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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an 21. 2024

4. 게임(만) 하기

https://groro.co.kr/story/7955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 40대가 어린 시절을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았던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한다. 실제로 난 서리라는 것도 해 보고(지금은 서리를 하면 안 된다. 지금은 그냥 도둑질이다.) 논에 떨어진 낱알을 주워 튀겨 먹어 보기도 하고 쥐불놀이나 자치기 혹은 요즘 너무나도 유명해진 오징어 게임을 정말 신나게 해 본 세대다. 그 외에 비석 치기도 있고 술래잡기는 기본이며 산과 들은 기본이고 뚝방이란 곳을 뛰어다니기도 한 세대다.


 얼음 배라는 걸 들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동네마다 조금 큰 개울이나 조금 작은 하천에 겨울이면 물이 얼어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 정도로 빙판을 이뤘는데 얼은 표면을 크게 아주 크게 쪼개 그야말로 배처럼 긴 작대기로 밀며 타고 다니기도 했던 세대다. 반도로 붕어, 잉어, 송사리 더 나아가 가물치도 잡아 봤다.


 이쯤 되면 지금 현재 40대가 정말 그런 경험을 해 본 건가 싶기도 하겠지만 한 치의 거짓 없이 정말 다 해 본 경험들이다. 뭐랄까 지금의 50~60대가 겪은 어린 시절의 경험 그 끝자락 어딘가에 40대인 나의 어린 시절이 위치해 있는 거 같다. 이외에도 많다. 동네 골목 어귀를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딱지치기 등을 했던 저녁이면 여기저기에서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소리를 들으며 컸다.


 그 시절 게임이란 단어는 상당히 생소했다. 게임보다는 거의 같은 뜻이지만 오락, 더 정확히는 오락실이 익숙했다. 초등시절에 하루 용돈이 500원이었는데 500원이면 학교에 가서 점심으로 컵라면에 과자 하나 사 먹고 집에 오는 길에 오락실에 들러 오락을 한 두어 판 정도 할 수 있었다. ‘스트리트 파이터’로 유명한 대전격투 게임이나 ‘1945’등의 슈팅 게임 그러니까 전투기로 미사일을 쏘며 적을 처 부수는 게임 혹은 ‘보글보글’이 전부였던 오락실의 오락이 다시 말해 게임은 그런 것들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90년대 중반 정확히는 96년 혹은 97년경에 이전에 없던 문화이며 공간인 PC방 혹은 게임 방으로 불리는 곳이 생겼다. 당시에 소위 개인이 소유한 컴퓨터의 의미인 퍼스널 컴퓨터를 집에 가지고 있는 친구는 정말 드물었다. 그런데 그런 퍼스널 컴퓨터, 그러니까 PC를 여러 대 구비해 놓고 시간당 일정 금액을 내고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이전에 고등학생들이 노는 대표적인 공간은 당구장이었다. 당구를 잘 치든 못 치든 당구장에서 먹는 짜장면 맛은 누구나 다 알았다. 그런 고등학생들에게 새로운 놀이공간이 생긴 것이다. 당시의 PC방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전략시뮬레이션이란 장르의 이제는 대한민국의 민속놀이가 된 ‘스타크래프트’와 FPS 쉽게 말해 총 쏘는 게임(주로 한 게임은 ‘레인보우 식스’였다.) 한 두 가지가 전부였다. 아! 고스톱이나 포커도 PC방에서 많이 했다.


 PC방에 친구들과 몰려가서 스타 한 판, 레인보우 한 판은 일상이 됐다. 그렇게 98년도에 대학생이 됐고 군대를 가야 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입영을 연기했다. 연기 전에 군대를 갈 생각으로 휴학계를 내놓은 상태라 99년도에 의도치 않게 일시적인 백수가 됐다. 아직 학생이었기에 더욱이 군대를 가기 위해 휴학을 한 상황으로 백수라 하긴 좀 뭐 한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백수가 아닌 건 또 아니었다.


 물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고등시절부터 알바를 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바로 알바를 시작했다. 노래방 알바였는데 알바를 마치고 PC방에 가서 스타 한 판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99년을 보냈다. 기억에 의하면 스타를 꽤 열심히 했던 거 같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비디오테이프를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봤는데 무려 프로 게이머들의 게임 내용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봤다.


 지금이라면 그냥 유튜브 등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간단히 볼 수 있는 영상을 당시엔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집에 있는 비디오 플레이어라고 해야 되나? 여하튼 그 기계로 돌려 봤다. 비디오 플레이어가 잘 안 돼서 애를 먹었던 기억도 같이 난다. 정말 옛날이야기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 중에 스타를 제일 잘하는 놈이 있었다. 그놈이 군대 간 사이에 노래방 알바하면서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았는지 그 녀석이 휴가를 나왔을 때 한 판 붙었는데 거의 이길 뻔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알바를 하면서 게임을 하다 2000년에 나도 군대를 갔다. 군대에 갔더니 조금 짬이 되면 스타를 할 수 있었을 정도로 이미 스타 크래프트는 상당히 대중적인 게임이 돼 있었다.


 그럼에도 게임에 그렇게 빠져 들지는 않았다. 그저 알바하면서 집에 가는 길에 잠깐 한 두어 판 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소위 ‘게임폐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게임을 하진 않았다. 군대 입영을 연기해 친한 친구들에 비해 1년 정도 늦게 가고 늦게 전역했다. 전역을 했더니 친구 중에 한 녀석이 ‘다중접속역할게임’이라는 아주 이상한 표현으로 해석이 되는 mmorpg를 하고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PC방의 초기 인기를 주도했던 양대 산맥 중에 하나인 ‘리지니’였다.(다른 한쪽은 앞에서도 언급한 스타 크래프트다.)


 그렇다면 다중접속역할게임이라는 건 무엇이냐? 그야말로 다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게임 서버에 접속해 각자의 역할을 맡아 그 역할에 맞게 게임 속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나만의 캐릭터(아바타)를 키워 간다고 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시대나 배경은 보통 중세판타지였다. 소설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반지의 제왕’을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유럽 역사의 한 부분인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엘프, 드워프, 드래곤 등 가상의 종족과 설정이 얹혀진 판타지가 기본적인 바탕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런 게임을 PC방이란 공간에서 하기 한참 전인 중학교 시절에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고 많이 읽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중세판타지를 기본 설정으로 삼은 mmorpg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반가웠다고 해야 될까? 중학교 시절에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그런 세상을 상상했었다. 공부하기 힘든 이 세상을 벗어나 판타지 세상으로 들어가 칼 한 자루 들고 동료들과 모험을 하며 악의 무리와 싸우고 보물을 얻는 그런 상상 말이다.


 역시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 보면 주인공들이 우연히 옷장을 열고 판타지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중학교 시절에 판타지 소설을 읽을 때 책장을 넘기면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상상을 인터넷상의 서버지만 비슷하게 구현된 가상의 게임 속 세상에서 간접적이지만 칼 한 자루 들고 동료들과 모험을 하며 악의 무리와 싸우며 보물을 얻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난 친구가 했던 리니지를 하진 않았다. 리니지를 조금 하다 다른 게임인 ‘뮤’를 했다. 이때부터 할 만한 모든 mmorpg는 다 해 본 거 같다. 지금도 게임이 많이 나오지만 2000년 초반은 대한민국 게임사에 있어 르네상스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PC방이란 공간과 게임이라는 문화가 시작되는 초창기였기 때문에 르네상스라는 표현이 맞는 표현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다양하고 많은 게임이 나왔고 즐겼다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거 같다.


 정말 해볼 만한 mmorpg는 다 해 봤다. 요즘 표현을 빌자면 나오는 모든 mmorpg는 다 ‘찍먹’을 해 봤다. 물론 중간중간 총 쏘는 게임인 ‘카운터 스트라이크’나 ‘서든 어택’등을 하기도 했고 당시 전 국민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싱 게임인 ‘카트라이더’도 간간히 즐겼다. 하지만 메인 게임은 mmorpg였다. 오늘도 악의 무리를 때려잡기 위해 가상의 세계로 접속해야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본 사람들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때 게임을 하면서 내가 상상했던 바가 그대로 이 영화에 구현됐다. 당시엔 있지도 않은 개념인 VR기기를 상상했었다. 게임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야, 나중에 기술이 발달하면 가상의 세계를 보거나 경험할 수 있는 기계 같은 걸 활용해서 정말 내가 칼을 들고 싸우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겠냐?’ 이랬던 거 같다.(그런데 정말 그런 시대가 왔다.)


 그렇게 게임이 삶의 일부가 아니라 거의 전부가 됐다. 그래서 결국엔 앞에서 언급한 게임폐인이 됐다. 어느 정도로 게임을 즐겼냐 하면 게임을 하다 잠들었고 일어나 발가락으로 컴퓨터 본체를 켜서 게임을 시작했다. 아! 이 시점엔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걸 넘어 집에 그야말로 개인용 컴퓨터(퍼스널 컴퓨터, PC)를 구비해 집에서도 게임을 하고 친구들과 몰려 가 PC방에서도 게임을 했다. 집에 PC가 있으면 집에서 게임을 하면 되지 굳이 돈을 내 가면서 PC방에는 왜 가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는데 친구들과 모여 떠들며 게임을 하는 맛은 해 본 사람들만 알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취미를 넘어 현실의 진짜 삶을 가상의 게임 속의 삶이 잠식해 들어갈 정도로 게임을 했다. 그때 아마 내 삶을 통틀어 가장 살이 많이 빠진 시기이기도 했다. 밥도 안 먹고 게임을 했다는 소리다. 이 쪽 삶이 진짜인지 저 쪽 삶이 진짜인지 헷갈렸지만 그럼에도 현실의 시간과 삶은 흘러갔고 난 대학을 다니며 알바를 했다.


 그때 운명적인 게임을 만나는데 바로 그 유명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였다. 게임이라고 하는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게임, 한 때 그 게임을 하는 전 세계 유저가 천만 명을 넘었던 게임이다. 이름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겠지만 스타 크래프트를 만든 게임 회사에서 만든 게임이다. 2004년에 나온 게임인데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2011년까지 근 6년 동안 정말 정말 열심히 했다.


 그때 내 삶은 그 게임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연료 같은 개념이었다. 게임을 하려면 집에 PC가 있어야 했고 친구들과 간간히 아니 자주 PC방을 가야 했기 때문에 돈이 필요했다. 현실의 삶은 그저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2010년 말에 일을 그만두고 홀로 백수가 됐을 때 그 게임만 하고 살았던 시기가 정점이었다. 물론 게임을 하기 위해 일을 그만둔 건 아니었다. 일을 그만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고 다음 일을 찾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그간 알바 등을 비롯해 일을 많이 해서 일을 그만두고 근 6개월 정도는 조금 쉬자 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게임만 한 거 같다.


 PC방에 출퇴근을 했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 나 씻고 바로 PC방으로 출근해 게임을 하다 밥도 먹고 중간에 간식으로 빵도 사 먹고 하면서 새벽 한 두 시까지 게임을 하고 퇴근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PC방으로 출퇴근하다 게임비가 아까워 아예 집에 새로운 PC를 사 버렸다. 그때부터 PC방도 퇴직을 하고 집에서 간식을 사다 날라 먹으면서 열심히 게임을 했다.


 그렇게 마저 5개월 정도 보내고 나니 현실에 대한 걱정도 되고 엄마한테 미안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게임을 할 만큼 하고 나니 이제 조금 지겨워서 다시 진짜 현실로 돌아오게 됐고 일을 찾아 시작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 그 와중에 시간이 흘러 데스크 탑이나 노트북이 아닌 스마트 폰으로 게임을 하는 시대가 됐다.


 게임을 그렇게 좋아했던 나지만 스마트 폰 게임은 하지 않았다. 우선 스마트 폰을 상대적으로 늦게 쓰기 시작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작은 화면으로 뭘 하는 게 싫었다. 아직도 스마트 폰으로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는 걸 싫어한다. 왔다 갔다 하면서 유튜브 영상은 간간히 보지만 소위 각 잡고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는 큰 화면으로 보는 편이다. 게임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스마트 폰 게임을 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작은 화면으로 보면서 뭘 한다는 게 싫었다는 소리다.


 그런데 시대의 큰 물살을 개인인 내가 어떻게 막을 수는 없어서 나 역시 슬슬 그런 시대의 조류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스마트 폰 성능이 좋아서 옛날에 내가 게임을 한참 하던 시절에 데스크 탑을 이용해 돌릴 수 있는 게임을 스마트 폰으로 충분히 돌릴 수 있었고 결정적으로 스마트 폰 게임은 기본적으로 무료였기 때문에 심심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결국 시작했다.


 물론 ‘과금’ 그러니까 게임을 조금 더 빠르게 그리고 게임 속의 캐릭터를 조금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돈을 더 들이진 않았다. 그저 남는 시간 동안 상황이 허락되면 즐길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게임을 소소하게 즐기다 보니 자꾸 옛날 생각이 났다. 게임만 하던 그때 그 시절... 하지만 그때처럼 게임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 어엿한 가장이 됐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게임 속 세상에 머리를 박고 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게임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과 바람을 갖게 된다. 성능 좋은 데스크 탑이나 노트북을 구비하고 조금 소리가 커도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방에 방음을 하고 세상 편한 자세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를 준비한다. 그리고 의자 뒤엔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판타지소설로 가득 채워 게임하는 중간중간 머리를 식힐 겸 읽을 수 있게 책장을 꾸민다. 3단이나 4단 선반을 마련해서 그야말로 PC방처럼 간식까지 꾸려 놓고 싶지만 돼지가 될 거 같아 그 부분은 참아 본다.


 적당한 크기의 괜찮은 모니터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게임을 하기 위한 게이밍 의자 자체가 사장님 의자 같은 누워도 될 정도로 편한 의자지만 가능하다면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볼 때는 조금 더 편하게 볼 수 있게 책장 앞에 여유 있는 크기의 소파마저 자리 잡아 놓으면 이건 뭐 그 방에서 나올 일이 없다.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 그리고 계속 앉아 게임만 하다 보면 어쩌다 죽을 수도 있으니 몸 풀러 나올 때를 제외하면 게임을 하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책을 보다 그냥 잠들어도 된다.


 중간에 생각이 나면 글을 조금 써도 되고 가족과 가정이 있으니 집안일은 하면서 때마다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살 수 있다면 너무너무 좋을 거 같다. 나오는 참신한 모든 게임을 다 해 보고 그중에 관심이 가거나 재미있는 게임에 몰두해 보고 게임하면서 맛있는 간식을 먹고 이미 게임폐인 짓을 한 번 해 봤기 때문에 그 선을 알고 있다. 그 선을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정말 여유 있게 얼마든지 즐길 자신이 있는데 그럴 돈이 없네!


 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일이나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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