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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Feb 08. 2024

바리스타

https://groro.co.kr/story/8269



 커피와의 인연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린 시절엔 커피라는 걸 마셔 본 적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어린 시절은 고등학교 시절까지를 의미한다. 어렴풋한 기억에 고등학생들의 흔하고 유치 찬란한 겉멋에 의해 비엔나커피라는 걸 카페 비스무리한 공간에서 한 두어 번 마셔 본 적은 있는 거 같다.



 오스트리아 빈에 가면 없다는 저 유명한 비엔나커피를 말이다. 정확히는 아인슈페너가 맞는 표현이라고 하는데 누가 처음에 비엔나커피라고 했는지 비엔나는 소시지 아닌가? 그리고 아인슈페너라는 이름도 뭐 그렇게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다. 다양하게 개발된 메뉴로서 커피의 이름이란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서 사실 정확한 이름이란 건 어쩌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저 어떠한 형태건 진한 블랙커피에 크림을 곁들인 커피 정도로 이해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서 카페 비스무리한 공간이라고 한 것도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1990년대 후반의 카페는 최근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기반으로 한 그런 커피전문점과는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뭐 여하튼 굳이 따져 물어 올라가면 이 정도가 커피와 나의 첫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첫 인연이 그렇게 강렬하지는 않았는지 그 이후론 이렇다 하게 커피를 찾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에 여느 대한민국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휴학을 한 뒤 군대를 다녀왔다. 복학 시점이 애매하진 않았다. 애초에 군대 전역 후 조금 놀고 싶어서 여유 있게 1년 정도는 놀다 복학할 수 있게 휴학을 했었다.



 의도대로 3월에 전역해 신나게 놀다가 다음 해 복학을 앞둔 겨울 어느 날, 밤새 PC방에서 치열하게 세상을 구하다가 피곤한 눈을 찌르르하게 찌르는 아침햇살을 가리며 집에 가던 길이었다. 이제 슬슬 복학을 준비해야 하는데 용돈이나 조금 벌어야겠다. 알바를 뭘 할까? 하면서 걸어가는데 카페알바를 구한다고 써 붙인 종이를 봤다. 카페라... 그래, 술집 알바보단 조금 수월하겠지? 술 먹고 괙괙거리는 인간들 뒤치다꺼리보다는 나을 거야 하는 생각으로 카페 알바를 시작했다.



 이 전에 노래방 알바를 한참 한 적은 있지만 카페알바는 처음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소위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6개월, 1년, 2년이 지나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메인 바리스타의 자리까지 올라 모든 음료를 만들고 카페 알바들을 관리했다. 그때 불현듯 전혀 인연이 아닐 거 같았던 카페 그러니까 커피를 업으로 삼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하고 처음 생각했다.



 물론 이러저러 현실적인 상황과 의지박약이라는 결정적인 요인에 의해 포기하긴 했지만 그렇게 커피는 내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왔다. 이후 5년 정도 일을 하다 일이 지겨워 때려치우고 다시 커피 일을 시작해 카페 두 곳과 커피학원에서 바리스타와 강사로 3년 정도 일을 했다. 정말 재미있었다. 그야말로 커피를 진정으로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거 같았고 커피에 이 한 몸 바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세상 가장 좋은 핑곗거리인 현실과 의지박약의 DNA는 무서웠다.



 결국 뜨거운 가슴보단 차가운 머리의 편을 들어 현실적인 일을 다시 하기 시작했고 지금 현재 그 일을 하고 있다. 이 시점에 열흘 정도 자유가 주어진다면 여행을 가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할 수도 있겠지만 커피를 뽑아 보고 싶다. 물론 지금도 얼마든지 커피를 뽑을 수 있다. 집에 기본적인 핸드드립 도구들이 다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뽑을 수 있다. 그런데 혼자 즐기는 그런 커피 말고 현장에서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커피를 다시 한번 뽑아 보고 싶다.



 사실 굳이 열흘의 자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얼마든지 카페에서 손님을 대상으로 커피를 뽑을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늦게 시작하는 일이라 오전에 오픈을 해 줄 알바를 구하는 카페를 찾아 하루에 4~5시간 정도는 알바를 할 수 있다. 나이도 있고 한정적인 시간을 요구하는 입장이기에 구하는 게 쉽지 않지만 마음먹고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개념보다는 자유롭게 여행하듯이 이러저러 걱정 없이 말 그대로 커피 자체에 빠져 들어 커피를 찾는 사람들에게 커피라는 종교를 설파하듯이 순수하게 뽑아 보고 싶은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지금 당장 오전에 잠깐 오픈 담당으로 카페 알바를 구하는 건 보다 현실적인 그러니까 가계에 조금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앞 선 선택일 것이다. 해서 하는 행위는 같지만 그 마음이라는 부분이 다소 부담스러울 거 같다. 물론 그럼에도 손님을 대상으로 커피를 뽑는 건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역시 의미는 있겠지만 다소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아 있을 거 같다.



 커피라는 세계를 여행하듯이 커피라는 종교를 설파하듯이 커피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카페 그리고 손님이 많아서 정말 바쁜 카페에서 열띤 마음과 호흡으로 커피를 뽑아 보고 싶다. 정말 많은 손님에 의해 눈 코 뜰 새 없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에스프레소 머신과 거의 한 몸이 되어 머신이 기계인지 머신을 다루는 내가 기계인지 모를 그런 무아지경의 순간이 그립다. 더불어 그렇게 많은 손님들의 주문을 이렇다 할 실수 없이 늦지 않게 다 받아 냈을 때의 그 희열은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그런 희열의 정점은 계산을 하고 나가는 손님의 한 마디, 여기 바리스타 누구예요? 커피 아주 맛있던데... 크~ 그럼 뭐 그런 날은 시급을 안 받아도 좋다는 아니고 받을 건 받아야 하지만 여하튼 그 정도로 기분이 좋다.



 그런 기분을 아침에 가볍게 하는 알바로 느껴 보기는 힘들 것이다.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럼 또 문제는 오후에 있을 본업에 지장을 줄 수 있어 설령 찾는다 해도 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열흘 정도의 봄 방학 같은 자유가 주어진다면 황홀한 커피 향이 풀풀 풍기는 카페로 여행을 가고 싶다. 그저 관람하는 관광객이 아닌 커피 향이 풀풀 나는 커피 세계에 소위 로컬처럼 참여하는 열흘 살이 뭐 그런 거 말이다.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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