은 마지막 펠렛은 마저 껍데기를 뜯었다. 여하튼 화분에 옮겨심기 위한 준비를 마친 세 개의 펠렛을 흙을 담아 둔 화분에 잘 옮겨 심고 물을 살살 줬다. 싹도 작고 화분도 작고 흙도 그리 많지 않아 물을 시원하게 줄 수 없었다. 분무기와 스포이트를 활용해 천천히 조금씩 물을 줬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틔운 미니를 활용해 펠렛에 올린 씨앗을 발아시킬 때는 주로 실내에 있거나 볕 좋은 따뜻한 시간대만 잠시 베란다에 뒀는데 조금 더 규모가 커진 화분은 실내에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겨울인데 그냥 마냥 베란다에 둘 수도 없었다. 베란다에 거의 방치되고 있는 임파첸스가 아직 살아 있는 걸 보면 괜찮을 거 같다가도 말라죽은 라벤더를 생각하면 안 될 거 같았다. 종의 특성을 고려해야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앞 두 경험을 전적으로 참고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화분이 생각보다 작아서 틔운 미니가 있는 책상에 화분을 올려도 괜찮을 거 같았다. 노트북을 쓸 때 조금 번거로울 거 같긴 했지만 그 정도의 번거로움은 식집사로서(?) 감내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책상에 올려 보니 그렇게 부담스러운 크기도 아니었다. 해서 해가 진 이후엔 책상의 틔운 미니 앞에 두기로 했고 날이 밝아 따뜻해지면 베란다로 옮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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