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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an 12. 2024

바라는 대로, 글쓰기를.

https://groro.co.kr/story/7806



 글을 언제부터 왜 썼는지 여러 글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 누구도 설명해 달라고 단 한 번도 부탁하거나 요청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존재 이유에 대한 확인, 뭐 이런 느낌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고 또한 그런 스스로를 확인하고 상황을 인지 혹은 인정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지속적으로 내가 언제부터 왜 글을 써 왔는지에 대한 주제로 글을 자주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


 올해 2024년 8월이면 글을 쓴 지 만으로 4년이다. 조금 편하게 이야기하면 그저 일기를 열심히 써 왔다. 글을 쓴다고 하면 대단한 무언 갈 하는 것처럼 비칠 때도 있고 또 스스로 대단한 걸 한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글이 아님을 또 내 존재 자체 역시 대단한 존재가 아님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고 있기에 혹시라도 타인에게 대단하게 비칠 수 있는 상황과 더불어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착각을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글을 쓰고 있다는 무형의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적극적인’ 일기를 쓰고 있다고 치부하고 있다. 치부라는 표현이 딱히 긍정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그렇게 조금 거칠게 후려쳐야 있지도 않은 무언가에 의해 오만해질 수 있는 나를 겨우 다 잡을 수 있다. 천성이 지 잘난 맛에 사는 놈이라 늘 이런 경계를 하지 않으면 자만과 오만 뭐 이딴 것들에 매몰되기 딱 좋기 때문이다.


 그런 일기를 누구나 쓸 수 있는 그런 일기를 뭐 한다고 지금까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4년이 가까워지도록 쓰고 있는지 지금은 사실 잘 모르겠다. 처음에야 이러저러 대단한 의미부여도 했고 그 의미를 잊고 있지도 않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사실 그 의미가 뭔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강렬하게 든다. 대단할 것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40대 남자의 이야기인데 애초에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수가 없다.


 누구나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보면 영화 한 편 나온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모든 영화가 재미있을 수는 없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를 하고 싶은 거다. 그런 관점에서 내 이야기는 별로 재미가 없다. 재미도 없는데 그걸 담아내는 재주도 시원치 않다. 그러니 대단할 수가 없다.


 물론 글이라는 게 꼭 재미있어야 하는 건가 하고 물어본다면 그렇진 않다고 대답은 하겠지만 이야기는 재미있어야 한다. 특히 전문적인 분야에 관한 글이 아닌 에세이나 소설은 더더욱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라는 게 꼭 깔깔 거리며 웃는 재미를 말하는 건 아니다. 감동이 될 수도 있고 감정을 후벼 파는 동기가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순수한 재미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긍정적으로 표현한다면 소시민의 삶에 대한 이야기정도로 포장할 수 있는데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그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해빠진 사람의 그야말로 흔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 뭐 어쩌고 이딴 표현들 좋아하는데 난 별로다. 다들 잘 몰라서 그렇지 누가 됐든 어느 위치에 있건 돈이 많고 적고 간에 삶 속의 소소한 행복은 다 느끼며 살고 있다.


 다만 그런 소소한 행복의 경험에 대한 인식을 잘하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차이일 뿐이다. 물론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그런 행복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깨울 수 있는 불쏘시개 역할 정도의 의미는 있을 수 있으나 그런 글은 차고 넘친다. 오히려 그런 글들이 차고 넘치기에 사람들이 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니까 소소한 행복 따위를 인식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더해서 소소한 행복 정도만 느끼고 살기에는 인간들의 욕심이 너무 크다. 다들 아닌 척 하지만 우리 인간의 그런 욕심이 없었다면 이런 발전은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정도의 욕심이 있는 건 지극히 정상이다. 다만 겸손해야 배려를 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과 별문제 없이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기에 다들 겸손은 힘들어 죽겠는데 겸손한 듯 욕심이 없는 듯 소소한 행복 정도에 만족하지도 않으면서 만족하는 듯 사는 걸 수도 있다.


 이런 와중에 별스러울 것도 없는 40대 남자의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글로 담아낸들 재미있을 수도 없고 누군가 봐주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아! 물론 난 사람들의 그런 욕심과 내 글을 봐주지 않는 아쉬움에 대한 반감과 서운함 이런 게 있지는 않다. 사람이 욕심이 있는 건 당연한 거고 내 이야기가 재미없어 사람들이 안 보는 것도 당연하기 때문에 서운하거나 아쉬울 일이 1도 없다.


 다만. 개떡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찰떡 같이 해 내지 못하는 내 역량의 부족함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거 왜 죽도 맛있게 쑤면 고소하니 술술 잘 넘어가는데 그지 같이 쑤면 에이, 이걸 내가 살라고 먹는 거지 하면서 먹지 않는가?


 내 글은 그런 맛없는 죽, 너무 아프고 힘들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는 죽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되는 거 같다. 그런 글임을 알면서도 꾸준히 쓰는 것도 어쩌면 해악이라면 해악일 수 있는데 또 그렇게 생각하면 지난 3년이 넘는 시간이 거부당하는 거 같아 마음이 조금 그렇고 그렇게 자학할 필요까진 없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정리해 본다.


 여하튼 뻑뻑해 먹기 힘든 죽일지라도 최소한의 원기 회복을 위해 이거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을 위해서 손톱만큼의 의미 아니고 가치 아니고 필요가 있다면(정확히는 필요가 있기를 바라며) 나름 지금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최소한 무의미하진 않겠다 하는 자위 정도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 보려 한다.


 책을 좀 내야 하는데, 내면 팔리겠나 싶은 걱정을 여유 있게 생각하자 하는 번지르르한 마음으로 덮고 있는 중이다. 팔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책을 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이왕 의미 있는 과정을 거쳤으면 결과적으로 책이 조금이라도 팔리는 게 좋지 그래, 그거 뭐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자고 책을 내는 건 별 의미가 없는 거 같다. 그런 단호한 마음으로 책을 안 내는 건 아니고 그저 머뭇거리고 있다.


 왜 그런 표현 있지 않은가? 특히 스포츠에서 많이 쓰는 표현인데 참가에 의의를 두고 어쩌고 저쩌고... 아니 참가에만 의의를 둘 거면 거 왜 나갔어? 어떻게든 뭐라도 결과를 내고 싶은 다른 선수에게 양보하지. 참가에 의의를 둔다, 책을 내는 과정 자체에 의의를 둔다. 뭐 이딴 그럴싸한 표현이 난 싫다. 뭐랄까? 다들 알고 있는 씁쓸한 결과를 애써 외면하는 집단최면 같아서 싫다. 결이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올림픽 같은 거 보면 처음엔 죽어라 금메달을 외치다 금메달을 못 따면 메달 색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 하는 그런 말들이 너무 우습다.


 아니 그럴 거면 처음부터 메달 색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치지 않고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고 뭐 잘 돼서 메달 색이 더 밝아지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래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처음엔 금메달을 꼭 딸 거 같은 아니 더 정확히는 따야 되는 당위처럼 신나게 떠들다가 미치지 못하면 메달 색이 뭐가 중요합니까? 참가에 의의가 있지 않습니까 하는 태세 전환이 그저 코미디 같다. 차라리 처음부터 금메달을 신나게 응원했으면 그러지 못한 결과를 보고 아쉽습니다. 다음엔 더 잘합시다! 이게 더 낫지 않나?


 아... 그런데 이 글은 완전 실패한 글이다. 글쓰기를 바라는 대로 잘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인데 초점이 완전 엇나가 이상한 불평을 늘어놓은 글이 돼 버렸다. 역시 삶은 그게 뭐가 됐든 바라는 대로 잘 안 되는 거 같다. 그럼에도 처음 제목을 유지한 채로 글을 마무리해 본다. 뭐가 잘 안 되는 부분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 같기 때문에...


 그런데 읽을수록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여하튼 바라는 대로 글을 잘 써서 난 작가가 될 거야! 아 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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