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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an 28. 2024

어정쩡해

https://groro.co.kr/story/8066



 나란 사람이 어정쩡한 거 같다. 얼마 전에 이슈가 된 드라마 ‘무빙’이 있다. 한국형 히어로물을 표방한 강풀 웹툰 원작의 드라마다. 극 중에 이런 대사가 있다. ‘너 어중간해.’ 류승범 배우가 연기한 킬러가 극 중에서 암살 대상에게 지속적으로 듣는 대사다. ‘너 어중간해.’ 요즘 드는 생각이 그렇다. 요즘 나란 사람이 그런 거 같다. 아니 이전부터 그래왔던 거 같고 충분히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확실하게 인식한 거 같다.


 난 조금 어정쩡, 어중간한 거 같다. 뭘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못 하는 것도 없다. 뭐든 이라고 하면 범위가 너무 넓지만 대충 그게 뭐든으로 후려치면 적당히 할 줄은 아는 거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딱 봐서 요즘 표현을 빌자면 각을 재 봐서 못 할 거 같으면 아예 손을 안대기 때문이기도 하다.


 각을 재서 할 수 있겠다 싶은 건 손을 대면 그게 무어든 나름 준수한 성과를 낸다. 이런 느낌 있지 않은가. 오~ 처음인데 괜찮게 하는데... 그런데 그게 끝이다. 그 이상이 없다. 나란 사람을 내가 객관적으로 돌아보기는 정말 힘든 일이지만 그럼에도 돌아보면 관심이 가서 해 볼만하다고 생각되는 게 생기면 초반에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발휘해 처음 접한 사람치고는 꽤 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파악해 처음이 아닌 거 같은 성과를 내는 편이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그게 끝이다. 그 이상이 없다.


 조금 격하게 표현하면 ‘첫 끗발이 개 끗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도 그렇고 중 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그렇고 처음엔 다 잘했다. 처음뿐만 아니라 나름 지속적으로 꽤 오랜 기간 동안 잘했다. 하지만 그 끝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끝은 누구에게나 내세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성과를 말하는 건데 그런 게 없다. ‘그냥 뭐 조금 했어요. 그땐 그랬어요...’ 정도가 전부다.


 유년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를 인생의 1막 정도로 보면 그런 결과로 그냥저냥 지방의 아무 대학이나 들어가게 됐고 또 역시 그런 결과로 그저 그런 일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에서 직장에서 처음엔 나름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또 역시 거기서 끝이 났다. 나름 열심히는 하는데 그 열심의 한계가 분명한 그런 느낌.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할 순 없지만 겉으로 보기엔 꽉 찬 듯이 보이지만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는 속은 듬성듬성 뭐가 많이 비어 있는...


 이후에 대학교 시절의 알바를 바탕으로 시작한 커피일도 뭘 많이 하긴 했는데 그래서 아는 것도 은근히 많은데 그냥 그게 다인... 나만의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괜찮은 카페의 메인 바리스타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커피 일을 조금 한 경험이 있는 정도가 전부다.


 지금 하는 일도 그렇다. 두 번째 직장과 지금의 일까지 다하면 아이들을 가르친 지 15년이 다 돼 가는데 전국에선 몰라도 지역에선 나름 가장 잘 가르친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드는 정도다. 그래서 지금 일을 때려치우고 글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글도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야말로 보무도 당당하게 베스트셀러 작가는 그냥 되겠다 싶은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이런 게 글인 건지, 애써 ‘적극적인 일기’를 쓴다고 그럴듯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일기면 일기지 적극적인 일기는 또 뭐라고...


 처음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40대로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일부는 공감대를 형성해 줄 거 같았고 그렇게 형성된 공감대의 부피가 커지면 책도 출간하고 팔리고 어디 가서 작가라고 이야기하고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점점 이런 글을 누가 읽을까? 아니 그보다 이런 글이 세상에 일말의 도움이라도 될까? 싶은 생각이 점점 드는 게 사실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삶 자체가 어정쩡하고 어중간하고 엉성하다 보니 사실 이렇다 하게 쓸 이야기도 없다. 드라마틱한 뭐가 없다. 안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분명히 있는데 그냥 그런 이야기들뿐이다. 물론 사람 사는 이야기 다 거기서 거기라고 뻔한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그걸 풀어내는 재미라도 있으면 괜찮을 텐데 그런 건 또 재능의 영역이라 넘볼 수도 없다.


 그런 이유로 그 어느 때보다 글쓰기가 싫다. 같이 하는 분들이 있어 그나마 일주일에 두 꼭지 정도는 꾸역꾸역 쓰고 있는데 그게 전부다. 엉성하게 하고 있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대충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나름 하루의 피로를 조금 풀고 재미있는 영상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보고 글 좀 써야지 하다가 그냥 드러누워 눈 좀 붙이고 쓰자하고 잠시 눈을 붙이면 시간은 어느새 흘러 아침이 밝아 오고 켜둔 불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아... 또 그냥 잤네 하면서 일어나는 게 일상이다.


 ‘너 어중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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