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하는 늑대 Jan 29. 2024

건물주

https://groro.co.kr/story/8082



 이전 여러 글에서 밝혔듯이 우리 집은 가난했다. 찢어질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찢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가난해보긴 한 거 같다. 가난이 무슨 벼슬도 아니고 대단한 경험인양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그 가난을 대표하는 가장 표면적인 모습이 개인적으론 집의 소유 유무였다. 학생 시절에 잊을 만하면 하는 기초조사의 집 소유 유무를 묻는 질문에 자가에 체크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단칸방에서 방 두 개 그리고 세 개까지 나름 확장이 되긴 했지만 계속 전세, 월세를 전전했다. 그 와중에 빨간딱지도 붙어 보고 어 허허허허허허허허, 빨간딱지가 붙은 날엔 어이가 없어 오히려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었다. 쥐뿔 개뿔 아무것도 없는 집에도 이런 게 붙는구나, 이게 바로 마른오징어도 짜면 물이 나오고 벼룩의 간을 빼먹는 뭐 그런 상황이구나 싶었다.



 가난해서 더욱더 갈망하고 열망했던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최고는 단연 집이었다. ‘내 집 마련!’ 그런데 정말 고맙게도 다행히도 결혼을 하면서 꿈에 그리던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닌 아내와 힘을 합친 결과라 그 의미는 더 남달랐다. 물론 은행도 한몫 하긴 했다. 아니 은행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신 우리 집의 대주주이긴 했다. 하지만 여하튼 소유는 우리 소유였다. 그러면 된 거다. 내 집! 최소한 나중에 딸아이가 학교에서 기초조사 등을 하는 일이 있다면 딸아이는 별스럽지 않게 자가에 체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거면 됐다. 은행 돈이야 갚을 자신이 있었고 갚으면 그만이었다. 실제로 대출금의 3분의 2는 갚았고 상환 기간도 5년인가 4년 정도만 남았다.



 이런 시점에 의도치 않게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도전을 하게 됐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글을 쓰겠다고 4년 정도 전부터 일을 줄여 왔기에 지금 급여 수준이 상당히 부족하다. 물론 조만간 다시 끌어올릴 예정이다. 단기간 내에 글로 먹고살기는 글러 먹은 거 같아 일단 하던 일의 양을 다시 늘리기로 했다. 그리고 더욱이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도전을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했다. 여하튼 지금 경제적 상황이 가장 안 좋은 시기다. 그야말로 위기다. 그런데 위기는 기회라는 동기부여가나 자기 개발서 작가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몸소 실천하고 싶었는지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서울에 살았다면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지역에 살고 있으니 이렇게 한 번 비벼보기라도 하는 거 같다. 그러고 보면 서울에 사는 분들은 참 대단한 거 같다. 사람이 많으니까 일거리는 많겠지만 그만큼 경쟁도 심하다는 소린데... 그 틈바구니에서 버텨내며 지역보다 훨씬 비싼 집값을 감당해 내는 모습을 보면 난 절대 저렇게 못하겠다 싶은 생각을 했다.



 여하튼 이런 위기의 순간에 밑도 끝도 없이 건물을 사기로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위기가 기회고 나발이고 간에 이러면 안 된다. 줄어든 급여부터 끌어올리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대출금부터 다 갚고 조금 더 뒤를 도모하는 게 맞다. 그런데 사고를 쳤다. 사실 내가 먼저 주도적으로 사고를 치고 싶어 친 건 아니다. 장모님의 조언과 도움으로 시작된 일이다.



 장모님 본인께서 건물을 산 경험을 바탕으로 너희도 건물 한 번 사 보는 게 어떠냐 하고 시작된 일이다. 사실 결혼 초에 아이가 없을 때 그리고 아이를 꼭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을 때 대출금을 갚아 나가면서 돈 열심히 벌어서 5년 정도 뒤에는 집을 넓혀 나가자 뭐 이런 정도로 아내와 나름의 계획을 세우긴 했었다. 하지만 세상 일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고 아이는 생겼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공교롭게 일이 하기 싫어졌고 생뚱맞게 글을 쓰겠다고 난리부르스를 치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그런 상황에 건물을 한 번 사 보자는 어머님의 제안이 참 복잡 미묘하게 다가왔다. 이게 맞는 건지, 이게 가능한 건지, 왜 하필이면 가장 힘든 지금인지 등등등.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해 본다면 해 볼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뉴스에서나 보는 영끌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지역이라 어느 정도 도전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어머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하는 부분에 의해 최초의 가능성이 열린 것을 감안하면 선뜻 해 보겠다고 말하기도 민망하고 죄송스럽고 그런 상황이었다.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도와주신 다는데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으면 그만이지 않냐 할 수 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줄 알았더라면 일을 조금 덜 줄이는 건데 아니 애초에 글을 쓰겠다고 꼴값을 떨지 않는 건데 그래서 어머님의 도움을 덜 받으면 얼굴이 지금보단 조금 더 서겠는데 싶었다. 물론 크게 보면 어머님의 도움, 은행의 도움 그리고 아내와 나의 힘을 바탕에 둔 도전이기에 최소한의 면목은 챙길 수 있는 상황이긴 했다.



 그럼에도 가급적이면 아내와 나의 힘 그리고 끌어다 쓸 수 있으면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끌어다 써도 되는 은행의 힘만으로 해 냈으면 더 좋지 않았겠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조금 더 능력 있는 남편 그리고 사위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발목을 잡아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이런 부분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내와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물론 아직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지도 않았고 계약금만 낸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계약을 엎고 위약금을 물어도 될 정도로 여유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무조건 진행해야 되는 상황이다. 아! 어머님께 도움을 그냥 받는 건 아니고 부족한 대출을 어머님에게 빌리는 조건으로 시작하는 일이다. 은행을 통해서 나오지 않는 대출금과 조금 저렴한 이자로 갚을 수 있는 부분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기에 너무 감사하고 죄송한 일이다. 아직 은행 대출도 확인해야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매매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야말로 계약만 했지 실제 소유까지 가기 위해선 산적해 있는 일이 태산이다.



 ‘기호지세騎虎之勢’ 머리와 가슴에 그냥 와서 박힌 성어다. 살면서 이렇게 살 떨리게 와닿는 성어는 처음이다.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이다. 내릴 수 없다. 섣불리 내렸다가는 자칫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 너무 빠르고 무섭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호랑이 등을 꽉 움켜쥐고 어디인지 모르지만 호랑이가 내달리는 곳이 내가 바라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버텨야 한다.



 대출이 해결되고 집이 팔리면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이다. 많이 부담스럽고 두렵다. 힘들 거라는 예상이, 예상이 아닌 불을 보듯 뻔하게 펼쳐질 미래라는 점도 가슴을 조여 온다. 그런데 또 동시에 설레기도 한다. 이겨 내면 버텨 내면 보다 나은 상황을 만들어 내고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내 집은 꿈에서만 가능한 삶을 살다 결혼을 하면서 그 꿈을 실현시켰다. 이제 다시 그 실현된 꿈을 확장시키려 하고 있다. 100% 나만의 힘으로 확장을 하는 거라면 금상첨화겠지만 도움을 주신 다는데 자존심 같은 쓸데없는 감정 버리고 감사히 받고 그 감사한 마음을 담아 갚아내면 될 일이다.



 바라건대 받은 도움과 빌린 돈을 다 갚을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까 주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