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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Feb 01. 2024

폐관수련

https://groro.co.kr/story/8135



 폐관수련閉關修鍊(외부와 모든 연락을 끊고 특정한 곳에 머물며 수련함-다음 사전 참고). 주로 무협지 등에 많이 나오는 개념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무술 실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사람들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공부하는 개념과 대충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봄방학 같은 열흘이 주어진다면 폐관수련을 하고 싶다. 정확히 수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무협지에서 주인공이 수련을 그것도 외부와 차단한 채로 폐관수련을 한다는 건 본인의 실력을 높이는 다시 말해 무협지 세계에선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실리적인 수련이라 할 수 있다. 더 쉽게 말하면 무협지에서 폐관수련은 먹고사는 문제를 보다 수월하게 가져가기 위한 극단적인 방편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내가 열흘이란 시간동안 하고자 하는 수련은 게임이다. 시대가 변해 게임을 통해 먹고사는 문제가 더 수월해질 수도 있지만 아직은 지극히 특별한 경우에 해당한다. 지금부터 폐관수련을 통해 게임실력이 일취월장한다고 해도 ‘페이커’ 같은 프로 게이머가 될 일은 상당히 요원할 것이다. 그저 게임이 하고 싶은데 억지스럽게 폐관수련이란 개념을 빗댄 것뿐이다. 한편으로 비슷한 지점도 있다. 머리 박고 죽어라 게임만 할 거니까...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하고자 하는 게임은 스마트 폰으로 하는 게임이 아닌 커다란 모니터 화면을 보고 두 손을 조금 더 여유 있게 두고 소위 컨트롤을 하는 그런 게임이다. 해서 최근에 나오는 높은 수준의 그래픽을 요구하는 게임을 하기 위해선 최소한 노트북 혹은 데스크 탑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가성비 등을 고려하면 노트북보단 데스크 탑이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한다. 컴퓨터 관련해서 하드웨어 부분에 있어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틀린 말일 수도 있겠지만 작은 노트북과 상대적으로 큰 데스크 탑을 이용해 같은 게임을 돌리기 위해선 아무래도 데스크 탑이 일반적으론 조금 더 수월할 것이다. 한 100만 원 정도면 괜찮은 조립 PC를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간식이 필요하다. 사료 같은 간식이 필요하다. 밥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밥은 때를 정해 놓고 먹는 거지만 간식은 게임을 하는 도중 자리를 옮기지 않고 손으로 주워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짜고 달달한 과자들이 대부분이며 시원한 탄산음료 커피 그리고 난 으른이니까 맥주도 좋다. 음주게임은 자칫 캐릭터 사망에 의해 게임 속에서 중요한 경험치나 아이템 등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부담 없는 맥주가 적당하다. 기호에 따라 막걸리나 와인 정도까지는 괜찮다. 요즘 유행하는 하이볼도 나쁘지 않다. 그 이상은 과한 음주게임이 될 수 있기에 측정하면 게임취소 수치가 나올 수 있어 피하는 게 좋다. 밥을 제외한 개념으로 하루에 5만 원 정도면 게임하는 내내 심심하지 않게 간식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일어서서 게임을 할 순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의자가 필요하고 다른 것도 아닌 일명 ‘사장님 의자’가 필요하다. 의자에 파 묻혀 지금 이곳이 현실인지 게임 속인지 혹은 꿈속인지 모를 정도로 편안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장님 의자가 필요하다. 간혹 의자를 뒤로 한껏 재껴 잠을 잘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필요하다. 더 나아가 여유가 있다면 2인 정도가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소파도 준비하면 좋다. 게임을 하다 중간중간 질리면 소파에 널 부러져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이야 대충 졸리면 사장님 의자나 소파에 구겨져서 자면 되는데 화장실은 잠시 일어나서 게임을 하는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 그 시간조차 아쉬우면 기저귀를 준비해 차고 하면 되는데 그쯤 되면 거의 미친놈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거기까진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가지 않기로 한다. 더불어 한 가지 더 생각해야 될 부분은 게임에 빠져 내가 게임을 하는 건지, 게임이 나를 하는 건지 모르는 순간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 정신을 부여잡고 일어나 밖으로 나갈 필요까지는 없고 기지개를 켜며 스트레칭을 할 마음가짐 하나 정도는 챙겨야 한다.



 이 정도 준비하고 열흘 정도면 웬만한 게임은 켠 김에(시작한 김에) 왕(보스 몬스터)까지 깰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밥을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먹고 간식을 먹지 않으면 부수적인 결과로 의도치 않게 살이 빠질 수 있다. 게임에 빠지면 보통 잠을 잘 안 자게 되는데 먹는 것까지 부실해지면 자연스레 살은 빠지게 돼 있다. 실제로 20대 때 정말 한창 게임할 때 살이 정말 많이 빠진 경험이 있다.



 이 모든 준비과정이 귀찮다면 간단하게 열흘 간 PC방으로 출퇴근하면 된다. PC방은 게임을 폐관수련하기엔 두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최적의 장소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면서 동시에 사랑스러운 딸아이의 아빠로서 지금은 절대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꿈같은 일이라 한 번 상상해 봤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들으면 거짓말 같은 이런 생활을 일을 그만두고 근 6개월 정도 실제로 한 적이 있었다. 정말 다시 못 올 게임 같은 그리고 꿈같은 시간이었다.



 건강관리 잘해서 나중에 나이 들고 여유가 생기면 다시 한번 도전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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